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앞에 붙을 수 있는 수식어가 왜 이리도 많은지, 이번에는 동네 친구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난 어릴 때 이 단어를 쓰는 사람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사를 너무 자주 다닌 덕에 어디가 우리 동네 인지도 특정할 수도 없는 게 내 인생이었다. 인생을 타임라인으로 나눈 다면, 시간을 조금 더 많이 보낸 곳에 대한 데이터는 나오겠지만 나는 동네 색깔이 믹스된 잡종임이 분명하다.
A 지역에 살 때는 친구들 부모님이 죄다 공무원이었다. 물론 우리 아빠를 포함해서 말이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도 공무원스러운 느낌을 듬뿍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발에 치이는 공무원 자제들을 두고, 굳이 더 멀리서 학교를 다니는 옆 동네 아이들과 친구가 되는 것을 더 좋아했는데, 그 친구들이 너무 비슷한 색을 가진 아이들 사이에 들어오는 것을 어려워하는 게 보여서 누군가 그 중재 역할을 해야 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내 오지랖인지 과도한 책임감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더 좋은(?)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에 그렇게 감동을 받지는 않았던 것 같다.
B 지역은 8 학군이라는 말이 있을 때, 그중에 한 지역이었다. 엄마는 우리가 그곳에 가면 공부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셨을지 모르겠는데, 어쨌든 그런 엄마들이 많은 덕에 무지하게 과밀학급이었던 건 기억이 난다. 2학년 14반으로 전학을 갔는데, 애들이 너무 많아서 같은 반 아이들을 다 기억할 수가 없었다. 친구를 사귄다는 말이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인 건가 어린 나이에도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C지역은 신도시 중에 한 곳이었다. 나랑 내 동생이 그 다지 학업에 멋진 퍼포먼스를 보이지 않자, 부모님은 힘들게 공부시킬게 아니라 한적한 곳에 가서 살자라고 터를 잡으셨던 것 같다. 신도시는 말 그대로 신도시인지라 다양한 백그라운드를 가진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건 약간 긍정적으로 표현한 것이고, 필터를 줄이자면 별의별 사람이 다 있구나 싶기도 했다. 뭐, 그중에 나도 하나였을 터이지만 말이다. 나는 전학 와서 몰랐는데 나중에 보니 아파트 단지별로 친구가 나눠져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마음에 드는 아이와 친구가 되고 싶어 했다가 처음부터 힘든 학교 생활을 해야 했던 기억이 난다. 뭐 그리 오래 산 인생은 아니었지만 아파트 별로 친구가 돼야 한다니, 참 놀라운 세상이었다.
무슨 친구를 사귄다는 것이 장애물 게임을 하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동네별로 친구를 사귀는 법이나 기준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 어린 나이지만,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사람과 사람의 마음이 만나면 느껴지는 따뜻한 전기 같은 것에서 우정은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 저 친구랑 있으니 말도 통하고 마음도 편하고 이러 느낌을 유지하고 싶은 게 우정이 아니던가? 사실 나는 여전히 철이 없어서 친구를 동네마다 다른 기준으로 사귀고 상황마다 다르게 골라야 되는 것이 싫다.
너 어느 동네 사니?
너 어느 아파트 사니?
너 어느 학교 다니니?
너 어느 호텔에서 결혼했니?
너 어느 조리원 이용했니?
너 회사가 어디니?
이러다가 ' 너 죽으면 어디 묻히니? ' 까지 물어볼 판이다. 좋은 친구의 농도가 높은 곳에 자신을 던지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면, 내가 좋은 친구가 되어서 내가 있는 곳에 좋은 친구 농도를 먼저 높여 보는 것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