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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오,보라! 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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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이시 Oct 01. 2022

혹시, 백신 부작용?

신경과 중환자실


오보라 씨가 응급실을 벗어나 배정받은 병상이었다. 뇌경색이 의심되는 한 젊고 의식이 뚜렷한 환자도 중증환자로 여겨지는 듯했다. 신경과 중환자실은 4인실이었지만 보호자도 출입금지된 구역에 상주 간호사 1명만 오보라 씨와 함께 있었기 때문에 고요하고 쾌적하기까지 했다. 마치 산후조리원에 온 듯한 느낌이었기에, 오보라 씨의 마음속에는 우측 마비 증상이 낫지 않을 것에 대한 두려움보다 회사와 육아에서 며칠 벗어나 있을 수 있을 것이라는 안도감이 우세하기 까지 했다.  


“환자분, 오늘 밤 10시에 MRI 촬영이 있습니다.” 

“밤 10시요?”


뇌경색일지도 모른다면서 반나절이나 지나야 확인할 수 있다는 당황스러움보다 밤 10시까지 근무를 하는 MRI기사에 대한 안타까움이 오보라 씨의 마음에 가득 찼다. 남을 먼저 생각하라고 옆에서 말하는 부모님이 계시지 않아도 그 이름의 깊은 뜻을 남들이 알지 못해도, 오보라 씨는 오보라라고 불리는 동안은 늘 보라하고 있었다. 


정각 5시, 오보라 씨의 첫 끼니였다. 식사를 마친 오보라 씨에게 그제야 어젯밤에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잠이 침투해 오는 것을 느꼈다. 


‘대학병원 중환자실에 있으니 마비 증상 때문에 죽지는 않겠지?’ 


그냥 병원에 있는 것뿐, 아직 본격 검사도 하지 못한 채 오른쪽의 증상은 여전했지만 오보라 씨는 불안한 마음을 누군가에게 맡겨놓은 것처럼 잠이 들었다. 


“환자분, 환자분, 자는 데 깨워서 미안해요. MRI 찍으러 가셔야 돼요.”


밤 10시, 간호사는 무척이나 미안해하며 오보라 씨를 깨웠다. 그래도 중환자로 취급받는 고로, 휠체어를 타고 이동할 수 있었다. 사지 멀쩡한 젊은이가 나이가 있으신 간호사분이 밀어주시는 휠체어를 탄다는 것이 오보라 씨의 보라 다움에 어긋나긴 했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MRI실은 추웠다. 그리고 시끄러웠다. 


MRI실 안에는 원하는 노래를 신청하면 검사받는 동안 틀어준다고 쓰여 있었다. 


‘가요를 신청해도 될까? 한 곡 신청하면 무한 반복으로 틀어주는 건가?’


너무 추웠던 오보라 씨는 포근한 노래를 생각하며 젝키의 ‘커플’을 떠올렸지만 이내 노래를 신청하는 행위가 너무 유난스럽고, MRI 기사를 귀찮게 하는 일 같아서 노래를 신청하지 않기로 했다. 


“혹시 폐쇄 공포증 같은 거 있으실까요?”

“폐쇄 공포증 있긴 한데 ……”


오보라 씨는 어렸을 때 동생과 숨바꼭질하다가 장롱에 갇혀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연이어 첫 남자 친구와 관람차를 탔을 때가 떠올랐다. 영화에서 보던 로맨틱 무드 까지는 아니어도, 설렘을 만끽하고 싶은 순간이었건만 오보라 씨는 이내 숨이 가빠지고 머리가 빙빙 도는 것 같아 빨리 내리고 싶어 먼 산만 응시했었다. 


‘그때 개랑 헤어진 건 그날 이후 어색해 져서 였던 것 같아.’


까지 생각한 오보라 씨는 MRI 기사의 부름에 현실에 돌아왔다.  


“오보라님”

“아 찍긴, 찍어야죠.” 

“검사는 약 40분 정도 진행될 예정입니다. 폐쇄 공포증 있으시면 검사 진행되는 동안 눈을 감고 있으시는 게 좋을 거예요.” 


검사 시간이 40분이라는 말에 오보라 씨는 이내 노래를 신청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지만, 어찌 되었던 빨리 검사를 끝내고 퇴근하고 싶어 하시는 것 같은 기사님을 보며 그냥 입을 닫았다. MRI기사님이 재 빠르게 오보라 씨 머리에 헤드폰을 씌우고 얼굴 커버를 덮자 폐쇄라는 것이 어떤 뜻인지 실감이 났다. 다만 되돌리기는 너무 늦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오보라 씨는 정말 눈을 한 번도 뜨지 않을 수 있길 바랄 뿐이었다. 


‘내가 잘 때 빼고, 40분 동안 눈을 감고 있던 적이 있었던가?’ 


자신이 없었지만, 눈을 뜨면 보게 될 광경에는 더 자신이 없는 오보라 씨였다. 검사가 시작되기 전 클래식 노래가 아름답게 흘러나왔다. 하지만 오보라 씨의 귀가 노래를 담을 수 있었던 건 15초에 불과했다. 16초부터 검사가 시작되자 오보라 씨는 노래를 신청할 필요가 없었다는 결론에 빠르게 도달했다. 


MRI 기계는 아주 다양한 소리를 오보라 씨의 귀에 선사했다. 흡사 기계들의 오케스트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오보라 씨는 이 소음을 듣기 위해 몇십만 원짜리 음악회 티켓을 산 것이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기계가 잠시 작동을 멈출 때 클래식이 2-3초간 간간이 들렸다. 오보라 씨는 MRI 검사를 받는 동안 노래를 틀어주는 것이 어떤 장점이 있는지는 계속 고민했지만 답을 찾지 못했다. 


40분은 꽤 길었다. 


소음 감상을 하다 지겨워진 오보라 씨는 기계 리듬에 맞춰 마음속으로 노래도 불렀다. 다만 소리가 주기적으로 바뀌는 탓에 한 노래를 끝까지 부르지는 못했다. 


“수고하셨습니다. 끝났습니다.”


MRI 통에서 나올 때 기사님은 영혼 없이 인사를 건네셨다. 오보라 씨는 40분 동안 눈을 한 번도 뜨지 않은 것이 자랑스러웠다. 또한, 이것으로 병명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었겠지 라는 마음에 조금은 자신을 칭찬하기도 했다. 하지만, 두 번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라는 것은 분명했다. 


다음 날 아침, 레지던트가 일찍 방문했다. MRI 상 뇌경색 의심이 되지는 않는다는 말과 함께 응급실에서 했던 감각 테스트를 또 진행했다. 이번에 오보라 씨의 대답은 어제와 조금 달랐다. 


“왼쪽에 느껴지는 게 10이면, 오른쪽은 3-4 정도예요. 조금 나아진 것 같기도 하고 아직 양쪽의 차이는 있습니다.” 


레지던트는 일단 백신 부작용으로 보인다는 소견을 보건소에 신고했으니 보건소에서 연락이 올 것이라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그리고 만약을 위해 MRI를 다시 한번 찍자고 했다. 이번엔 20분짜리라고 말하는 그는 선심을 써주는 듯했다. 


두 번째 MRI도 외래 환자가 모두 끝나는 시간인 저녁 8시 진행되었다. 


그 다음날 다시 찾아온 레지던트는 역시 MRI상 이상이 없다며, 손으로 문질러보는 감각 테스트를 감행했다. 오보라 씨는 오보라 씨가 말로 진술하는 증상만 가지고 계속 진료를 해야 하는 레지던트에게 안쓰러움을 느꼈다. 뭔가 사진에 찍히거나 증상이 눈에 보이거나 수치로 나타나면 처방을 내리기도 한결 쉬울 텐데, 레지던트는 전적으로 오보라 씨가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전제로 오보라 씨의 말만 의지하고 있었기에 한편으로 고맙고 미안했다. 


“왼쪽이 10이면, 오른쪽은 5-6 정도로 올라온 것 같아요.” 


뭔가 차도가 있는 것은 분명했다. 굳이 설명하자면 치과에서 마취한 부위가 며칠에 걸쳐 아주 서서히 마취가 풀리는 느낌이랄까? 


레지던트는 경과를 지켜보기 위해 일반 병실로 옮겨 하루 이틀 더 지켜보자고 했다. MRI 결과상 이 증상이 생명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왠지 모를 확신이 생긴 오보라 씨는 이 고요한 병원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이따금씩 마리와 회사일이 생각나긴 했지만, 폰을 무음 모드로 만드는 것은 이너 피이스에 도움이 되었다. 


일반 병실로 옮긴 그날, 보건소에서 전화가 왔다. 이메일 주소로 보상 관련 안내를 보내준다고 했다. 오보라 씨가 받은 이메일은 이러했다. 


안녕하세요, 보건소입니다. 코로나 19 백신 이상반응 보상 관련해 안내드립니다. 


제목만 보았을 때는 입원비 전액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뜻 같았다. 


안녕하세요 보건소입니다. 코로나 19 백신 이상반응 보상 관련 안내해 드립니다.

30만 원 기준으로 서류가 다르니 확인하시고 서류 준비하시면 됩니다.


1. 진료비 간병비 신청서 - 신청 시 작성하여주시기 바랍니다. 서식 첨부하였습니다.

2. 의료기관에서 발행한 진료확인서(이상반응 증상 및 발생일을 반드시 명시해야 함)-병원을 여러 군데 갔을 경우 각 병원마다 필요합니다.

3. 신청인과 본인 관계를 증명하는 서류(신분증 사본)

4. 진료비 영수증 원본

5. 진료비 세부산정 내역서(입원, 외래, 약제)

6. 소액 피해보상에 대한 동의서(의료기관에서 진료하셨을 때 30만 원 이하일 경우에만 작성해주시기 바랍니다.) 서식 첨부하였습니다.

7. 의무기록 사본(초진 기록(문진, 신체검진 포함)), 입원경과, 시행한 검사 결과를 반드시 포함 - 30만 원 이상일 경우에만 필요합니다.- 병원을 여러 군데 갔을 경우 각 병원마다 의무기록 사본 필요합니다. 영수증 날짜별 의무기록사 본과 진료비 세부산정 내역서를 반드시 제출하여야 함

8. 3개월 이내의 의무기록 사본( 접종일 기준으로 3개월 이전까지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은 경우) 30만 원 이상일 경우에만 필요합니다 

9. 코로나19 예방접종 피해보상 업무위탁 관련 동의서-서식에 첨부하였습니다.


서류는 준비되시면 보건소 3층 건강관리과 코로나19 이상반응 피해보상 담당자에게 하기 주소로 등기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보내달라는 서류의 양이 방대했지만, 이미 백만 원이 훌쩍 넘은 입원비를 받을 수 있다면야 해볼 만했다. 다만 준비해야 되는 서류가 너무 복잡해서 어르신들은 신청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에 오보라 씨는 조금 슬펐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역시 우리나라는 좋은 나라라는 생각도 들었다.  


‘백신 부작용이 있긴 있다고 생각 하긴 하는구나.’ 


그다음 날도 레지던트가 왔다. 


“오늘은 왼쪽이 10이면, 오른쪽은 7 정도입니다.”

“흠, 그럼 일단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괜찮아지고 있다는 뜻이긴 하네요. 일단 뇌경색은 아닌 것으로 보이니 퇴원하시고 이상이 있으시면 다시 오시는 것으로 하시죠. 증상이 남아 있는 만큼 혹시나 하여 아스피린을 처방하겠습니다. 아스피린을 드시면 상처가 나면 피가 잘 안 멎을 수 있으니 일상생활에서 조심하십시오.”


오보라 씨는 Farewell 멘트에 수긍했다. 


오른쪽 마비 증상이 조금씩 풀리고 있다는 것도.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야 된다는 것도. 


첫 증상이 나타난 날은 죽음을 준비하는 비장한 마음이었는데, 조금 나아지니까 준비하던 이직이 생각났다. 며칠 전까진 죽을 준비를 하다가 이직 준비를 하려는 오보라 씨는 자신의 마음이 이토록 간사하다는 것에 놀라기는 했지만, 입원이라는 핑계로 2차 인터뷰를 준비를 할 시간을 번 것 같아서 낯선 고통들을 겪었음에도 감사하기로 했다. 


목요일, 오보라 씨의 퇴원이 거행되었다. 


금요일까지 병가를 낸 오보라 씨는 금요일에 스타트업 2차 과제를 집중하여 마칠 수 있었다. 아직 타이핑을 칠 때마다 오른팔이 저려 오긴 했지만, 죽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 한 이상 뭉그적 거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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