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오,보라! 11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테이시 Oct 01. 2022

다시 '보라'님으로

이 따끔씩 오른쪽 저림 증상이 나타나고는 했지만, 겨울이 되고 날씨가 추워짐에 따라 그 또한 종적을 감췄기에 오보라 씨는 그저 모든 게 더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30대의 가장 큰 고민인 이사와 이직 중에 하나는 깔끔하게 처리가 된 것이었고 이사는 아이가 고학년이 되기 전에 다시 결정하자고 남편과 합의를 본 상태였다. 원래 이사라면 질색하던 남편을 거기까지라도 설득해 놓은 것은 오보라 씨 입장에서 큰 수확이긴 했다.


모든 것이 괜찮았다. 새로 이직한 스타트업에서 ‘보라님’이라고 불리는 것만 빼고는 말이다.


전 직장에서 오보라 씨는 빨리 승진하고 싶어 했었다. 적어도 대리가 되면 보라 씨라고 불리는 횟수는 줄을 테니 말이다. 간혹 오보라 씨라고 부르는 임원분들도 계셨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오 대리, 오 과장으로 불린 뒤 스타트업에 온 오보라 씨는 적지 않게 당황했다. 스타트업은 직급 체계와 상관없이 늘 ~~ 님이라는 호칭을 썼다. 졸지에 10여 년 만에 다시 “보라님”이 된 오보라 씨는 보라님이라고 불릴 때마다 자신이 보라하고 있는지를 점검받는 기분이었다.


오보라 씨가 조인한 스타트업은 전체적 연령이 매우 어렸다. 오보라 씨도 굳이 우겨보면 청년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게 이나 이곳은 그런 주장을 하기 무색하게도 대학생 인턴들이 참 많은 곳이었다.


“오보라님은 몇 학번이세요?”


라는 질문을 들을 때마다, 오보라 씨는 대답하기 민망했다. 또한 오보라 씨는 2002년 월드컵을 모르는 그들과 어디서부터 대화의 공통점을 찾아야 할지 매우 난감했다. 팀에 리드 포지션으로 조인했지만 오보라 씨가 이 분위기에 적응하고 팀장님을 도와 팀을 이끌기까지는 시간이 꽤 필요할 것 같았다.


지훈 님은 오보라 씨 팀의 팀장님이었다. 지훈 님은 오보라 씨보다 두 살 많은 오보라 씨와 같은 대학 같은 과 출신이셨다. 그 정도 차이면 학교 다닐 때 만날 법도 했지만, 애석하게도 그들의 첫 만남은 면접 때였다. 지훈 님은 오보라 씨를 리드로 데려오면서 많은 기대를 했다며 빨리 같이 열심히 해보자는 이야기를 자주 하셨다. 이전 회사는 사회 초년생 때 멋모르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것이었지만, 이번엔 달랐다. 경력직이고 팀장은 아니지만 리드로 입사했으니 무언가 빨리 보여줘야 한다는 마음은 비워도 비워도 오보라 씨의 마음에 다시 채워지고는 했다.


‘한 달이면 다 적응하겠지’


라고 자신했던 오보라 씨였지만 점점 자신을 잃어 가고 있었다.


‘다음 달 이면 적응하겠지.’


다음 달이 되면 또 다음 달을 기다렸다. 대기업에서는 아무 생각 없이 기계 부품처럼 일했다면, 스타트업에 와서는 업무 구조와 제품을 개선시키는 위해 아이디어를 계속 내야 했다. 수직적 구조가 없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수평적 구조도 공존하는 신세계에 오보라 씨는 쉽게 녹아들지 못했다.


회의 시간에 낸 아이디어에 대해 인턴이 반대 의견이라도 내는 날에는 팀장님께 반대를 받은 것보다 더 풀이 죽는 오보라 씨였다.


“오 보라님, 제 생각에는 ……”


라고 또박또박 말하는 젊은이들을 보면서 오보라 씨는 정말 세상이 많이 변했다는 생각을 하고는 했다. 오보라 씨가 인턴을 하던 시절에는 복사하고 서류더미 나르고 그런 것만 했는데, 오보라 씨가 스타트업에서 와서 만난 인턴들은 영어는 기본에 컴퓨터 툴도 잘 다루고, 자신의 의견을 뚜렷이 말하기에 능했다.


오보라 씨는 ‘슬랙’에서 이름을 어떻게 바꾸는지 모르거나 ‘노션’에서 표를 만들어야 할 때 인턴들에게 물어보아야 했다. 명색이 리드인데, 자꾸 초라한 모습의 고인물로 비치는 것 같아 오보라 씨의 마음은 물먹은 스펀지 같이 자꾸 무거워만 갔다. ‘피그마’로 전달받은 문서를 수정해야 하거나 ‘구글 캘린더’로 회의실을 예약할 때에는 너무 계속 물어보기 민망하여, 구글에서 검색해 가면서 해야 했던 바람에 남들에 비해 두 배의 시간이 걸리고는 했다. 미팅은 왜 이리도 많고, 자발적 야근자 또한 이다지도 많은지. 적어도 이들은 자신들이 팔고 있는 서비스를 정말 사랑하고 있는 듯했다.


오보라 씨는 모두가 이 스타트업에 오너인 것처럼 일하는 이 문화가 정말 생소했다.


물론 이 기간 동안 누구도 오보라 씨에게 왜 이렇게 적응이 늦는지 다그치거나, 대기업 마인드를 버리라거나, 퍼포먼스가 낮다고 추궁하지 않았다.


다만 이 모든 압박은 오보라 씨 스스로 집어 먹은 것이었다.


‘나 괜히 옮겼나? 내가 한 선택이 잘한 게 맞을까?’

‘그냥 대기업에 편하게 있을걸 그랬나?’

‘실적에 대한 압박이 암묵적으로 존재해서 돈을 더 많이 주는 거구나’


오보라 씨는 점점 자신감을 잃어갔지만, 이미 이직은 벌어진 일이었고, 만에 하나 다시 대기업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이전에 느끼던 답답함을 느끼게 될 것이 자명한 일이었다. 오보라 씨에게 대기업은 한 번 헤어진 연인이었다.


사실 오보라 씨의 모든 것은 더 나아진 것처럼 보였다.


더 가까워진 출퇴근 거리

앞자리가 바뀐 월급

출근 시 자유 복장

에너지 넘치는 팀 동료들

이끌어 주려는 학교 선배이자 사려 깊은 팀장님까지


가정에서도 모든 것은 괜찮아 보였다. 남편은 승진을 했고, 딸은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잘 적응했고, 하교 후에는 친정 엄마가 딸을 봐주셨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교육비가 증가하긴 했지만 어떻게 보면 딸이 똘똘하게 잘 따라와 준다는 뜻이기도 하니 어찌 보면, 행복한 고민이었다.


보라 씨를 둘러싼 모든 것은 괜찮았다. 아니, 나쁘지 않았다. 여전히 오보라 씨만 빼고 말이다.


이전 10화 나쁘지 않은 퇴직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