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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우리 집은 어디에] 행복주택으로 이사하는 날

행복주택으로 이사하는 날

by 스테이시

(나는 국민임대 49형에서 장기전세 59형으로 다시 국민임대 59형으로 이사를 해왔고, 최근의 이사는 국민임대 59형에서 행복주택으로 이사를 한 것이다. 한번 당첨되는 것도 놀라운 일인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지요 라는 질문은 곧 펼쳐질 글 들에서 점차 확인이 가능하실 것이다. 이 글은 국민임대 59형에서 행복주택으로 이사 와서 처음 쓴 글이다.)


이사하기 전날 밤, 남편은 잠을 못 자고 새벽에 어슬렁어슬렁.. 그 친구에겐 이사가 익숙하지 않은 일이라는 것..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걱정? 및 생각하겠지만 나는 그 집에서 마지막 날이라는 것이 더 큰 의미로 다가온다. 소중한 기억의 조각으로 내 안에 남게 될 집에는 아마 다시는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어렸을 때는 내 집인데, 왜 다시 못 들어오냐고 엄마에게 진심으로 물었던 적이 있었다. 그만큼 나는 가슴에서 무언가를 떠나보내는데 오래 걸리는 사람이었다. 마지막은 충분히 아쉬워해야 한다. 눈가가 촉촉해지는 일은 일상에서 흔히 일어나지 않는 특별한 기억 조각이기에 환영하고자 한다. 용감하고 씩씩하게 신대륙을 개척하는 것 같은 마음으로 이사를 가노라 선포했지만, 아이들을 찾으러 어린이집, 유치원에 가는 마지막 발걸음에서는 그냥 고마웠습니다 선생님 하고는 돌아 설 수 없는 진함을.. 어찌 다 쏟아내지도 못하고 선생님의 손을 꼭 잡아드리고 돌아섰다.


기존에 다니던 국공립 어린이집과 공립 단설 유치원에 들어가기 위해 얼마나 애쓰고 준비하고 노력했는지는 또 다른 책으로 써도 될 만큼이니, 내 마음이 젖어드는 것은 당연했다. 이사를 최종 망설이고 결정하게 하는 것은 아이가 생기고 나서는 교육기관이다. 감사히도 이사 온 곳에서도 두 아이 모두 국공립에 가게 되었으니, 정말 감사할 따름이다. 전 교육기관만큼 좋은 곳은 없을 거야 라고 주저했다면 경험하지 못했을 길이 열렸다. 홍해 바다를 갈라지게 하고 바다의 맨땅을 밟고 건넌 이스라엘의 믿음처럼 늘 믿음으로 말미암은 한 발의 시작은 큰 파장과 전혀 생각지 못한 일을 선사한다.


11월 1일 이사 날 아이들을 새로운 교육기관에 데려다주는 것으로 이사가 시작되었다. 출근시간에 올림픽대로에서 막히는 한 시간을 쓰고 싶지 않아서 남편에게 이사의 지휘를 맡기고 나는 두 아이의 손을 꼭 잡고 9호선 전철을 기다렸다. 김포공항에서 역무원 아저씨가 다가오셨다. "아이들 데리고 급행 타시게요?" 출근시간 급행에 대해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김포공항은 출발지 아닌가. 아저씨는 열차가 오자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먼저 우리를 노약자석으로 안내해주셨다. 와. 정말 내내. 우리 내릴 수 있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많은 인파가 전철 안으로 구겨져 들어왔다. 아이들에게 이 유쾌하지 않을 수 있는 시간을 어떻게 설명할까 싶어서 "이제부터 우리 전철여행을 하는 거야~" 라며 평소엔 택도 없는 뽀로로 콘도 틀어주고 급행_완행 환승역에서는 자판기도 뽑아주었다.


그렇게 도착한 9호선의 어느 역. 아이들을 넣고, 주민센터에 가서 전입신고를 한다고 서류를 내밀었더니, 직원이 인상을 쓰며, 계약서에 거주 계약기간이 안 나왔다며, 인상을 쓴다. 참, 저렇게 불친절한 동사무소 직원은 또 오랜만이다. 행복주택 계약서로 전입신고하러 오신 분 없었냐고 물었더니, 이런 것은 처음이라며, 나를 특이한 사람이라는 듯 보았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기는 했지만 해결을 하고 썩 유쾌하지 않았던 경험을 봉인하기로 했다.


내가 어리고 (적어도 어려 보이고) 가난해 보이는 (적어도 임대주택 계약서를 들고 온) 사람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대하지 않았을 텐데 라는 생각이 스치긴 했지만, 그런 피해의식을 곱씹으며 남을 원망할 시간은 아깝다. 그 사람의 그릇은 그 사람에게 맡겨두고 나는 바쁜 이사 현장을 복귀했다.


이사 전에 받으려고 했던 헹거가 이삿날이 최초 배송 가능일이라 하여 그날 아침에 온다 하여서 나도 번호를 몰라 열 수 없는 집 앞에서 배송을 받았다.


SH임대주택에서 SH임대주택으로 가는 경우의 절차는 다음과 같다. 우리 같은 경우는 기존에 살던 국민임대 59형에서 짐이 거의 다 나왔을 무렵, 관할 SH 주거복지 센터에 전화를 한다. 그러면, 집을 점검하러 직원이 나온다. 집에 손상된 부분이 있으면 돈을 지불해야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 이번이 SH에서 받는 3번째 퇴거 점검이었지만, 역시! 물어내고 갈 것은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나는 언제나 이사가 다시 발생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그리고 내가 돈을 내고 가는 것 이상으로, 다음에 그곳에 살 사람을 위해 임대주택을 최선을 다해 관리해왔다.


아마 그 집에 들어간 사람은 진짜 대박일 것이다. ^^ 중문에 새시에 도배에 실리콘 LED조명까지.. 어떤 3자녀 실지 축하드린다. 그 국임 59형에 들어갈 때 아무의 심 없이 30년 살 것이라 생각해서 했던 것들이었다. 이번에 이사 올 때는 새 아파트 입주임에도 불구하고 뭔가 사고 싶은 마음을 꽉꽉 눌러 담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들어왔다. 욕실 줄눈을 관리가 어려워서 하고 싶었는데, 욕실 하나만 해주러 출장을 오는 곳이 없단다.


여하튼, 기존 집에 점검이 끝나면, SH 관할센터에서 보증금을 계약자 통장을 보내준다. 그럼 퇴거가 끝난 것이다. 퇴거가 완전히 이루어진 다음에, 새로 가는 임대주택에 대한 입주절차가 진행돼야 한다. 뭐, 그럴 일은 없겠지만, 하루라도 임대주택을 2중으로 이용한 것처럼 서류가 남으면 퇴거까지 갈 수 있는 사안임으로, 최소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래서 새집에 대한 대출이 있을 때 은행에서 SH으로 보내는 시간을 내가 전화를 주고 난 이후로 정했다.


SH에 기존 임대주택 보증금이 환급이 아직 안됐는데, 새집에 대출금이 잡히면, 그쪽도 입주절차로 간주되는 일을 방지하고자 함이다. 예전에는 천왕에서 같은 단지 내 이사를 할 때는 보증금을 돌려받지 않고 증액된 부분만 SH에 냈던 것 같다. 그리고 천왕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때는 천왕 쪽 SH센터에서 우리를 거치지 않고 바로 이쪽 SH센터로 돈을 보내준 적도 있다.


이번에는 10시 45분쯤 퇴거 확정을 받고, 11시에 새집에 대한 대출을 입금시키고, 잔금을 보내고 11시 20분쯤 새 집에 대한 입주 확정을 받을 수 있었다. 이 시간이 왜 중요하냐면, SH는 점심시간이 정확하다. 저번 이사 때는 11시 넘어서 퇴거 확정을 받다 보니, 확인 절차 뭐 하면서 11시 반쯤 전화가 왔다. SH 퇴거 담당자가 식사를 가셔서 퇴거 보증금을 한시 넘어서 입금해줄 수 있단다. 즉, 우리는 최소 한 시 다시 받아서 입금하고 확인하고 그러면 집 문을 열어서 이사를 시작할 수 있는 시간이 2시에 가깝게 되었다.


이럴 경우, 별일 아닐 수도 있지만, 이삿짐센터 분들이 기다려야 되니, 그리 좋은 케이스는 아닐 수도 있다. 그래서 이번에 초스피드로 퇴거 확정을 받고 이사 들어오는 집도 바로 확인을 해줬다. SH센터에서 입금확인증을 팩스로 보내줘야 한다는데, 쿨한 관리소 직원분이 전화로 확인하고 열어주셨다. 그제야 텅 빈 새 집에 들어와서 벽에 기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남편과 이삿짐 아저씨들이 도착했다. 아저씨들은 이사하기 너무 편하게 짐을 잘 정리해 놓으셨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내가 여기 와서 정리를 거의 안 해도 되도록 정리도 했지만, 옮기실 분들이 어떻게 하면 편하게 하실까 고민도 늘 한다.


내 기본 모토 중에 하나다. 역지사지.


아무리 튼튼한 이사 스텝들도 오후가 되면 지치기 마련이다. 음료수 하나씩 돌려드리고 책 꽂는 것 같은 것은 도와드렸다. 영구 이사 사장님과 3번째 이사를 한 것인데, 늘 같은 사람들이 오시지는 않았지만 사장님이 사람 뽑으시는 기준이 한결같은 덕분인지 늘 괜찮은 분들이 오신다. 지금은 사장님이 현장을 뛰시지는 않으시는 것 같은데, 처음에 우리 집에 오셔서 이불장에 이불을 개어 놓으셨는데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대박. 각 잡히게 예쁘게 이불을 정리해놓으셨다.


별거 아닐 수 있지만 그 장면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그분에게 다시 의뢰를 하게 되었었다.


전화할 때마다. 사장님 이번엔 오시나요 라고 물으면 마냥 웃으시기만 하신다. 2년 뒤에는 뵐 수 있을는지 ^^ 우리 집 책장 중에 무거운 책을 많이 넣어서 선반이 깨진 게 하나 있는데, 막내 스텝이 거실 한가운데 그것을 놓으려고 하자, 반장님이 오셔서 방에 것과 바꾸라고 지시해주셨다. 휴우 다행이다. 안 그래도 말하고 싶었는데, 안 그래도 힘들게 옮기셨는데 말하기 민망해서 쳐다만 보고 있었는데, 반장님 눈치가 백 단이셨다.


입주 아파트 이사의 특이점은 이사 차가 도착하면 어디서 보고 오시는지, 그렇게 광고하시는 분들이 찾아오셨다. 암웨이 영업사원분부터, TV 신청, 중국집 전단지 까지.. 결국 저녁에 전단을 주고 가신 중국집에서 시켜먹었다는 ^^


이제 이삿짐 아저씨들과 헤어질 시간이다. 반장님이 방이 하나 줄긴 했네요 라고 해서 네 여기가 좀 더 작지요 했더니 그래도 여기가 훨씬 비쌀 텐데요 라고 하신다. 그럼 마냥 웃어넘기면 된다. 웃고 마는 것은 여기가 자가라거나 비싼 전세금을 지불한 척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모든 과정을 설명하기엔 너무 길고, 관심 없는 사람에게 임대주택 얘기를 하는 것도 실례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이제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사 날의 해가 진다. 입주하는 아파트에서 첫날 할 일은 난방을 풀로 가동하는 일이다. 달궈지는데 시간이 소요된다. 그날은 35도에 맞추고 자니까 25도 까지는 올라와줬다. 저번 집에는 중문을 달았었는데, 확실히 중문이 없으니 찬기운이 돌아서 아쉬운 대로 커튼을 달았다. 나가는 D-day가 확실한 집에 돈을 쓸 정도로 호탕한 지갑은 아니기 때문이다.


참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지난번 동네가 너무너무 너무 좋아서 정말 평생 살고 싶었다. 내가 가진 경제력으로는 이 동네나 그 동네사 현재 구매 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말이다. 평생 살고 싶고, 거기보다 좋은 곳은 없을 거라 믿기까지 했던 동네.. 가 지금 2-3일이 지난 지금 내 마음과 머리에서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 나라는 인간이 너무 매정한 탓인지, 변화에 잘 적응하는 탓인지, 이곳이 너무 좋은 탓인지, 그러하다.


이사 이후, 남편에게 뭐가 좋냐고 물어보자. 비데가 있어서 변기가 따뜻한 게 좋단다.

참, 소박한 사람을 내가 데리고 산다. 이제 하루에 숨만 쉬어도 2만 원씩 나가는 집세를 내며 살게 된다. 또 이렇게 자립의 면역성을 높이는 한 번의 스텝을 밟았다.


스테이시.

힘 내보자.


인생의 또 다른 한 페이지를 써내려 갈 이곳..

프로이사러, 14번째 이사를 마치며.


2018 행복주택 1차 입주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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