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오,보라! 07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테이시 Oct 01. 2022

낯선 증상과의 조우

2차 접종 후 몸살처럼 앓긴 했지만, 그다음 주 월요일은 출근 안 할 정도의 컨디션은 아녔기에 오보라 씨는 평소처럼 회사로 향했다. 지난주 목금을 쉬었다고 메일함에 200여 개의 메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메일 분류를 하고 답변을 하고 나니 벌써 점심시간이었다. 


“오늘 점심은 제가 쏩니다. “


사무실의 정적을 깬 것은 호진 대리였다. 


“저희 팀 모두 백신 맞은 접종을 마친 기쁜 날 아니겠습니까? 이 앞에 파스타 집으로 가시죠.”


호진 대리는 집에 갓난아이가 있어서 인지 유독 코로나 소식에 예민하긴 했었다.


“아, 그럼 후식은 내가 쏠게. “ 


팀 내에서 가장 늦게 접종을 마친 것에 대한 미안함과 무안함을 무마하기 위해 오보라 씨는 호진 대리의 오지랖에 장단을 맞췄다. 
 
스타벅스는 점심 식사 후 바로 회사에 돌아가고 싶지 않은 많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그 사람들 중 한 팀은 오보 라씨네 팀이었다. 


“과장님 집 어떻게 사신 거예요? 저 요즘 결혼 준비하면서 집 알아보는데 한숨만 나오더라고요.” 


민지 씨는 오보라 씨에게 부러움이 섞인 말투로 부동산 화두를 꺼냈다. 

호진 대리도 질세라 부동산 토크에 기름을 부었다. 


“신혼부부 청약해서 되려면, 애가 둘은 돼야 돼. 그래서 우리도 둘째 계획한 거 거든.”

“어머 대리님, 그럼 와이프 분은 일 쉬시는 거예요?”


민지 씨는 마치 자기 일이라도 되는 듯 풀이 죽어 물었다. 


“그렇긴 하지. 근데 또 둘이 벌면 소득이 많이 잡혀서 정부가 하는 신혼부부 특혜를 못 받아. 이러나저러나 집이 더 중요하니까 관뒀지. 뭐” 


그 과정을 다 지나온 오보라 씨는 뭐라고 애기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그래도 과장님은 서울에 집 있으니까 고민 없으시죠?”


민지 씨는 한 번 더 오보라 씨에게 마이크를 건넸다. 


“아, 그게. 우리는 결혼할 때 대출이 70% 까지 나오던 시절이라 서울 외곽에 집을 사서 시작할 수 있긴 했지. 그때는 빚이 많으면 큰일 나는 줄 알고 외곽에 샀는데, 대출 나올 때 학군지에 들어갔어야 하는데 후회하고 있어.”

“과장님, 그래도 서울에 있으신 게 어디예요, 저희는 애 둘이라서 간신히 경기도 에 청약된 건데. 꼭 학군지에 있어야 공부 잘하나요? 할 애들은 어디서든 한 데잖아요.”


오보라 씨는 


‘호진 대리가 아직 애기가 어려서 그래’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참기로 했다. 


“그런가?”


민지 씨는 무언가 도움이 될 만한 가이드를 얻고 싶어 하는 듯했지만, 부동산 토크라는 게 늘 그렇듯 개인적인 바람들만 오고 갔다. 


“그래도 집 값이 이렇게 올랐으니 떨어지지 않을까요?” 

“서울은 너무 비싸니까 좀 떨어져야지.”


호진 대리의 진의가 뭔 지 오보라 씨는 궁금했다. 


‘서울 집 값이 떨어지면 서울 집을 사고 싶다는 뜻인가?’


“뭐, 오를지 떨어질지는 나도 모르지. 근데 올라도 외곽이 1억 오르면, 학군 지는 2-3억이 올라 버려서, 집이 있어도 박탈감이 들긴 해. 민지 씨도 결혼할 때 살 수 있으면 사면 좋지.”

“사면 좋은데, 저희 예산으로는 외곽에 오래된 아파트 밖에 살 수 없더라고요. 근데 신혼부터 오래된 아파트 살기는 싫고, 새 아파트 전세로 들어갈까 하고 있긴 해요.” 


이 부동산 토크를 언제 끝낼 수 있을까 고민할 쯤에 오보라 씨의 이름이 불렸다. 
 
 “사이렌 오더 하신 오보라님, 주문하신 음료 3잔 나왔습니다. “ 


그날 오후는 왜 이리 시간이 늦게 가던지, 차가운 아메리카노와 함께 임에도 회의 시간에 졸음이 쏟아져 손톱으로 허벅지를 수십 번 꼬집은 오보라 씨였다. 하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월요일은 늘 이래 왔다. 다를 것 없는 하루를 마치고 귀가한 오보라 씨는 평소보다 더 몸이 무거운 것 같고 어지러운 것 같아 놀아달라는 마리에게 TV를 틀어주고 자리에 일찍 누웠다. 


“아빠 설거지 끝날 때까지만 보고 있기, 약속! 엄마는 좀 누워 있을게.” 


“백신 접종 후 왔던 몸살 기운이 아직 깨끗이 사라지지 않아서겠지. 좀 쉬어”


남편의 말처럼, 별거 아닐 거라고 생각하고 자리에 누운 오보라 씨는 쉽게 잠들 수도 없었다. 뒤척거리며 휴대폰을 보던 오보라 씨는 갑자기 이상한 느낌에 휩싸였다. 


오른쪽 턱 쪽에서 치과에서 마취주사를 맞은 것 같은 느낌 났다. 


‘설마, 설마’ 


오보라 씨는 재 빠르게 백신 부작용 안면 마비를 검색했다. 몇 개의 포스팅을 읽는 동안 오보라 씨는 마취되는 느낌이 휴대폰을 쥐고 있는 오른쪽 팔로 퍼져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설마, 설마, 백신 부작용은 아니겠지?’

‘내가 예민한 걸 거야.’


두 마음이 오고 가는 짧은 찰나 가운데, 마취 증상은 오른쪽 발로 퍼져가고 있었다. 그제야 덜컥 겁이 나는 오보라 씨였다. 


‘마비가 심장으로 퍼지면 어떡하지?’

‘마비가 전신으로 퍼지면 어떡하지? 평생 몸을 못 움직이는 거 아니야?’


오보라 씨는 다급하게 남편을 불렀다. 


“여보, 여보 나 병원에 가야 될 것 같아.”

“이 시간에?”

“몸 오른쪽에 마비 증상이 퍼지는 느낌이야.”

“백신 때문인가?”

“모르지, 일단 응급실로 가야 될 것 같아.”


마리는 엄마가 병원에 가야 된다는 심각성보다 보고 있던 TV를 꺼야 된다는 것에 짜증이 난 듯했지만, 오보라 씨는 죽음과 자신의 사이가 그리 멀지 않다는 판단이 들고 있었다. 


“여보, 빨리, 빨리.”


다행히 차가 막히지 않아 10분 만에 오보라 씨는 응급실 정문에 도착했다. 남편은 차를 주차하러 가고 오보라 씨는 응급실 앞에 직원에게로 뛰어갔다. 


“저, 제가 지금 오른쪽에 마비 증상이 있어서”


직원은 단호하게 오보라 씨의 말을 잘랐다. 


“PCR코로나 검사받으시고 결과가 음성으로 나와야 입장 가능하십니다.”


“네? PCR이요? 그럼 결과가 언제 나오는데요?”

“보통 4시간 뒤에 나오면 문자로 통보드리고 있습니다. 문자 받고 다시 방문해 주시면 됩니다.”

“네? 저 지금 마비 증상이 퍼지고 있다니까요. 4시간 뒤요?”

“검사받으시겠습니까?”

“다른 대학병원 응급실도 다 이렇게 하나요?”

“네.”



정말 황당 그 자체였다. 전신이나 심장까지 마비될지도 모르는 가능성이 있는데 4시간 뒤에나 의사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오보라 씨에게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였다. 


오보라 씨는 주차하러 간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코로나 검사받고 결과 나오면 4시간 뒤에 문자 받고 다시 오라는데?”

“뭐? 다른 병원 가자.”

“다른 응급실도 다 코로나 검사 결과 있어야 들어갈 수 있대.”

“휴, 그럼 얼른 코로나 검사부터 받아.”


전화를 끊자 응급실 앞에 서 있던 직원이 다시 오보라 씨를 향해 물었다. 


“코로나 검사받으시겠습니까?”

“네.” 


모든 것을 자포자기한 듯한 오보라 씨의 대답은 짧았다. 코로나 검사를 받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오보라 씨는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들을 모두 떠올려보았다. 그 상상은 병원에서 발송한 문자 하나로 현실로 돌아왔다. 


안녕하십니까, 응급실 원무과입니다. 

오보라님 금일 선별 진료 비용 82,600원 발생하였습니다. 

진료비용을 계좌로 입금 부탁드립니다. 

우리은행

011-004542-09-002 만나 병원

검사 결과는 문자로 발생될 예정입니다. 

반드시 환자명으로 입금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하~”


짧은 한 숨을 내뱉은 오보라 씨는 송금 버튼을 눌렀다. 


‘생명이 오가는 긴급 상황에 이런 문자를 처리하고 있어야 된다니’ 


마음이 다급하고 초조한 건 오보라 씨 일 뿐이지, 병원에서는 당연히 할 일을 한 것이었다. 


집에 돌아와서 그 코로나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 오보라 씨는 그동안 자신이 잘 살아왔는지 돌아보며 사과하거나 정리해야 할 것은 없는지 생각해 보았다.


‘이 증상이 온몸으로 퍼지면 나는 침대에 누워서 지내야 될까?’

‘나름 열심히 살아왔는데 내 커리어도 여기서 끝인가?’

‘마리랑 남편에게 더 다정하게 잘해줄 걸 ……’

‘엄마랑 아빠는 내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실까?’

‘백신 부작용이 내 애기가 되는 건가?’

‘하필 아파도 왜 오른손인지, 왼손으로 글씨 쓰는 연습을 해야 되는 건 아닐까?’


삶과 죽음 사이에서 많은 생각들이 오갔지만, 불행 중 다행인 건 오른쪽 얼굴부터, 오른쪽 발끝까지 마취되는 느낌의 마비가 퍼진 뒤, 왼쪽까지 번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코로나 검사 결과는 4시간을 넘긴 새벽 2시에 문자로 도착했다. 


띠링

오 보라님, 코로나 19 PCR 검사 결과 ‘음성’입니다. 

띠링


그다음 문자가 하나 더 들어왔다. 


현재 만나 병원 응급실이 코로나 확진자 발생으로 폐쇄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뭐? 이게 무슨 말이야?” 


오보라 씨는 문자가 온 번호로 다급하게 전화를 걸었다. 


“만나 병원 응급실입니다.”

“저 아까 코로나 검사받고 지금 결과를 받아서 갈려고 했는데, 폐쇄되었다는 문자가 와서 지금 가면 안 되는 건가요?”

“네, 지금 진료 보실 수 없습니다. 저희 확진자가 나와서 응급실 폐쇄 중입니다. “


목소리만으로도 분주함이 느껴지는 직원을 붙잡고 하소연할 기운도 없던 오보라 씨는 전화를 끊고 남편을 깨웠다. 


“여보, 응급실에 확진자 나와서 폐쇄되었다고 오지 말라는데, 다른 응급실 가야 될까?”


“어? 증상은 좀 어때? 내일 아침까지 기다렸다가 안 나으면 가는 게 어때?”


자다가 일어나서 아무 말 대잔치를 하는 거겠지만 이 상황을 분초를 다툴만한 상황으로 보지 않는 남편이 괜히 미워지는 오보라 씨였다. 의사를 만나면 이 오른쪽 마비에 대해 원인이라도 알 수 있지 않을까 했던 오보라 씨는 왼손으로 휴대폰을 쥔 채 아침을 맞이했다. 밤이 새도록 백신 부작용, 안면 마비 등을 검색해 보았지만 오보라 씨처럼 한쪽 전체에 마비 증상을 겪은 사람의 케이스는 찾을 수가 없었다. 


그 상황에서도 오보라 씨는 자신이 너무 예민하게 구는 것은 아닌지 고민을 했다. 


백신 맞을 때 받은 안내문을 보니 이상반응이 있을 경우 즉시 질병관리청에 신고 전화를 달라고 쓰여있었다. 아침 8시부터 부지런히 전화를 넣었지만 질병관리청 전화는 계속 통화 중이었다. 


“아니, 이상반응을 겪는 사람이 엄청 많은 거 아냐?” 


30번도 넘는 시도 끝에 드디어 상담원이 연결되었다. 


“제가 지난주에 백신 2차 접종하고 나서 어제 오른쪽에 마비 증상을 겪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될까요?”


“네, 고객님. 가까운 병원에 방문해 보심이 어떠실까요?”

“네? 백신 접종할 때 받은 안내문에서 이상반응 있으면 여기로 전화하라던데……”

“아, 네. 저희도 직접적으로 도움드릴 수 있는 것은 없어서 병원 방문을 추천드립니다. “


상황이 딱 파악되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성난 사람들의 전화를 아침부터 받아야 하는 아르바이트생이 마비 증상을 겪고 있는 자신보다 불쌍하게 느껴진 오보라 씨는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이전 06화 2차 백신 접종, 그리고 이직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