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 바꾸기, 집 만족도 업
국민임대 49형에 입성하게 된 뒤, 너무 행복했고, 하루에도 몇 번씩 볼을 꼬집어 보고 싶었다. 내가 이렇게 좋은 집에 살고 있는가, 진짜인가, 정말 여기가 우리 집이라고! 세상에! 그렇게 몇 주 지나지 않아서 둘째가 태어났다. 그리고 둘째가 태어나기 4일 전부터 남편은 새로운 직장으로 출근을 하게 되었다.
그제야 아주 조금의 마음의 여유를 찾은 나는 그동안 좁은 집에 사느라 고생하고 또 동생이 태어나서 엄마의 관심을 나눠야 하는 첫째에게 무언가를 사주고 싶은 마음이 한 껏 들었다. 엄마들 사이에서는 둘째가 집에 온 것을 본 첫 째의 마음이. 흡사 남편이 세컨드를 집에 들이는 것 같은 충격이라고 묘사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첫째를 더 위해야 되는 시기라고. 그래서 그동안 엄마 아빠와 작은 집에 구겨져 살아 준 고마운 첫째에게 자동차 침대를 사주고 작은 방 하나를 내어 주었다. 또 둘째가 태어나서, 사랑을 나눠야 되는 것에 미안함에 키드크래프트 주방놀이를 사줬다. (이 주방놀이는 장난감이 아니라 가구라고 해야 옳다^^)
그리고 내가 앞 글에 언급했듯이, 나는 일정한 수입이 생기면 꼭 해주고 싶은 것이 아이에게 책을 사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글 관련 전집과 세이펜 세트를 아빠의 첫 월급으로 질렀다. (아빠의 월급이 이 모든 것을 한 번에 살만큼 많았다는 것이 아니라, 거의 모든 아이템을 12개월 할부로 구매했다는 뜻이다.)
그동안 아이에게 장난감 하나, 옷 한 장 못 사주고 얻어 입히고 키워왔던 것에 대한 보상심리로 랄까, 미래의 수입까지 끌어다 집을 가득 채우고 말았다. 아기는 짐이 아주 많다. 어디선가 얻어 온 아기침대며 중고 바운서, 범보 의자, 아기 목욕통 등등. 집의 반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첫 째의 장난감과 책들까지 더해 지자, 그야말로 집이 점점 좁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 안돼 ~ 감사하는 마음을 이렇게 빨리 잃어버릴 줄이야..
이렇게 되자, 지난해 같이 신청했던 장기전세 2단지 59형 방 3개짜리에 나이가 어려서 잘린 게 곱씹을수록 마음이 아프고, 더 나아가서 1단지 59형을 신청했으면 넉넉히 됐을 거라 생각하니
자책이 몰려왔다.
그렇지만, 나는 남 탓이나 과거를 후회하는 행위에 답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내가 그 자리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몰두해보기로 했다. 일단, 더 작은 크기의 미성에서도 그래 왔듯이 기분전환도 할 겸, 아이들의 발달 속도와 상황에 따라 집의 구조, 즉 가구 배치를 지속적으로 바꿨다. 아이들을 잘 관찰하고 있다가, 이 지점은 아이들이 가는 빈도가 줄어들고 손이 가지 않다는 것을 즉각 반영해서 집안에서 죽어가는 공간이 없도록 부단히 도 노력했다.
어떤 집이던 절대적으로 그리 큰 집은 아닐지라도, 그 집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써서 만족도를 높이는 것은 주거 고민을 해결하려고 칼자루를 뽑아 든 모든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선행요건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케아 신입사원 교육을 받을 때 50여 명의 동기들 앞에서 그런 발표를 한 적이 있는데,
"요즘 보통 집이라고 하면, 몇 억하지 않습니까, 그 집에 있는 방 한 칸을 내가 쓰는데 얼마를
지불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그것을 빌려 쓰던 소유 해서 쓰던, 당신이 그 공간을 쓰는 대가로
당신은 대략 1억 원 정도를 지불했습니다. 저라면, 1억 원을 내고 쓰고 있는 방 중에 하나를 창고
내지 옷방으로 쓰지는 절대 않을 것 같습니다. 1억 원짜리 창고를 만들어 놓고, 집에 좁다고 불평
하는 것은 여러분의 라이프스타일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효율적인 홈퍼니싱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는데, 집이 맘에 들지 않게 느껴진다 라는 신호가 올 때 새 집을 찾아 나서기 전에 거쳐가야 할 일종의 통과 의식 같은 것이다. 사람들이 나에게 왜 집(가구 배치)을 그렇게 자주 바꾸냐고 물어보면, 내 대답은 이러하다.
"집을 바꾸기는 어려워도, 집안을 바꾸는 것은 어렵지 않으니까요."
많은 분들이 지금 집이 마음에 안 들어요 라고 말하지만, 그럼 여기 말고 다른 좋은 집을 찾아봐야겠다.라고 쉽게 생각해버리지, 현재 집의 가치를 발견할 시도는 많이들 하지 않으신다. 나는 늘 어떤 집에 들어갈 때마다, 최소 한 달에 한 번은 구조 바꾸기를 하면서 그 집이 내게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장점을 다 살려보고, 그 집을 만끽한다. 그러므로 이사를 나올 때마다, 그 원룸 형태의 미성에서 조차도, 나올 땐 빨리 이사 가야 겠어라는 마음보다 애틋함과 고마움이 늘 범벅이었다.
남편은 퇴근해서 집에 오면 새 집(?)이 되어 있으므로 다른 집에 온 줄 알았다며 놀라 주고는 한다. 아이들은 엄마 구조 바꾸기 하는 거야 라며 자신들의 의견을 반영해 주기도 했다. 자주 이렇게 구조를 바꾸다 보면 큰, 장점이 있는데, 집 안에 쓸데없이 쌓아 두는 짐이 없게 된다. 사람들이 늘 입에 달고 사는 말 중에 하나가
"아, 버려야 하는데"
라는 말이다. 우리가 집이 좁다고 느끼는 이유 중에 하나가 꼭 필요하지 않은 것을 버리지 않고 꼭 끌어안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미니멀리즘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1억이 당신에게 최대한 역할을 해주고 있냐는 이야기이다. 당신의 방 한 칸 1억은 당신에게 만족감을 주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사소한 장애물들 때문에, 당신의 1억이 부정당하는 것은 슬프지 아니한가..
그리하여, 나는 그 49형 집에서 셀 수도 없을 만큼의 변화를 시도해보고 친구가 놀러 와서 "어 저게 저기 있었나? 원래 자리가 어디였지?"라고 물으면, "음, 우리 집은 원래 자리라는 게 없는데..~"라고 대답하길 반복하며, 1년 이상을 보냈다.
그러다가 둘째가 무럭무럭 커가는 걸 보면서, 성별이 다르므로 방이 3개가 필요한 게 아닐까라는 가설을 검증해 보기로 했다. 다시 SH공사의 홈페이지를 즐겨찾기 해놓고, 다음 목표를 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