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효율!
이토록 아름 다운 단어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유죄라고 생각했다. 효율성은 내 인생의 중추신경 같은 것이었고, 어떤 판단을 하던지 간과한적이 없었던 것 같다. 시간도, 돈도, 머리용량도 그렇게 사용했을 때 대박난 적은 없었도 처참하게 실패하진 않았던 걸로 기억난다. 효율은 우리 가족 전체의 기조였으므로, 너무 익숙하게 젖어 들어 살아왔었다.
지난 주 까지 말이다.
효율성을 애정한다기엔 또 너무 진지하고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INTJ로써의 삶은 너무 버거웠다. 효율적이지만 차갑지 않은 따뜻하고 의미있는 액션들을 채워넣기 위해서 나는 무엇이든 했다. 결과가 난 다면야 못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이 모든 것이 건강할 때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데 삼십 몇년이 걸린 것 뿐이다.
효율과 이별할 수 없는 단어가 바로 책임감이다. 뭔가 돌아가는 프로젝트에 결과를 잘 내고 싶기 때문에 그 놈의 효율성, 효율성 타령을 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똑똑한 체를 오지게 한 것이다. 최소한 input을 넣어서 원하는 결과를 A.S.A.P으로 얻고자하는 심보라니. 원래 부터 몸이 외치는 소리보다 머리의 직관에 더 무게를 부여했던 터라, 몸이 나를 다그치는 소리를 잘 듣지 못했었다.
몇 주 전 부터, 효율성이 나에게 가시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 느껴졌다. 효율성이 나를 쳇바퀴 돌게 하고 있으며 우주 탐험까지는 아니여도 새로운 세계에 대한 꿈을 앗아가고 있다는 사실. 효율성은 늪이 있다. 한 번 속도가 붙으면 너무 재미있어져서 감히 효율성이 현저히 낮은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이 주저되기 때문이다.
제 3자가 나를 보았을 때 게으르다고 할 사람은 없겠지만, 행복하다고 할 사람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명백히 모르는 것이 있었으니, 쉬는 것이었다. 나에게 쉬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뭘 해야 할지 몰랐고, 책을 읽거나 강연을 듣는 등 무언가 생산적인 일에 몰두하려 했었다.
그러다 몸이 반란을 일으켰다. 더 이상 협조하지 않겠다고. 몇 일을 씨름했다. 응급실에 앉아 수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걸 보면서, 나름의 타협 혹은 결단을 했다. 효율을 쫓아 낼 수는 없겠지만 더 이상 왕좌를 주지 않겠다고.
그 첫번째 액션을 했다.
허리 27인 청바지 5개를 버렸다. 나는 10년 넘게 그 바지들은 입어왔는데, 그 이유는 그 바지 사이즈에 날 구겨 넣을 수 있는 것을 기준으로 자기관리를 했기 때문이다. 운동도 식단도 없이, 딱 맞는 바지 사이즈 하나로 살이 찌고 빠지고의 기준을 잡아 효율적인 관리를 한다고 생각했었다. 살이 찌거나 빠지지도 않았는데 최근 그 스키니 진 라인들만 보면 입기 전 부터 머리가 아파왔다. 오늘도 나는 나를 저기 구겨넣고 한 치에 여유 없이 살기를 나에게 명령하는 구나 싶어서...
퇴근하고 와보니 아침에 시킨 펑퍼짐한 청바지가 집에 와있었다. 이렇게 편하다니.
A Whole New World!
효율의 숙주가 되기를 거부 하기를 시작해 본 날이다.
건물을 가로질러서 후다닥 걸으면 15분 걸리는 출근길 대신, 조금 돌아가도 나무가 우거진 산책로를 끼고 있는 길을 선택해 보았다. 초록이 이토록 사랑스런 색이었다는 것도, 새로운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