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오,보라! 12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테이시 Oct 01. 2022

응급실 단골, 양치기 소녀

오보라 씨는 분명 작년에 자신의 한계를 갱신해서 업그레이드했다고 생각했었는데, 어느새 오보라 씨는 무언가 또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6개월이 다 돼가는데도, 전 직장에서 처럼 안정적인 퍼포먼스라는 피드백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고, 꽤 잘 따라오는 딸내미를 학군지에 넣어주지 못한 것에 못내 자신이 더 능력 있지 못한 것의 결과인 것만 같았다. 이런 고민을 전 직장 동료들을 만나서 얘기하면,


“그래도 보라님은 여기서 탈출하셨잖아요. 이번에 저희 연봉협상도 없이 3% 올리고 끝이었다고요.”


라고 하고, 또래 아이를 키우는 친구들에게 말하면


“야, 배부른 소리 하지 마. 우리 아들은 자꾸 친구랑 싸운다고 학교에서 전화 와서 속이 뒤집어져. 내가 미쳐. 미쳐.”


라고 했다. 누구도 오보라 씨가 느끼는 불안감에 대해서 공감해주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남편마저도


“그래도 가족 중에 아픈 사람 없으니까 된 거지. 좀 작은 것에 만족하며 살 수는 없어?”


라는 교과서 같은 말만 읊을 뿐이었다.


해가 바뀌고 또다시 여름이 찾아올 무렵까지, 오보라 씨는 뫼비우스의 띠 속에 갇혀 있는 시간을 보냈다. 나아짐을 향 해 아무리 한 발을 내딛어도 종국엔 같은 자리에 와 있는 것 같았다.


일상이 따분하게 느껴졌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아서 오보라 씨는 이렇게도 살아지는구나 하고 있었다.

‘이제 이사를 위해 부동산 임장이나 다녀볼까?’


늘 새로운 삶을 갈망하는 오보라 씨에게 이직이 불어넣은 새로움의 약발이 떨어져 가고 있다는 것은 느낀 오보라 씨는 다른 새로운 소재를 삶에 심어보며 다시 분주한 마음을 마음을 만들려고 애쓰고 있었다. 마음이라도 분주해야 잘 사는 것 같았기 때문에 평온해 보이는 시간은 오보라 씨를 다운되게 했다.


오보라 씨는 기분이 울적할 때마다 빨래를 해서 널어놓는 짓을 즐겼다. 돌아가는 세탁기를 보고 있노라면, 더러워진 오보라 씨의 기분도 빨래가 되는 것 같았다. 물론 자잘한 옷들은 건조기가 오보라 씨를 도왔지만, 원피스나 셔츠 등은 옷걸이에 걸어 말렸을 때 딱 각이 잡혀 말려지는 느낌이 좋았다. 오보라 씨의 강박은 사실 이 것뿐만은 아니었다.


오보라 씨는 숫자 끝자리를 맞추는 것을 중요시 여겼다. 만약 티브이를 보다가 빨래를 해야지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시계를 보았을 때 12시 57분이라면 꼭 정각이 될 때까지는 하던 일을 마저 하고는 했다. 보던 프로그램 뒷 이야기가 너무 궁금하더라도 다음 할 일이 있으면 정각에는 새로운 스케줄을 시작했다. 그래야 잠자리에 들기 전 하루를 돌아볼 때 몇 시까지 무엇을 했다는 것이 클리어하게 머릿속에 정리가 된다나?


그래서 그날은 오보라 씨가 몰아 놓았던 빨래를 여러 번 돌리던 날이었고, 그중에 남편의 셔츠를 빨래 건조대에 걸으려고 오른손을 위쪽을 향해 뻗을 때였다.


“어?”


잊고 있던 낯익은 증상, 작년에 그녀를 입원시켰던 그놈이 찾아왔다. 오른쪽 턱부터 시작된 마취 주사의 효과가 오른쪽 얼굴 위아래로 퍼져가는 것 같았다.


“에이, 설마.”


오보라 씨는 애써 무시하고 계속 빨래를 널고 있었으나 빨래를 잡은 오른손으로 증상은 퍼져가고 있었다. 오보라 씨가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도 전에 증상은 발로 번졌다. 오보라 씨는 그 상황에서 애써 담담해지려고 노력하며 자신의 예민함을 탓했다.


“자, 오보라. 진정해. 요즘 네가 피곤했을 수도 있어. 작년 여름에도 시간이 지나니까 괜찮아졌잖아. 진정해, 오보라.”


오보라 씨의 혼잣말이 무색하게 마비 증상은 오른쪽 얼굴, 손, 다리를 넘어 오른쪽 심장 근육으로 향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오보라 씨는 1년 전 그때가 생각났다.


‘아 이 마비가 심장을 향하면 어떡하지?’


바로 그 상황이었다. 심장 오른쪽에 붙은 근육이 마비되기 시작하는 느낌이 오보라 씨를 덮쳤다. 오보라 씨는 남편을 다급하게 불렀다.


“여보, 응급실. 응급실. 숨을 못 쉬겠어. 심장이 조여들고 있는 것 같아”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오보라 씨 또한 왜 이런 일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작년 여름에 겪은 증상과 관련 있다는 것이었다.


응급실은 올 때마다 결코 유쾌할 수 없는 곳이었다. 그래도 정부가 몇 달 전 코로나 유행이 수 그러 들고 있다고 판단하여 PCR 검사를 하지 않아도 병원에 입장할 수 있다는 발표를 한 덕분에, 이번엔 바로 응급실에 입장을 할 수 있었다.


“어떻게 오셨을까요?”


“제가 작년에 … 백신 2차 접종 맞고 … 오른쪽 마비 증상이 왔었는데, 지금… 또 마비가 오고 숨 쉬기가 어려워서… “


오보라 씨는 그 순간에도 최선을 다해 상황을 설명했다.


“숨 쉬기가 어떻게 어려우세요?”

“오른쪽 심장 근육이 굳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듣고 있던 의사와 간호사는 알쏭달쏭 한 표정을 지으며 일단 기본 검사들을 하겠다고 했다. 기본 검사를 마치자마자 의사는 결과를 확인했다며 이상이 발견되지 않는 다고 했다. 심장이 약 30% 정도 굳은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더 심해지지 않고 숨이 멈추지 않는 것을 봐서는 자신을 죽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병은 아닌 것 같아 오보라 씨는 놀란 마음을 감사한 마음으로 덮었다.


“근육이완제 맞고 퇴원하실게요.”


간호사가 링거를 준비하는 사이 오보라 씨는 근육이완제가 뭔지 검색해보았다.



근육이완제는 근육을 이완시키는 작용을 하는 약물이다. 약리작용과 사용 목적, 효능에 따라 말초성 근이완제와 중추성 근이완제, 근 소포체 억제제로 분류된다. 말초성 근이완제는 환자의 수술, 마취 또는 진정 시에, 중추성 근이완제와 근 소포체 억제제는 통증을 동방한 근육의 경련 또는 긴장 시에 근육이완을 목적으로 사용된다.


‘요약하자면, 내가 긴장했기 때문에 진정해야 된다는 뜻인가? 빨래를 널고 있었을 뿐인데 아까 내가 긴장했나?’


의사는 많은 것을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오보라 씨는 의사의 한 마디를 해석해보려고 노력해야만 했다. 오보라 씨는 응급실 해프닝이 있을 때마다 양치기 소년이 된 것 같았다. 오보라 씨 본인은 죽을 것 같았지만, 밖에서 지켜보는 누구도 오보라 씨가 죽음을 가까이 느끼고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의사가 근육이완제를 준 것도 그냥 플라세보 효과를 위한 것 같이 느껴졌다. 남편은 오보라 씨를 걱정하면서도, 정말 응급실에 올 정도였는지 추궁하는 눈빛을 보냈다.


“정말 아까 호흡곤란이 왔었어. 지금은 좀 나아진 것 같아.”


그날 밤, 오보라 씨는 잠을 설쳤다, 아니 망쳤다. 작년의 경험 상 오른쪽 마비 증상이 최소 며칠은 지속될 것이라는 불안과 혹시나 아까와 같은 심장 근육이 굳는 것 같은 느낌의 호흡곤란이 덮쳐오지 않을까 두려움이 오보라 씨를 뜬 눈으로 지새우게 했다.


그다음 날, 오보라 씨는 평소처럼 출근을 했고 타이핑을 칠 때마다 저려오는 오른 팔이 자신에게 과연 아직 달려 있는 것인지 의심을 했다. 과연 이 증상이 지난여름처럼 일주일 정도 후에 사라질 거라고 확신하고 싶었지만 오보라 씨에게 이 증상은 안대를 쓴 채 칼을 휘둘러야 되는 싸움 같았다. 원인도 모르고, 치료법도 모르고, 응급실에서는 백신 연관성은 모르겠다고만 하니 오보라 씨가 다시 의대라도 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공부를 더 잘해서 의대를 갔었어야 했나.’

‘백신을 맞지 말았어야 했나.’

‘다른 종류의 백신을 맞았어야 했나.’

‘차라리 코로나가 빨리 걸렸어야 했나.’

‘백신 맞을 때 컨디션이 안 좋아서 그랬나.’

‘호진 대리가 백신 맞으라고 할 때 나중에 한다고 했어야 했나.’

‘평소에 거절하는 법을 더 연습할 걸 그랬나.’

‘내 이름이 보라가 아니 였어야 했나.’


그날 밤, 오보라 씨는 꼬리에 꼬리를 묻는 생각을 접고 싶어서라도 일찍 자리에 누웠다. 하지만 역시나 잠이 오지 않았다. 오른쪽 몸이 저리니 왼손으로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시답잖은 연예기사를 보다가 연예인 커플의 이별 소식을 보고 자기 애기처럼 마음이 아파지는 것 같은 오보라 씨였다. 헤어지면 헤어지는 거지, 다들 무슨 연예계 선후배로 돌아간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이별 자체는 고통스러운 일이지라며 안쓰러워하는 오보라 씨였다.


그때였다. 오른쪽 턱에서 마비 증상이 기지개를 켰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증상은 서서히 퍼지는 것이 아니라 몇 초만에 심장 근육까지 이르렀다.

또 호흡곤란이었다.


“여보, 여보 일어나 봐. 응급실……”

남편은 잠에 취한 상태로 보라 씨에게 아침에 가자고 말할 참인 것 같았다.


다만, 오보라 씨가 느끼고 있는 건 어제와는 비교할 수 없는 심한 호흡 곤란이었다. 오보라 씨는 정말 심장이 몇 초안에 멈출 것 같이 느꼈다.


“여보, 119 불러. 어서어서!”


남편은 그제야 비몽사몽에서 돌아와 119에 전화를 걸었다. 구급차는 남편이 주소를 불러준 지 정확히 5분 만에 집 앞에 도착했다. 응급실행은 경력자였지만, 119를 부른 것은 난생처음이었다. 119는 어딘가 심하게 다친 피를 흘리고 있는 사람만 타는 차라고 생각했던 보라 씨였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누구에게 무엇도 양보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구급차 간이침대에 누워 조여 오는 심장을 부여잡고 오보라 씨는 기도를 했다.


‘하나님, 오늘이 제 삶에 마지막이라면 제가 떠나고 나서도 저희 부모님과, 제 딸, 우리 남편 잘 부탁드려요.’


그만큼 죽음이 실감 났다. 남편은 겉으로는 어디가 아픈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오보라 씨가 느낄 통증에 걱정하는 마음보다 자신의 인생에 119를 탄 경험이 생긴다는 것에 더 놀라워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심장근육은 어제보다 더 센 강도로 빠르게 마비되고 있는 것 같았다. 응급실 앞에 도착하자 환자등록을 위해 정보를 쓰라고 했다. 어제는 침착하게 했지만 오늘은 그럴 수 없었다.


“아저씨, 제 심장이 지금 마비되고 있다니까요. 빨리 들어가야 돼요. 그런 건 융통성 있게 하면 되지 않아요? 무의식인 환자가 와도 이렇게 할 거예요?”


평소 오보라 씨 같으면, 진상짓을 할 담력이 1도 없었겠지만 숨이 멈추기 바로 직전 같은 순간에는 눈앞에 뵈는 게 있을 리 만무했다. 오보라 씨는 외상이 없는 응급환자라는 점이 억울하기까지 했다.  


응급실에 들어간 뒤, 당직 의사는 어제의 기록을 훑어보더니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기본 검사를 진행하자고 했다.


‘아, 환장하겠네. 호흡곤란이 온다는데. 의사들이 바로 처치할 수 있는 것이 없단 말이야?’


오보라 씨가 이 증상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만큼, 당직 의사도 마찬가지였다. 검사를 진행하는 동안 호흡곤란 증상이 풀려가는 것이 느껴졌다.


‘아, 119까지 타고 왔는데 나 또 양치기 소년이 되는 건가?’


의사는 오늘도 이상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이 의사는 자신의 소견을 덧 붙였다.


“오 보라님, 지금 이상이 없으신 것으로 확인되는데요, 호흡은 좀 어떠세요?”


“처음 올 때 보다 나아졌습니다. 이런 증상이 반복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의사는 주저주저하면서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이럴 경우, 두 가지를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첫 번째 신경과를 예약하셔서 신경 정밀 검사를 받으시거나 두 번째로는 공황장애로 의심됩니다. 신경 이상으로 호흡곤란까지 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어서 말입니다. 혹시 요즘 스트레스 많이 받으신 것 없으십니까?”


오보라 씨는 아연실색했다.

‘스트레스? 공황장애? 인생에 스트레스 없는 사람이 어디 있나? 그 사람들 다 공황장애란 말인가?’


“저희 병원 신경과 예약해 드릴까요?”

“…… 네. “


정신과는 알아서 찾아가라는 말로 해석되었다.

2주 후로 신경과 예약을 잡아 준 의사는 오보라 씨의 귀가를 허가했다.



이전 11화 다시 '보라'님으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