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촌, 이웃까지 우리가 여전히 원하는 것

by 스테이시

시대는 변한다. 친구를 사귀는 법도 혹은 친구와 만나는 채널도 변해 가는 것을 우리는 보아왔다. 내가 여기서 만나는 채널은 사교라는 것이 시작됐던 놀이터를 포함한 장소를 말한다. 놀이터에서 어울리는 것이 관계성에 대한 갈망을 채워주지 못할 때가 오는데 그런 걸 사춘기라고 불렀던 것 같기도 하다. 사춘기라는 시기에 어떤 이들은 이성에 어떤 이들은 또래 집단에 올인하기도 한다. 그들이 그렇게 함으로 얻고 싶었던 것은 더 연결되어 있고 싶다는 느낌이 아녔을까? 나도 그런 시기가 왔을 때 세상과 조금 더 연결되어 있고 싶었던 것 같다. 더 넓은 세상에 대한 갈망이랄까? 그래서 지금 보면 서툰 시도들을 조금씩 했던 것 같다.


중학생 때 했던 학습지에서는 소식지를 매달 발간했었는데, 지금 이름은 생각이 안 나는데 꽤 큰 규모의 회사였던 것 같다. 여하튼 그 학습지를 구독하는 멤버들이 자신의 소개를 써서 보내면 매달 소식지 맨 뒷장에 '우리 펜팔 해요'라는 곳에 소개가 되고는 했다. 그때도 말보다는 글 쓰는 것이 편했던 나는 이렇게 친구를 사귀어 보고 싶다는 생각에 설마 내가 뽑힐까 라는 생각에 '귀여운'이라는 표현을 써서 내 소개를 했는데, 덜컥 그 소개글이 그 지면에 소개되고 말았다. 정말 편지가 많이 왔다. 스무 통도 넘게 남자, 여자 가리지 않고 많이 왔다. 사실 영 생뚱맞은 사람들과 편지를 주고받는 일은 꿈꾸던 이상하고 거리가 멀었는지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그러나, 어느 날 충격적인 일이 일어났는데 우리 반에서 공부를 가장 잘하는 남자아이가 그 소식지를 나에게 보여주면서 자기도 그 학습지를 한다고 말을 걸었다.



굳이 나를 놀리거나, 놀라게 하려고 그런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같은 학습지 하는 애가 우리 반애네 라는 그 친구 딴엔 반가운 마음이었던 것 같은데 나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그게 누군가 나를 실물로 아는 사람이 그 글을 읽을 것이라고 상상도 해보지 않았었고 내가 나 스스로를 귀엽다고 지칭한 것에 자책이 매우 극심했다. 그때 학습지 본사에 전화해서 모든 카피를 회수해 달라고 하고 싶을 정도였다. 나중에 시간이 더 지나서 생각해 봤다. 내가 왜 그렇게 부끄럽고, 왜 그렇게 창피했을까 라고 말이다.


내가 누군가 더 넓은 세계와 연결되어 있고 싶다는 욕망을 가진 것은 아무 문제가 없었다. 다만 나는 현실에서 서 내가 가지고 있는 사실적 모습으로서가 아닌 적당히 감출 수 있고 꾸밀 수 있는 상태에서 친구를 갖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그런 펜팔의 의미와 지금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SNS 사용의 의미가 비슷하지 않나 생각해 본다. 다만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매체가 편지에서 온라인으로 바뀐 것뿐이다. 이 히스토리를 조금 팔로잉해보자면 친구 찾기에 대한 열망은 온라인 시대가 열리면서 아이 러브 스쿨 등의 비대면 커뮤니케이션 사이트들이 대체되었다.


그중에서 무엇보다 히트한 것은 싸이월드였다. 지금 생각해도 싸이월드의 일촌 네이밍은 걸작인 것 같다. 우리는 연결되고 싶었다. 태초부터 지금까지 계속. 그러나 완전히 무방비한 상태에서의 노출이 아닌 어느 정도 서로를 감출 수 있는 지대를 두고 말이다. 그래서 싸이월드는 모두에게 그 지평을 열어주는 첫 발걸음이 되었으며 더 나아가서는 Today 멤버를 선정해서 소개해 줌으로 준 연예인이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다. 또 일촌의 일촌에게 파도 타고 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문화 친구의 친구를 소개받아 친구가 되는 문화를 잘 반영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이후 네이버는 일촌의 패러프레이징 단어 이웃을 선보였고, 트위터는 팔로워, 페이스 북과 카카오는 직관적으로 친구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현재 유행하는 인스타 채널까지 오면서 인간은 나의 편집한 모습만을 보여주고 싶다는 욕구에 더 충실해지게 된 것 같다. 보여주고 싶은 모습으로 좋아요라는 받는 것이 실제 나 자신을 스스로 사랑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나 같은 쫌생이는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서 제시하는 평가에서 자유하지 못할 것을 알기에 어른이 된 나는 하물며 편집한 모습으로 친구를 넓히려는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아니하지 않고 있다. 가입은 다 되어있다. 그러나 여전히 주저하고 있는 나를 보면 시대에 뒷 떨어진 것 같다는 마음도 든다.


'오래 보아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


라는 나태주 시인의 책 제목은 나에게 큰 위안을 주었다. 왜 나는 셀카, 인스타, 유튜브 등으로 짧은 시기에 자기 PR을 멋지게 하지 못할까에 대한 답은 빠른 시간에 누군가에게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할 때에 나 자신이 더 싫어질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이 문장을 보면서, 아 모두를 첫눈에 사로잡을 말한 사람이 되지 않아도 되는구나라는 자유함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오랜 시간 들여서 쓴 글이 읽히고 이해받았을 때 연결되고 있다는 느낌은 지금까지 내가 겪어 온 벅차오름 중에 최고였기에 아직도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 같다.


최근에는 싸이월드가 부활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사실 싸이월드는 내가 본격적으로 글을 썼던 첫 번째 채널이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그때부터 나는 무언가를 씀으로 소통하고 싶어 했나 보다. 싸이월드 제목, 미니미 룸, 내 소개 등에 한 글자 한 글자 얼마나 의미를 담으려고 어찌나 애썼는지 기억이 생생하다. 글자 수 제한 때문에 다 담지 못한 메시지를 BGM을 통해 전달하려고 참 도톨이도 많이 썼다. 내가 싸이월드 부활을 통해 기대하는 게 있다면 그때 내가 수집한 노래들을 들을 수 있을까에 대한 것도 크다. 지금 복구 중인 싸이월드에 로그인하면 내 미니홈피에 있는 사진을 한 장 보여준다고 하길래 복잡한 절차를 거쳐 아이디를 찾고 로그인을 했다. 사진이 4200장 있단다. 그런데 하필 인생에서 최고의 몸무게를 찍었던 시절 사진 한 장을 띡 보여주는 것 아닌가. 허허허. 추억은 아름다울 것이라는 환상이 다시 스며올까 봐 정신 차리게 딱 밤을 맞은 기분이다.


로그인 후 보이는 정보에서 내 가입일자를 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뒤인 것이 아닌가. 그때 깨달았다. 이미 내가 추억이 아름다운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역사를 잊기 위해 한 번 탈퇴했었다는 것을. 너무 오래되어 기억이 가물가물 하긴 하지만 , 아마도 오랜 기간 마음을 주었던 분의 기억과 흔적을 도려내기 위한 방법이었던 것 같긴 하다. 그래서 이번에 사이트가 완전히 복구되면 나는 다시 싸이월드를 이용하게 될까? 일촌이 살아있다면 TMI의 홍수에 빠지게 될까 무섭다. 다들 잘 살고 있나 궁금해져서 무심코 클릭했다가 기록이 남으면 이불 킥을 하게 될 것 같다. 혹시 지금보다 더 서툴고 부족한 나라는 자아를 거기서 발견하게 된다면, 혹은 그 향수에 젖어들게 된다면, 싸이월드의 부활 그 타이밍이 두렵긴 하다.


우리는 이제야 코로나라는 강제성 앞에서 친구에 대한 모든 생각, 기대를 바꿔가고 있는데 싸이월드가 다시 그 속도를 늦추게 하는 걸림돌이 되는 건 아닐까 걱정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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