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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오,보라! 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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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이시 Oct 01. 2022

외상 없는 응급실 환자


“내가 너무 예민한 걸 거야. 피곤해서 그럴 수도 있지.”


라고 애써 마음을 다 잡아 보던 오보라 씨는 그 와중에도 병원에 갔다가 회사에 갈 생각을 하며 가방을 챙기고 있었다.


‘회사에 갔다가 점심시간에 병원에 갈까? 병원에 갔다가 회사에 갈까? 반차 쓰기엔 마리 방학 때 연차 써야 돼서 아껴놓아야 되는데……’


퐁당퐁당 생각은 좌우를 오고 갔지만, 확실한 건 단 하나였다. 오른쪽 얼굴부터 오른쪽 발 끝까지 마비 증상이 있다는 것 말이다. 오보라 씨는 생각했다. 동물을 사냥할 때 쓰는 마취총을 맞아 본 적은 없지만 맞는 다면 분명 이런 느낌일 것이라고 오보라 씨는 나름의 확신했다. 그냥 피곤했다고 합리화해보기엔 너무 백신 2차를 맞은 지 사흘밖에 지나지 않은 상태였다.


오보라 씨는 머리 말고 가슴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손을 뻗어 택시를 잡았다.


“아저씨, 한샘 병원 응급실로 가주세요.”


응급실이라는 단어는 택시 아저씨의 질주본능을 자극한 듯했다. 평소 오보라 씨가 운전하면 20분쯤 걸렸던 거리였는데 아저씨는 7분 만에 질주해 주셨다. 응급실 앞에서 서자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와 싸우러 전쟁터에 나가는 장수의 마음이 드는 오보라 씨였다. 상대가 얼마나 강하지는 알 수 없었지만, 싸워보지도 않고 질 수는 없었다.


“어떻게 오셨을까요? 보호자 이실까요?”

“아니요, 제가 아파서 왔는데요.”


멀쩡해 보이는 젊은 여자가 제 발로 걸어와서 응급실 앞에서 아프다고 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지는 않았는지 직원은 재차 물었다.


“환자 본인이시라고요?"

“네”

“발열체크 한 번 하겠습니다. 최근 3일 내에 받으신 코로나 검사 결과 있으실까요?”


36.6도


열이 정상으로 나오자 직원분은 정말 아픈 게 맞는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오보라 씨를 훑어보았지만 오보라 씨는 어제 82,600원이나 내고받은 코로나 검사 결과 문자를 자랑스럽게 내밀었다. 마치 그 문자는 오보라 씨가 하이패스가 장착된 페라리의 차 주인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느끼게 해 주었다.


응급실에 들어서자 어디선가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어떤 아주머니가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는 소리가 귀를 찔렀다. 응급실엔 의식을 잃을 정도의 중상자만 오는 곳인 줄 알았는데 멀쩡하게 의자에 앉아서 대기하는 사람도 꽤 많았기에 오보라 씨의 머쓱함은 금세 자취를 감추었다.


“어디가 아파서 오셨을까요?”

“예, 제가 지난주에 백신 2차를 접종했는데 어젯밤부터 우측에 마비 증상이 있어서……”

“마비요? 오른쪽 팔 한 번 들어보시겠어요?”


오보라 씨는 오른쪽 팔을 들어 올렸다.


“마비라고 하면 움직이지 못하는 걸 뜻하는데 지금 정확히 어떤 증상이 있으신 걸까요?”


간호사는 오보라 씨가 별 거 아닌 걸로 응급실에 온 듯 쳐다보며 귀찮음이 가득한 말투로 되물었다.

 

“아, 치과에서 마취주사 맞는 느낌이 오른쪽 턱에서 시작해서 오른쪽 발 끝까지 퍼졌습니다. 오른쪽과 왼쪽의 느낌이 확실히 다릅니다. "


오보라 씨는 그때 깨달았다.


이 증상이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고 오보라 씨가 말하는 것만으로는 남편이 그랬듯, 의료진들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환자분, 그럼 오른쪽과 왼쪽 느낌이 다르신 건데, 일단 뇌경색 의심 증상일 수 있으니 CT 찍고 기본 피검사 등 진행하겠습니다. "


오보라 씨는 그때 한 가지 더 깨달았다.

오늘은 출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배정받은 응급실 침대에 누워있자 간호사가 링거를 꽂으러 왔다. 오보라 씨는 링거가 싫었다. 아파서도 불편해서도 아니었다. 오보라 씨에게 링글을 꽂는 간호사마다 잔소리를 했기 때문이었다.


“환자분, 혈관이 너무 얇으셔서.”


오늘 만난 간호사 분도 한 번에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뉘앙스를 충분히 풍기며 오보라 씨의 팔에서 혈관을 보기 위해 때리기 시작했다.


“주먹 좀 꽉 쥐어보세요.”


간호사는 바늘을 찌르기 전부터 확신이 없는 표정이었는데, 역시나 바늘을 찌르고 나서도 고개를 갸우뚱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두 번을 반복하고 나서야 간호사는 링거를 연결하는 데 성공하셨다. 오보라 씨는 이 전에 최대 4번까지 찔려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 간호사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다. 많이 찌르는 간호사일수록 일부러 인지 더 뻔뻔하게 전혀 미안한 표정을 짓지 않는 느낌을 받고는 했기 때문에 오보라 씨는 생각했다.


‘환자에게 세게 보여야 하는 게 간호사 세계의 룰인가?’



링거를 연결한 다음 간호사가 간 뒤 또 다른 간호사가 와서 컵과 종이를 주며 소변검사와 CT를 다녀오라고 했다.


“아 링거 연결하기 전에 말해주면 좀 좋아.”


그나저나 아까 예진실에서 들은 뇌경색이라는 단어가 떠올라 오보라 씨의 심장은 다시 요동치기 시작했다.

‘뇌경색은 나이 드신 분들한테만 나타나는 것 아닌가?’

밤새 검색하고 또 해보았지만 다시 백신 부작용이라는 단어를 검색하자 새로운 뉴스 기사가 하나 올라온 것이 보였다.


정부, 백신 부작용 보상에 나서


백신 부작용으로 인해 발생한 병원비에 대해서 정부에서 연관성 심사 후 보상을 하겠다는 뉴스였다.

‘이건 뭐, 나이스 타이밍이라고 해야 되는 건가. 뭔가 참.’

불행 중 다행인 것 같기도 했지만, 지금 오보라 씨가 겪고 있는 이 이상한 증상이 백신 부작용이라고 증명이 될지는 미지수였다. 심증은 있지만 물증은 없다는 표현이 그때 딱 오보라 씨의 마음을 표현한 말이었다.


응급실에서의 오전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지났다. 어제 거의 한 숨도 자지 못했지만 언제 의사가 오는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기 때문에 잠들기도 녹록지 않은 상황 같았다. 옆 병상에서 노부부와 의사의 대화가 들려왔다.


“아버님, 이제 술 그만 드셔야죠. 지난주에도 오셨잖아요.”

“그래, 여보. 의사 선생님 말 좀 들어.”


아내 분은 이때다 기회가 싶은지 의사 선생님 말 끝마다 잔소리 르 덧붙이셨다.


“아니, 이게 누구야? 우리 의사 양반 아니야. “

“아이코, 이 주책바가지야. 술 좀 깨! 그놈의 술!”

“넘어지신 것 간단히 치료하고 처방해 드렸습니다. 조심히 가시고 아버님 술 좀 줄이십시오.”


아내 분은 민망했는지 의사분께 연신 굽실 거리며 인사를 하고 남편 분을 데리고 응급실을 나가셨다.


반대쪽 병상에도 노부부가 계셨는데, 이 쪽 또한 또 다른 드라마였다.


“맹장염이십니다. 바로 수술하셔야 하는데, 저희 수술실이 오늘 꽉 차서 타 병원으로 이송 후 수술받으실 예정입니다. 조금 더 빨리 오시지 어떻게 이렇게 참으셨어요?”

“그러게, 여보 아프면 아프다고 해야지. 바보같이 참으면 어떡해.”


이쪽 할아버지는 아파도 아프다고 말 안 하고 꾹 참는 분이셨던 것이었다. 괜히 아빠 생각이 나는 오보라 씨였다.


‘우리 아빠도 아파도 아프다고 말 안 하는 스타일인데……’


응급실에 존재하는 많은 사연들에 몰입된 오보라 씨는 덕분에 마비된 오른쪽이 영영 낫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조금이라도 덜 할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도 두 시간이 더 지나서 신경과 레지던트가 왔다.


“오 보라님? 신경과에서 왔습니다. 오른쪽 마비 증상이 있으시다고요?”

“예, 제가 지난주에 백신 2차를 맞았는데, 갑자기 어젯밤부터 오른쪽 턱부터 치과에서 마취주사 맞는 느낌이 오른쪽 다리까지 퍼졌습니다."

“CT상으로는 이상이 없긴 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오른쪽 왼쪽을 같이 문질러 볼 테니 느껴지는 감각을 1에서 10으로 표현해 보시겠어요?”


레지던트는 손가락으로 오보라 씨의 손을 문질렀다.


“왼쪽이 10이라고 하면 오른쪽은 몇 점일까요?”

“오른쪽은 2-3 정도입니다. "

“그럼 확실히 다른 거네요?”


레지던트는 얼굴, 어깨, 다리, 팔 등을 몇 군대 같은 테스트를 진행했다. 그때마다 오보라 씨의 대답은 같았다.

“오른쪽은 2-3 정도입니다.”

“오 보라님, 최근에 스트레스 많이 받으신 일 없으신가요?”


‘아니, 내가 아무리 의학지식이 없어도 그렇지, 스트레스 많이 받은 걸로 응급실에 왔을까 봐?’  


라는 마음속의 말은 곱게 접고 오보라 씨는 대답했다.


“직장인이야 다 스트레스가 있습니다만, 이 증상은 백신 2차 접종 이후 처음 발생했습니다. "


“그게, 오 보라님도 아시다시피, 현재 코로나 백신 부작용에 대해서 진행된 연구가 많지 않고, 저희도 케이스를 다 알지 못해서 백신 부작용이라고 의심은 되나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다만, 왼쪽 오른쪽 느낌이 다른 것은 뇌경색 의심 증상일 수 있으니 며칠 입원하시면서 뇌 정밀 MRI을 찍어보시는 걸로 하시죠.”


그것이 보라 씨 입원의 첫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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