사실, 우리가 살면서 친구를 사귈 수 있는 장소는 굉장히 제한적이었다. 놀이터, 유치원, 학교 그리고 학원에서 만나는 같은 나이의 아이는 늘 친구라고 소개받고는 했다. 그러고 보니 같은 나이가 아니면 친구가 성립될 수 없는 조건에서 우리나라가 제일 엄격한 것 같다. 유치원에서는 7살도 6살한테 “내가 형이야.”라고 하니, 우리나라는 친구 범위 설정 자체가 애초부터 참 좁다. 나랑 같은 년도에 태어난 사람만 일단 친구 후보니까 말이다. 오죽하면 우리나라에서만 하는 질문도 있지 않는가.
“너 몇 년생이니?”
아 이 말을 패러프레이징 한 말로 이런 것도 있다.
"수능 언제 보셨어요?"
외국사람들이 들으면 정말 이상하게 들릴 것 같다. 몇 년째 외국인들이 절반인 곳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우리가 교과서에서 그렇게 뻔질나게 보았던 ‘How old are you?’는 쓰는 사람 조차 본 적이 없다. 그렇게 나이의 경계선이 중요하건만 1-2월에 태어나 빠른 몇 년 생이던 나는 필요에 따라 나이를 바꿨으므로 친구의 경계가 보통사람의 2배인 축복을 누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학교에 다닐 때 까지는 좋든 싫든 같은 나이의 사람이 우글거렸지만, 요즘은 같은 년도에 수능을 보았다는 사람을 만나면 반갑게 느껴지는 것을 봐서는 주변에 같은 나이 대가 점점 줄어들고 아니 더 넓게 흩어져 있는 것 같다. 어른이 되니 나이가 같은 사람 만나는 것도 쉽지 않고 그중에서 마음이 맞는 사람 만나는 건, 어쩌다 길가다 한 잔에 천 원 아메리카노를 마셨는데 생각보다 훨씬 맛있는 그런 일이므로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 이래서 내가 그나마 있던 친구를 오래도록 지키고 싶었던 건가 라는 생각도 해본다.
정말 친구가 되는 것에 나이가 그렇게 중요할까?
나이가 같으면, 혹 비슷하면 공감할 수 있는 것이 더 많은 것 같긴 하다. 이것이 가장 와닿을 때는 옛날 가요에 대한 느낌을 나눌 때인 것 같다. 누군가에게는 영턱스 클럽 '정'이 주는 느낌을 누군가는 소녀시대의 '소녀시대'를 통해 받을 것이고 누군가는 NCT Dream의 '풍선껌'이 그런 노래 일 것이다. 발라드라면 조금 더 시대를 뛰어넘어 공감을 받기는 하지만, 각자 최애 노래에 대해 이야기해보면 나이대가 나뉘는 것이 확연히 느껴지는 것 같긴 한다. 노래라는 것은 그 시대의 감정의 서사를 잘 담고 있기 때문에 차이가 뚜렷하게 느껴지는 것 중에 하나인 것 같다.
그런데 우리가 슈가맨을 통해서 느꼈던 하나 됨을 돌아보자면, 세대를 뛰어넘어 내 시대의 노래가 아닌 것에 공감할 때 마음이 연결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슈가맨에서 팀의 '사랑합니다'가 나왔을 때 볼 수 있었던 떼 창은 우리 모두를 친구로 만드는 것 같았다.
어쩌면 그 순간 나이를 잊는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다.
마음과 마음이 겹쳐질 때, 우리는 나이를 잊는다. 사실 나는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을 한국에서 살았지만, 구성원의 50%가 외국인인 직장을 다니고 있다. 외국인 친구들은 대부분 나보다 어리다. 아니 지금까지 나랑 나이가 같은 원어민은 아예 만나 본 적이 없다. 그들은 나를 언니, 누나라고 부르지 않고 그냥 다짜고짜 스테이시라고 부르지만 기분이 나빴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영어는 그런 힘이 있다. 꽤 넓은 나이대를 친구로 커버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이랄까? 그래서인지 나는 뜬금없지만 영어가 좋았던 것 같다. 나이를 잊는데 조금은 도움이 되는 도구가 영어라고 소개하고 싶기도 하다.
어쩌면 내가 외국인들에 대해 가질 수 있는 편견이 많지 않기 때문에 더 친구 범위를 넓게 설정할 수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몇 살이 되면 그 사람은 어떨 것이다 라는 편견이 넓게 존재한다. 예를 들어 20대 후반이면 막 취업해서 학자금 대출을 갚고 있을 것이고 남자라면 차를 사는데 관심이 많은 것이다. 30대 초반의 여자라면 결혼에 가장 관심이 많을 것이다. 40대 후반의 가장이라면, 재테크에 관심이 많고 회사에 지쳐 있을 것이다. 50대 여자분이라면, 이제 아이들을 다 키우고 자아를 찾기를 시작하는 나이일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 말이다. 이런 것들이 때로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바탕이 되기도 하지만, 섣불리 다가갈 수 없는 큰 장애물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나이가 들 수록 이 편견을 내려놓고 더 넓게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더 고집스럽게 편견을 의지하는 사람들이 있다. 전자와 후자는 다음과 같이 표현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내 나이 - 친구의 나이 (친구의 나이 - 내 나이) =
내 나이 + 친구의 나이 =
당신이 얻게 되는 숫자, 그만큼이 당신과 상대방의 거리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