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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오,보라! 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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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이시 Oct 01. 2022

나쁘지 않은 퇴직

이직은 망설인 순간들의 합이 무색할 정도로 순조로웠다. 3차 인터뷰에서 4분의 인터뷰어를 한 시간씩 연달아 만나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었지만 두 번 하고 싶지는 않은 경험이라고 오보라 씨는 생각했다. 입이 바짝 말라옴에도 불구하고 4시간 안에 화장실에 가고 싶어지면 안 되기 때문에 물을 마시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해야 했다.  오보라 씨는 본인이 인터뷰를 당하는 입장이었지만, 자신에 대한 제한된 정보로 한 시간 동안 대화를 이어나가야 되는 인터뷰어 들을 불쌍하게 느끼기도 했다. 모든 지원자들을 이렇게 심층 인터뷰한다면, 저들도 매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에 안쓰럽기까지 했다.


다행히 1차 인터뷰 때, 육아는 친정엄마가 가까이 살면서 도와주고 있다는 말이 클리어했는지 그 뒤부터는 워킹맘에 대한 우려 섞인 질문을 하는 인터뷰어는 없었다. 또한, 4명 모두의 마지막 질문이 언제부터 출근이 가능한지 였기 때문에 오보라 씨는 살짝 합격의 그림자를 엿볼 수 있었고, 결국 최종 Offer 메일을 받을 수 있었다.


메일로 주고받은 연봉협상도 오보라 가 처음 낸 의견이 많이 반영되어 나쁘지 않았으며, 첫 출근 일자도 5주 뒤로 현재 회사에 1 month 노티스를 지키면서도 일주일 정도 쉴 수 있게 결정되었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올 때 결정된 이 소식은 마치 도토리를 쟁여 놓은 다람쥐가 겨울을 맞이하는 기쁨만큼이나 오보라 씨의 마음을 풍성케 했다.


이 과정에서 오보라 씨가 시원섭섭하면서도 가장 어려웠던 것은 나쁘지 않은 관계로 지낸 전 직장 동료들에게 이별을 고하는 것이었다. 입사동기들은 대기업을 버리고 스타트업으로 가는 오보라 씨를 부러워하면서도 걱정해 주었고, 직속 후배 호진 대리와 민지 씨는 적어도 마냥 아쉬워했다.


“아, 과장님 안 계시는 연말 마감을 해야 한다니, 상상이 안돼요."


호진 대리는 보라 씨가 떠나는 것이 아쉬운 것인지, 자신의 일이 빡세 질까 봐 걱정스러운 것인지 경계선에 있는 말을 건넸고, 최근에 결혼해서 재테크에 관심이 생긴 민지 씨는 퇴직금의 행방을 조심스레 물었다.


“과장님, 퇴직금 받으시면, 어디 쓰실 거예요?”

“음, 아직 결정을 못했어. 나는 주담대 갚아서 빚을 줄였으면 좋겠는데, 남편이 차를 사고 싶어 해서.”

“에이, 과장님. 주담대는 30년인데 천천히 갚으면 되죠. 차 하나 새로 뽑으세요.”


호진 대리는 남편의 심정을 백 번 이해한다는 듯 바람을 잡았다.


“오피스텔 하나 사서 월세 받는 건 어떠세요? 아님, 경매해보세요.”


전세로 신혼을 민지 씨는 그 사이 경제적 자유에 대해서 많이 고민했는지, 자신의 바람을 보라 씨에게 투여했다.


“일단 양가 부모님 여행 한번 시켜드릴까 해.”


말은 이렇게 했지만, 자신의 십여 년 노고에 대한 정산을 오롯이 자신을 위해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오보라 씨가 안 해 본 것은 아니었다. 다만, 자신을 위해서만 그 돈을 쓴다는 것은 오보라 씨의 보라 다움을 먹칠하는 것 같아 오보라 씨는 보라 다움을 유지하는 노력을 뇌 주름에 인풋 했다.


“그나저나, 과장님 전에 입원하신 건 이제 괜찮으신 거예요?”


코로나 소식에 민감했던 호진 대리는 코로나 백신 부작용에 대해서 자세히 듣고 싶은 듯했다.


“아, 응. 아무래도 백신 부작용인 것 같은데 의사들도 확실히 증명할 수는 없다고 그러더라고.”

“어머, 백신 부작용 겪으신 분이 정말 있구나. 왜 뉴스에서 백신 맞고 하루 이틀 안에 죽은 애기 많이 여러 번 보도 됐잖아요. 코로나 걸려도 대부분 죽지 않는데, 백신 맞고 죽으면 진짜 억울할 것 같더라고요. 과장님, 이만하면 다행이신 거네요.”


민지 씨는 특유의 과장된 몸짓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러게, 지금은 증상이 심하지는 않아서 그저 이만하기 다행인 것 같아. "

“코로나 때문에 난리긴 하네요. 과장님 안 계실 때 옆 팀 박 대리가 코로나 감염돼서 회사 전체 난리였어요. 그날 조기 퇴근해서 다 검사받으러 가고, 다행히 같이 밥 먹은 사람 몇몇만 감염되고 괜찮긴 했는데, 박 대리 일주일 결근한 거는 병가처리 됐나? 공가처리 됐나?”


호진 대리는 마치 언젠가 자신도 걸릴지 모르는 상황을 대비해 병가인지 공가인지 정확히 알고 싶어 하는 듯했다.


“전염병인데 설마 개인 병가 내라고 하겠어? 공가 처리해줬겠죠.”


민지 씨가 거들자 호진 대리도 확신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코로나 걸린 사람들은 격리 수당 받는 다는데, 박 대리한테 물어봐야겠네.”


호진 대리는 다시 한번 자신도 언젠가 걸릴 것을 준비하고 있는 듯 말했다.


“전에 코로나 재난 지원금 나온 게 쏠쏠했거든요. 저흰 그걸로 이케아 가서 소파 샀어요. 과장님은 어디에 쓰셨어요?”

“어?"


오보라 씨는 이 부분에서 망설여졌다. 오보 라씨네 부부는 대기업 맞벌이여서 소득초과로 받지 못했기, 아니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보라 씨는 이 대목에서 솔직히 말했다가는 호진 대리의 부러움 섞인 이야기를 꽤나 오래 듣게 될 것 같아 하얀 거짓말을 하기로 했다.


“어. 우리는 애기 학원비.”

“저희는 몇 번 장 보니까 다 없어지더라고요. 또 나왔으면 좋겠네요.”


다행히 민지 씨가 이 대화를 빠르게 자신 쪽으로 시프트 해줘서 오보라 씨는 하얀 거짓말은 한 마디로 끝날 수 있었다. 민지 씨는 자신이 가져간 대화의 바통을 이용하여 정작 가장 궁금한 것을 오보라 씨에게 물었다.


“과장님, 이번에 연봉 많이 올리면서 가시는 거죠?”


오보라 씨는 연봉에 대해서 먼저 묻는 MZ세대의 당돌함에 놀랐지만 굳이 거짓말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어, 스타트업이라서 그런가 대기업 출신들은 잘 맞춰주더라고.”

“과장님, 가서 좋은 자리 있으면 연락 주시 기에요.”


호진 대리의 마지막 말이 진심인지, 그냥 해 본말인지 분간하기 힘들었으나 오보라 씨는 자신이 후배들을 남겨두고 떠나는 것 같은 미안함에 그러리라고 약속했다.


회사를 퇴사하던 날, 오보라 씨는 생각보다 담담했다. 자신의 청춘을 보낸 회사였기에 눈물이 날 것을 걱정했으나 다음 달부터 앞자리가 바뀐 월급을 받을 생각을 하니 기분들이 마구 섞이는 것 같아서 오보라 씨는 기분이 잡채 같다고 생각했다.


퇴사는 그동안 오보라 씨의 나쁘지 않은 삶에서 나쁘지 않은 역할을 해 준 한 가지 요인이 오보라 씨 인생에서 퇴장하는 것을 뜻했으니, 이제 오보라 씨는 모든 게 더 좋아질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아니, 착각했다.


그때만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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