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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오,보라! 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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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이시 Oct 01. 2022

혹시, 공황장애

2주 동안 오보라 씨는 신경과 예약에 갈 것인지 말 것인지 수도 없이 고민했다. 작년 첫 증상이 발생했을 때 입원했던 과가 신경과였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 최고의 병원이라고 하는 곳에서 이미 작년에 원인을 발견할 수 없다며 오보라 씨를 퇴원시킨 전력이 있었기 때문에 오보라 씨가 신경과에 대한 살짝의 불신을 가진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오보라 씨가 고민할 것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정신과를 예약할 것 인지 말 것인지 말이다. 지난번 의사의 권고 후, 공황장애에 대해서 검색해보았다.
 
 뚜렷한 근거나 이유 없이 갑자기 심한 불안과 공포를 느끼는 공황 발작이 되풀이해서 일어나는 병. 공황 발작이 일어나면 심장이 빨리 뛰고 호흡이 가빠지는 등의 증상을 보이며 곧 죽을 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일단, 숨쉬기가 어려워지고 죽음이 코 앞에 와있다고 느끼는 점에서 오보라 씨의 증상은 공황장애와 일치했다.


‘만약 내가 공황장애라면, 도대체 어떤 상황에서 발작이 일어나는 걸까?’


오보라 씨는 호흡곤란이 왔던 상황들의 공통점과 개연성을 찾아보려 몹시 핸드폰을 두드렸지만 그럴수록 오른 팔만 더 저려 올뿐이었다.


오보라 씨가 공황장애 증상이라는 단어를 검색하자 자신이 혹시 공황장애인지 묻는 수많은 질문이 쏟아져 나왔다.


‘다 나 같은 사람들일까? 공황장애라고 누가 진단을 내려줄 수는 있는 걸까?’


하나하나 글들을 읽어보았지만 다들 제각기 다른 상황에서 발작을 겪은 것으로 보여서 오히려 더 혼란스러워지는 것 같았다. 오보라 씨는 인터넷 지식백과에서 다시 공황장애 증상이라는 단어를 검색해 보았다.



첫 번째 공황발작은 흥분, 신체적인 활동, 감정적 상처 등에 뒤따라서 생길 수 있으나 이유 없이 자발적으로 생기는 경우가 흔하다. 증상이 발생하면 보통 10분 안에 증상의 정도가 최고조에 이른다.
 
공황발작이 나타나기 전에 반복해서 있었던 사건이 있다면(예: 커피, 술, 담배를 복용했거나 수면변화, 식사 변화, 과도한 조명 등이 있은 후에 발작), 이런 조건에 대해 자세히 조사해 봐야 한다.
 
주요한 정신 증상은 극도의 공포와 죽음에 이를 것 같은 절박한 느낌이다. 보통 환자들은 이런 공포의 원인을 알지 못하고 혼돈스러워하고 집중력이 떨어진다. 빈맥(빠른 맥박), 호흡곤란, 발한과 같은 신체 증상(자율신경계 증상)이 나타나는데 대개 발작은 20~30분 지속되고 1시간을 넘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예기 불안이 또 다른 주요 증상인데 한 번 발작을 경험하게 되면 다음 발작이 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불안해하는 것을 말한다.
 
심장과 호흡 문제와 관련된 신체증상이 공황발작 시 환자가 가장 걱정하는 문제이며, 자신이 곧 죽을 것이라는 생각에 응급실을 방문하는 경우가 많다. 다섯에 한 명 정도는 공황발작 시 실신에 이르기도 한다.
 
공황발작이나 그에 따른 결과에 대한 걱정은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예: 심장질환, 발작 장애)의 존재에 대한 걱정일 수 있고 공황 증상을 보였을 때 다른 사람에게 부정적으로 평가받거나 당황하는 것에 대한 걱정일 수 있고 공황 증상을 보였을 때 다른 사람들에게 부정적으로 평가받거나 당황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인 걱정일 수도 있고, “미치거나” 통제를 잃을 것 같다는 정신적 기능에 대한 걱정일 수도 있다. 부정적인 행동변화는 공황발작이나 그 결과를 회피하거나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다. 그 예로는 신체적 운동을 피하거나, 공황발작이 일어났을 때 도움이 가능하도록 일상생활을 재구성하거나, 평소 일상 활동을 제한하거나, 집을 떠나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쇼핑을 가는 것처럼 광장 공포가 일어날 것 같은 상황을 피하는 것일 수 있다. 광장 공포증이 있다면 광장 공포증 진단을 별개로 내려야 한다.





심장과 호흡 문제와 관련된 신체증상이 공황발작 시 환자가 가장 걱정하는 문제이며, 자신이 곧 죽을 것이라는 생각에 응급실을 방문하는 경우가 많다.


이 부분에서 오보라 씨는 자신이 이렇게 된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공황장애가 확실하다고 속단하기에 이르렀다.  


“여보세요? 예약을 하려고 하는데요?”

“처음 오시는 걸까요?”

“네.”

“방문 목적을 여쭤봐도 될까요?”

“아, 아마 제가 공황장애인 것 같습니다. “

“예, 고객님. 현재 초진이실 경우 2달 뒤에 예약이 가능하세요. 8월 중 날짜 언제가 좋으실까요?”

“네? 두 달이요?”


이 또한 신세계였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정신과를 찾고 있다는 말인가?’


“그럼 8월 중 토요일 오전 가능한 날짜로 예약해주세요.”


전화를 마치고 오보라 씨는 문뜩 두려워졌다.


‘2달 안에 호흡곤란이 다시 오면 어떡하지?’


응급실에 가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없으니, 오보라 씨는 공황발작에 도움을 준다는 항우울제를 한시라도 빨리 처방받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때쯤이었다. 오보라 씨가 이 증상이 신경계 문제가 아니라 정신적 문제라고 차라리 믿어버리고 싶다는 마음을 가진 것을. 그럼 적어도 병명은 빨리 클리어할 테니 말이다.


정신과 예약이 도래하기 전 두 달 동안, 오보라 씨는 일상을 이러했다. 오보라 씨의 적응이 끝나간다고 판단한 팀장님은 오보라 씨에게 새로 시작하는 프로젝트를 맡겼고, 오보라 씨는 더 잘해야 된다는 압박을 혼자 수집광처럼 수집했다. 마리와는 매일 저녁 학원 숙제 때문에 실랑이를 해야 했고, 남편은 몇 년 만에 해외출장을 가게 되었다며 들떠 보였다.


어떻게 보면, 특별할 것 없는 워킹맘의 하루의 모음이었다.


오보라 씨의 오른쪽 마비 증상이 빨래를 널던 날부터 하루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 지속되고 있다는 것만 빼고 말이다. 호흡곤란까지 번지지는 않았지만, 오른쪽 턱부터 오른쪽 발 끝까지 저려오는 증상은 늘 오보라 씨와 함께 였다. 오보라 씨는 공황장애라고 차라리 믿어버리고 싶으면서도 공황장애라면 특정 상황에서만 발생할 텐데 라는 생각에 그 사이 여러 종류의 병원에도 방문했다.

팔이 저려왔기 때문에 목 디스크인가 하여 한방 병원도 가보고, 전반적 컨디션 체크를 위해 내과, 혹시 수액을 맞으면 도움이 될까 싶어 가정의학과, 연관성은 크게 없어 보였지만 유방, 갑상선 초음파까지 받았다. 각기 다른 병원을 돌아가니며 종합 건강 검진을 받은 셈이었다. 오보라 씨가 방문한 모든 병원에서 오보라 씨는 오보라 씨 나이 중에서도 매우 건강한 편이라고 했기 때문에 오보라 씨의 결론은 결국 공황장애를 향햐는 듯했다.   


이제 정신과 방문까지는 딱 한 달이 남아 있었다.


‘공황장애라고 확정되면, 나 회사는 계속 다닐 수 있는 걸까?’

‘공황장애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건 어떤 걸까?’

‘완치라는 개념이 있는 걸까?’

‘정신과에서는 어떤 약을 주는 걸까?’


오보라 씨는 공황장애라고 문제를 좁히고 싶으면서도 아직 공황장애라고 선언하고 싶지는 않다는 심리 속에 방황했다. 종종 연예 기사에서 공황장애로 잠시 활동을 중단하다는 기사를 본 적은 이었지만 실제 오보라 씨 주변에서는 공황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을 본 적은 없었다. 사실 누군가 공황장애를 가지고 있어도 굳이 오보라 씨에게 말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긴 한 것 같았다. 그 뒤로는 서점에 가도 그전까지는 보이지도 않던 공황 장애에 대한 책이 눈에 뜨였고, 유튜브에서는 어떻게 알고 공황장애에 대한 알고리즘이 이미 입력된 듯 동영상이 따라왔다.


그렇게 상황은 반전의 여지를 줄여가는 것 같았다.


오보라 씨는 자신이 공황장애라는 것을 자기 선에서 확정한 이후로는 원래부터도 아주 즐기지는 않았지만 사람이 많은 곳에 가는 것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야 되는 자리를 의도적으로 피하게 되었으며 익숙한 사람들과의 만남에서도 주늑들어 대화에서 한 발 물러 있게 되었다.


‘갑자기 공황발작이 일어나면 어떡하지?’

‘사람들이 날 안 좋게 보지는 않을까?’

‘우리 애나 남편을 두고 온갖 추측을 하지는 않을까?’


공황장애에 관한 책들이 히트작이 되고 공황장애라는 단어가 미디어 그러니 빈번히 오르내리지만 아직까지도 공황장애라는 아니 공황장애 일지도 모른다는 말을 누군가에게 하기는 실로 어려운 일이었다.


며칠 뒤, 오보라 씨는 문자를 하나 받았다.


“보라야, 너 강남역 근처에서 일한다고 했지? 나 다음 주 수요일에 그쪽 갈 일 있는데, 점심시간 어때?”


대학 동기 미선 씨의 연락이었다. 공황장애 언저리에 서 있다고 느끼고 있는 오보라 씨는 자신의 잘 살고 있지 못한 모습을 친구에게 보이게 될 것 같아 고민이 되었지만, 오랜만에 연락한 친구의 마음을 실망시키는 건 보라 씨 답지 않은 것 같아 만나기로 약속했다.


수요일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오보라 씨는 다른 날 보다 조금 일찍 사무실을 나섰다. 삼성타운 지하에서 미선 씨를 만나기로 한 오보라 씨는 종종걸음으로 강남대로를 걸었다. 실로 더운 날씨였지만, 장마가 막 끝난 직후였으므로 햇빛을 볼 수 있는 것으로 오보라 씨는 감사했다. 삼성타운의 회전문을 돌리자,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오보라 씨 반겨주었다. 엘스 컬 레이터 첫 칸에 발을 내디뎠을 때, 저기 아래서 위를 올려다보고 있는 미선 씨가 보였다.


“보라아!”


오보라 씨가 엘스컬레이터 마지막 계단을 탈출하자 미선 씨는 오보라 씨를 껴안고 보고 싶었다며 격한 인사를 해주었다.


“여기까진 어쩐 일이야?”

“뭐 살게 있어서 오려고 했는데 최근에 너 프사 바꾼 게 떠서 보고 싶더라고. 동기 단톡방에서 너 강남에 있는 스타트업으로 이직했다는 소식은 봐서 알고 있었거든"

“그랬구나. 잘 왔어”


프사를 바꾼 것에 관심을 가져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에 오보라 씨의 마음을 갑자기 스펀지에서 물을 짜낸 것처럼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둘은 멕시칸 샐러드 집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잘 지냈어? 애가 이제 몇 살이었지?”

“그냥 그럭저럭 지냈지 뭐. 우리 아기 이제 3살 어린이 집 다니기 시작했어. 그래서 나도 잠깐이라도 숨을 쉴 수 있게 됐어. 그 전에는 지금보다 더 힘들었지. “

“애기 어릴 때 정말 힘들지, 나는 그나마 엄마가 도와줬는데도 다시 할 엄두가 안 나더라.”

“엄마가 근처 사셔?”

“응,”

“그래서 네가 일 계속할 수 있었구나. 부럽다. 나는 육아휴직 끝나고 그만뒀어. 양가 어머님들도 지방에 계시고, 이제 돌 지난 애기를 어린이집에는 못 보내겠더라고."


오보라 씨는 미선 씨가 은행에 합격했을 때 기뻐했던 것이 떠올랐다. 미선 씨는 동기들 중에서 빨리 합격소식을 전한 한 사람으로 모두의 부러움을 샀던 친구였다.


“에고, 그만두기 많이 아쉬웠을 텐데.”

“그러게 답이 없더라고, 오빠가 그만둘 건 아니니까.”

“아, 재민 오빠는 잘 계시지? 오빠가 육아는 잘 도와주시는 편이셔?”


미선 씨는 캠퍼스 커플로 일찌감치 1학년부터 복학생 오빠랑 사귀고 결혼했다.


“오빠 말도 마. 회시 다녀보더니 비전이 없다면서 갑자기 로스쿨을 준비하겠다는 거야. 무슨 바람이 든 건지. 그래서 회사 끝나면 바로 독서실로 가서 인강 듣고 스터디하고 그러느라 집에 자정이 돼야 와. 육아에 1도 도움이 안 돼.”

“아이고 힘들겠네.”


오보라 씨는 자신도 백신 부작용인지 공황장애인지 모를 증상에 시달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솔직히 해야 될까 고민했다. 그때 미선 씨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나 요즘 정신과 다녀. 우울증이 심해지니까 공황장애가 오더라고. 하루에도 몇 번씩 울컥하다가 숨이 안 쉬어지는 거야. 내가 이러려고 그렇게 열심히 대학 가고 취업했었나 싶고.”


미선 씨의 눈은 금방이라도 눈물이 흐를 것 같았다.


“아 미선아, 정신과 가면 좀 도움이 돼? 사실 나도 공황장애인가 싶어서 병원 예약을 해놓긴 했는데 고민이 되더라고.”

“아 정말? 나는 상담받고 약 먹고 하면 도움이 되긴 하는데 근본적이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니까 그래도 도움이 안 되지는 않아. 근데 보라 너는 무슨 일 있었던 거야?

“아 나도 원인을 잘 모르겠어. 이직해서 퍼포먼스의 압박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아주 나쁜 것 없는데 그냥 모든 게 나쁘지 않다 정도로 머무르고 있는 것 같아서 고민인 것 같기도 하고. 나는 애가 초등학생이라 육아 우울증은 아닌 것 같은데, 여하튼 종종 숨이 안 쉬어지고 그럴 땐 죽을 것 같아서 몇 번 응급실도 갔거든.”


보라 씨는 먼저 자신이 공황장애라고 애기 해준 미선 씨의 고백을 힘입어, 남편이 아닌 누군가에게 처음으로 자신이 공황장애인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어머, 그거 공황장애 증상이야. 병원 아직 안 갔다고? 빨리 가서 약 처방받아. 발작이 올 때 먹는 약 있거든. 나도 처음에는 응급실도 가고 그랬는데, 너도 힘들었구나. 그냥 프사만 볼 때는 보라는 잘 지내는구나 싶었는데."

“아, 프사는 다 좋은 것만 올리니까 그랬겠다. 병원은 전화했더니 2달 뒤에나 예약이 된다고 하더라고. 아직 못 갔어.”

“초진이 원래 대기가 길어. 그럼 너 그 사이에 혹시 발작이 와도 비상약이 없겠구나. 나 늘 가지고 다니는데 하나 줄게. 잠깐만.”


미선 씨는 가방을 뒤적뒤적거리더니 금 봉투 하나를 꺼내서 탁자에 올려놓았다.

미선 씨가 내려놓은 금색 약 봉투는 마치 오보라 씨의 구세주인 것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래도 이거 먹으면 좀 진정이 돼. “


오보라 씨는 처방 없어도 먹어도 되냐고 묻고 싶었지만, 언제 다시 발작이 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고맙다는 말과 함께 그 약을 핸드백에 넣었다.


미선 씨와 오보라 씨는 점심시간이 짧은 것을 아쉬워하며 헤어졌다. 다음에는 퇴근 시간 후에 길게 보자고 했지만 아마 그럴 일은 미선 씨의 남편이 로스쿨을 붙고 변호사가 되고 나서야 가능할 것이라고 오보라 씨는 생각했다.


모두의 부러움을 받던 미선 씨가 힘들어하는 것을 보니 마음이 아려왔지만, 본인의 아픔에 대해서는 여전히 자신이 너무 예민하게 생각하고 있는 건은 아닌지 다시 한번 자신을 돌아보는 보라 씨는 역시 보라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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