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모든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많은 기억이 선명하다는 가시를 안고 살아간다. 어렸을 때부터 '추억'이라는 단어를 좋아하려고 애썼던 애처로웠던 이유 중에 하나도 그것이다. 살아있는 모든 기억들은 명백하게 나쁜 기억이 아니라면 추억으로 둔갑시켜서 카테고리화 하는 게 머리 용량에 도움이 되었다. 너무 많은 메모리를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자로서 변명일지도 모르겠다.
기억이 잘 나면 좋은 것 아닌가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대체로 잊어버릴 수 있는 사람이 나는 능력자라고 생각한다. 기억이 한 장의 그림처럼 이미지화되어 정리되어 있다면 일하는 데, 한 가지 능력으로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내게 기억은 그때 느꼈던 모든 감정과 워딩까지를 불러일으킨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다지 많은 연애를 하지 않았다는 것 정도 일지도 모르겠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조금 더 바쁘게 살면 과거와 현재를 같이 살고 있는 것처럼 느끼는 지점을 잊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것 같다. 과거에서 자유해지고 싶은 건지, 과거를 과거로 flat 하게 보관하고 싶은 거였는지 알 수 없으나 모든 시도는 실패했으며 나는 여전히 과거를 선명하게 안고 살아간다.
기억들을 끝에는 여러 질문들이 걸려 있다. 그때 이해하지 못하고 애써 혼자 삼키며 이해한 척 오해한 묻지 못한 질문들이 심장에 들어차 있다. 지금도 7살에, 13살에, 19살에, 22살에, 25살에 내가 공존하는 이유이다. 한편으로 생각해 본다. 끝내 말하지 못하고 묻지 못한 질문이 내 쪽에만 남아 있는 걸까? 아니면 그 시간을 공유한 자들에게도 남아 있을까?
아니면 내가 너무 빨리 달려왔기 때문에 이것들을 소화될 시간을 충분히 주지 않아서 여전히 내 짐이 된 것일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면서 과거를 예쁘게 수습하면서 살아가고픈 것도 큰 욕심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인생의 옵션은 그저 그날 만나는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는 뿐이라는 것도.
유명한 부자 분은 돈이 '조금만 더'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는 데, 나는 그렇다. 오늘보다 내일에 '조금만 더' 가벼운 사람이 되고 싶다. 예전의 나와 일관된 모습을 스스로에게 보이는 데 최적화된 기억이 휘발되길, 내일 아침은 그러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