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수록 친구가 점점 줄어든다 라는 심리적 확신을 가진 분들과 그런 의구심이 든 나를 위해, 정말 그러한 건가 와 그 이유를 하나씩 파헤쳐 가 보고 있다. 그리고 친구 숫자를 획기적으로 약 반으로 줄이는 한 가지 요소를 이 장에서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인생을 통을 돌아보면, 연애 관계에 놓여 있을 때 보다 놓여 있지 않을 때가 더 많지 않았을까 싶긴 하지만, 연애라는 것이 세상에 존재하는 다른 어떤 관계가 줄 수 없는 마음들을 갖게 해 준다는 것을 안다. 어떻게 보면 그렇게 배타적으로 설정된 관계 안에서만 가질 수 있는 강렬한 경험들이 있지만, 그로 인해 느슨해지는 혹 놓치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때는 연애라는 감정에서 얻는 것이 많아서 무언가를 잃고 있다고 생각되지 않겠지만 말이다.
보통 우리는 연애를 시작하기 전까지 시시콜콜하게 친구와 수다를 떨지만 연애와 동시에 그 이야기를 나누는 대상은 연인으로 바뀐다. 시간을 사용함에 있어서도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연애가 우위를 점하게 되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도 들은 적 있다. 몇 년을 연애하고 헤어졌는데, 헤어지고 나서 보니 친구가 다 사라졌다는 이야기 말이다.
참, 어떻게 보면 애인과 친구는 역할이 겹쳐지기도 하는 것 같다. 어쩌면 친구와 했던 일상이 함께하는 대상만 바뀌어서 이어지는 것일 수도 있다. 맛있는 것을 먹고, 영화를 보고, 대화를 나누는 것 같은 일 말이다.
아, 앞서 말한 친구가 성별이 다른 친구였다면 그 대상은 그대로인데 애인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은 편인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이성을 친구라고 말할 수 있었던 적이 언제 적이었던가 싶다. 이게 이렇게 어렵고 드문 일이 될 줄은 몰랐다. 그래도 학교에서 만나는 이성까지는 친구였지만, 회사에서 만나는 이성은 친구가 될 수 없다. 일단 초등학교를 벗어나면, 이성은 내가 아무리 친구의 범위에 분류에 놓아도 사회적 통념 때문인지, 본능 때문이지 자꾸 연애의 후보자의 자리로 올라오게 된다. 그래서 가요에 그렇게 많은 친구에서 연인이 된 이야기가 존재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쿨의 '친구가 연인이 되기 까지', 노을의 '인연', 최근 장범준이 리메이크 한 박혜경의 '고백' 등의 노래가 대표적이었는데 최근 노래 중에서는 오 마이걸의 '살짝 설렜어'가 가장 공감되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서 등장했던 남. 사. 친(남자 사람 친구), 여. 사. 친.(여자 사람 친구)라는 단어를 보면서 무슨 연극 배역 이름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만큼 실제 존재하기 쉽지 않은 포지셔닝인 것 같다. TV에서 그 단어를 더 그렇게 만들어 논 것도 한몫했다고 본다. 뭐 이 단어들을 조금이라도 더 진실되게 만들려면 내가 연애를 시작하면 가능할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이 것 또한 조금 더 드라마틱하게 가져가 보면, 나는 연애 중이고 나의 이성 사람 친구가 나를 좋아하는 그런 그림이 나올 수도 있겠다. 이런 이야기도 허무 맹랑하지 않은 것이 이런 가사를 가진 가요도 상당히 많다는 것이다. 젝스키스의 '무모한 사랑', 2pm '친구의 고백' 등이 이런 케이스를 잘 그리고 있다.
어떻게 머리를 돌려봐도 지금 와서 새로운 이성친구를 갖게 되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불필요하거나 둘 중에 하나의 영역에 들어갈 것 같긴 하다. 인구에서 절반은 이렇게 내 잠재적 친구 목록에서 사라져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