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테이시 Mar 09. 2022

반장 선거 카피라이팅

작년에 선출 임원이 되는데 실패를 맛 본 딸내미를 보며, 한 번 시도해 봤으니 다시 안 하겠지라고 생각했던 나의 예측은 틀린 것으로 증명되었다. 올해도 반장선거에 도전을 하겠다는 녀석을 보니, 나보다 훨씬 튼튼한 자아를 가진 친구인 것 같아 나름 기쁘기도 하였다. 


작년에 임원에 당선된 친구들은 연설문을 엄마와 공들여 써왔었다는 주장을 하며, 녀석은 나에게 도움을 강요했다. 하지만 지난 일주일간 밤 10시에 퇴근한 엄마를 보며 쯧쯧 거리던 딸은 논술학원 선생님과 Zoom미팅에서 만나 준비를 먼저 시작한 것으로 보였다. 


어제는 연설문 드래프트가 준비되었다며, 들어보라고 한다. 


"여러분,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아십니까? 저는 우리 반 친구들에게 아낌없는 주는 나무가 되어..." 


남편은 무난하고 괜찮은 연설이라며 이제 외우기 시작하라고 했으나, 내 귀에 들린 이상 수정은 불가피했다. 


아낌없는 나무라는 클리셰는 30년 전에도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요즘 세상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보다는 조금 더 동등하고 건강한 관계가 표방돼야 되는 시대가 아닌가? 흠, 내 잔소리는 글쓰기 강의로 이어졌다. 


1. 다른 사람도 할 수 있는 애기는 하지 마라. 너만이 할 수 있는 얘기를 해라. 

2. 설명하지 말고, 질문을 던져서 듣는 이가 이 이야기에 참여하게 하라. 

3. 너의 약점에 대해서 바꿀 수 없을 때 어떻게 포지셔닝할 것인가. 


결국 딸은 나를 카피라이터로 고용하겠다며 계약하자고 했다. 흠, 계약금액은 미미했으나 당선되면 성공보수를 받을까 한다. 위의 관점에서 연설문을 다시 시작해보았다. 


" 안녕하십니까, 저는 반장 후보 OOO입니다. 여러분 제 이름의 뜻은 무엇일까요? (3초 생각할 시간 주기)

제 이름의 뜻은 "깨끗한 통로"(실제 이름의 뜻)라는 뜻입니다. 


통로가 된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과의 연결을 뜻합니다. 

저는 저희 학급 친구들이 서로 연결될 수 있는 통로가 되겠습니다. 

또한, 저희 선생님과 친구들이 잘 연결될 수 있는 통로의 역할을 하겠습니다.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을 때 많은 것을 나눌 수 있습니다.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몇 학년 몇 반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이 친구의 약점은 본인이 쾌활하고 개그를 많이 하여 다른 사람들을 웃게 해 주는 캐릭터는 아니라는 부분이었기 때문에 네가 어떻게 해서 친구들에게 행복하게 웃게 해주겠다라기 보다는 이미 반에 있는 웃음을 창조하는 캐릭터들을 잘 활용하여 웃음이 전해지게 하겠다는 뉘앙스를 주자라고 포지셔닝을 해보았다.


뚝딱, 하나의 카피라이팅 프로젝트를 이렇게 마쳤다. 글 쓰기는 짧은 글이든 긴 글이든 언제나 설렌다. 


  


매거진의 이전글 첫 번째 약국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