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 1등은 친구가 있을까?

by 스테이시

대한민국에서 쌍둥이로 살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에 하나는 부럽다는 말이었다.

“늘 친구가 있는 거잖아.”

때로는 이 말은 나에게 큰 부담감이 되었다. 이 땅의 모든 쌍둥이가 서로에게 가장 좋은 단짝 친구가 되어줘야 하는 의무를 가지고 태어난 건가 싶기도 했다. 그리고 보통 친구는 그래도 우리가 선택하므로 관계가 시작되는데 집에서 늘 만나는 이 녀석은 나랑 맞으나 맞지 않으나 늘 사이좋게 지내야 하는 친구였다. 우리 둘이 친한 친구가 되어야 하는 것은 부모님으로부터 말미암은 건지, 사회로부터 말미암은 건지 혹은 친구를 사귀기 어려워했던 나에게 신이 강제로 주신 선물인지 모르겠으나 일단 우리는 무언가를 함께 하기는 했다. 맞벌이하시는 부모님의 늦은 귀가를 함께 기다리기 이런 것 말이다. 그러면서 조금은 서로에게 외로움 상쇄의 역할을 해주었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 사안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자면 나는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비교대상을 내 옆에 두고 살아온 셈이기도 했다. 나는 주변에 분위기에 휘둘리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또 그렇다고 주변 분위기를 못 맞출 무법자도 아녔기에 많은 부분 주어진 것들에 수긍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친하면서도 건강하게 경쟁적인 관계를 유지해한다는 것이 뭔 말인지 알 수가 없다.

사실 저 멀리 있는 잘난 사람은 딱히 우리의 비교대상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연예인을 보고 나보다 예쁘다고 좌절하지 않는다. 혹은 하버드 학생을 보고 나보다 공부 잘한다고 열등감을 느끼지 않으며, 연봉이 10억 인 사람을 보고는 박탈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뜻이다. 아예 어나더 레벨인 사람들에 대해서는 경외감을 느낄 뿐이다. 우리가 끝임 없이 비교하며 경쟁심을 느끼는 상태는 보통 우리의 주변에서 나보다 조금 잘 난 사람이다. 이런 걸 전문용어로 ‘엄. 친. 딸’이라고 한다. 사실 그렇게 한 다리 건널 필요도 없이, 우리는 우리의 친구에 대해서도 묘한 경쟁심을 느낄 때가 있다.

경쟁이라는 자체가 나쁘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우리의 탄생 자체가 수많은 정자의 경쟁에서 비롯되지 않았는가? 하지만 경쟁심의 부산물일 수 있는 열등감은 조금도 예쁘지 않다. 경쟁을 동기부여로 승화시켜서 그 대상과의 관계를 좋은 친구로 발전시키는 사람이 있고, 경쟁을 열등감을 진득하게 즐기는 도구로 사용하는 사람이 있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열등감은 우월감보다도 훨씬 더 치료가 힘든 감정인 것 같다. 아무리 인간이 잘 났어도 모든 것을 다 해낼 수 있는 전능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은 확고히 깨달을 기회는 많지만, 이런 내가 뭘 하겠어라고 땅을 파는 사람에게는 그 바닥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열등감은 어떤 말을 들어도 반사되는 상태라고 정의해보고 싶다. 열등감은 늘 수동태로 쓰인다. 사람들이 누군가한테 굳이 열등감이라는 것을 줄려고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마치 내 존재만으로 누군가는 자신을 열등하게 느끼는 웃픈 상황이 존재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대표적으로 공부를 예로 들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이 부러운 적이 별로 없었다. 왜냐하면 잘한다는 게 어떤 건지, 잘하면 뭐가 좋은 건지 경험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초등학교 때 정말 뛰어난 애가 있었는데, 반 친구들은 그 아이를 딱히 이유 없이 싫어했다. 그 아이의 생일잔치를 거절한 애들이 더 많은 분위기였으니 말 다했다. 어느 날 그 아이는 울면서 교실을 뛰쳐나가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내가 뭘 잘 못했는데 나한테 그래?"

맞는 말이었다. 그 아이가 친구들에게 나쁘게 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단지 그 아이는 누가 봐도 머리가 좋은 아이였고 선생님들이 그래서 예뻐하셨다는 것 정도가 이유라면 이유였을 것 같다. 선생님의 예쁨을 받는다는 것은 독이 든 사과와 같다. 나름 보람된 삶이지만, 주변 아이들이 작은 꼬투리라도 잡으려고 쳐다보고 있는 그런 삶 말이다. 나는 머리가 좋아서는 아니지만, 늘 키도 작아서 교실에 앞에 앉기도 했고 차분하게 생겨서 인지 선생님들이 좋아하시고는 했다. 그 나이 때는 선생님이 심부름 한 번 맡겨주시면 참 그게 뭐라고 그렇게 다들 하고 싶어 했는지, 심부름 한 번 갔다 오면 뒤통수가 따가운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 언젠가는 진지하게 선생님께 저 더 이상 심부름시키지 마세요 라고 말할까 싶기도 했다.

그러다, 고등학생이 되어 어쩌다가 공부를 잘하게 되어버린 시기가 있었다. 그다지 경쟁이 심하지 않은 학교였다고만 해두자. 반 1등으로 들어가지 않은 애가 성적이 올라서 반 1등이 된다는 것은 음, 모두에게 그리 반가운 일이 아니었던 것 같다. 난생처음 견제의 말투를 듣게 된 나도 성숙하지는 못 던 것 같다. 그때는 난 생 처음으로 관계들을 회복시키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기보다는 그냥 그게 오해든, 질투든, 나의 싸가지 없음의 발현이든 그냥 그렇게 두기로 자포자기했던 기억이 난다.

아무리 학구열이 높지 않은 학교였더라도 전교 1등을 하면, 전 세계를 정복하는 느낌이 들 줄 알았는데, 딱 하루만 기분이 좋았다. 그때 나는 취미 생활로 댄스동아리를 하고 있었는데, 엄마가 아빠한테 내가 1등을 했다고 얘기를 하자 최근에 댄스 대회를 나갔었냐고 물어보았다고 하더라. 그 1등이 댄스대회에서 한 1등이었으면 삶이 조금 더 재미있어졌을까? 전교 1등의 고민은 누구도 공감해 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니 1등 주제에 고민은 사치요, 입 밖으로 꺼내면 기만이 되는 것이었다. 결국 친구가 스르르 사라져 갔던 것 같다. 아니 처음부터 친구가 아녔을 것이다. 그때는 그래도 1등인데 선생님 기를 세워드려야 되는데 싶기도 하고, 신생 고등학교에 이름을 높여 줄 플랜카드 붙일 만한 대학에 가야 하는데 압박도 들었다. 뭐, 플랜카드는 못 붙였지만 나는 대학에 갔다. 같은 반 아이들 중에 어떤 여자애는 나의 수능 성적표를 훔쳐보고 그렇게 놀지도 않고 공부하더니 생각보다 잘 보지도 못했다며 비웃었던 그날, 머리의 용량이 이 것 밖에 안 되는 나에 대한 자책에 서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저런 아이를 친구랍시고 지키려고 애쓰지 않았던 나 자신이 오히려 자랑스러웠던 것 같기도 하다.

대학에 와서 나는 교우관계라는 면에서 일상으로 돌아왔다. 대학에서는 누가 과탑인지 중요하지 않았다. 누가 과락인지는 중요했지만 말이다. 다시 호프집에서 감자튀김과 오징어를 함께 뜯는 친구들이 생겼고, 이내 시간이 흘러 다들 뿔뿔이 헤어졌지만 서로를 뒷모습을 응원해 줄 수 있었다. 대학에 와서는 남들과 비교해서 내가 어떠하다는 고민은 더 이상 할 필요가 없었던 것 같다. 그 고민들이 아래로 같은 번뇌들로 교체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는 어떤 사람이 돼야 되는가

나는 어떤 직업을 꿈꾸는가

나는 누구를 만나야 하는가

이런 질문 들 앞에서 우리는 모두 다 다른 답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누군가 나보다 더 뛰어나다는 개념이 적용될 수가 없다. 결국 우리의 목표가 다 같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게 될 때, 우리는 열등감에서 자유할 수 있고 친구를 가질 자격을 갖추게 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나는 나이가 더해지면서 내 고유의 길을 볼 수 있게 되어 가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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