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봤자 임대주택?
2015년 11월 공고 난 장기전세의 결과는 3월에 나왔고, 그 결과가 나올 때 즈음은 우리는 차상위에서 해제되었고, 남편도 이직으로 제조업 종사자가 아니었다. 기막힌 타이밍이었던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공고일 기준으로 자격을 검토하기 때문이다.
종종 같은 단지 내에 장기전세 친구 집에 가서 방이 3개야 살짝은 부러워도 했는데, 30년 된 원룸 구조 15평의 신도림 미성아파트 탈출 2년 만에 초역세권 방 3개 새 아파트에 20년 (재계약 시 5% 이하 상승)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었다.
그래 봤자 네 집도 아니잖아 라고 비웃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빚내서 무조건 사야 되라고 혀를 쯧쯧 차는 어른들도 당연히 계셨으리라. 그런 방법이 있는 줄 몰라서 임대를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각 가정은 모두 출발점이 다르고, 돈을 버는 속도도 다르며, 맞벌이 가능 여부 등도 다르다. 그러므로 그 가정의 최대치 노력에 대한 결과도 현재 다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총자산이 5000만 원 인 사람한테, 넌 빚내서 5억짜리 집을 안 사고 월세 내고 살고 있으니 노력하지 않고 있다고 손가락 질 할 수 있는 사람 있는가? 많은 사람들, 특히 부모라면 많고 적음을 떠나 모두 자기 자녀를 위해 최선을 다해 산다. 그리고 팩트를 투척하자면 아이들은 본인이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우리 집이라고 느끼고 평안하다. 내가 유주택자니 무주택자니 좋은 곳에 사는 게 자존감은 높이느니 마느니 하는 것은 어른들의 머릿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상 전쟁에 불과하다.
교통의 요지에 학군 좋은 곳에 새 집을 사놓고, 여기가 우리가 산 집이야 라고 말해도 아이는 그 집을 탈출하고 싶은 마음을 가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모든 순간, 돈이 최고의 가치다 라고 말한다면 이 글을 더 읽지 않으셔도 좋다.) 좋은 환경을 주지 못한 것에 미안하고 뭔가 탈출하면 될 것 같은 환상에 사로잡히지 말고 먼저 아이가 부모에게 뿌리를 내리고 자존감을 형성할 만한 마음을 내가 그에게 내주었는가 돌아보는 것이 우선이다.
난 대출로 집산 사람을 비난하고 있는 게 아니다. 나도 한국에 사는 한 잠재적으로 언젠가 그렇게 될 가능성이 크지 않겠는가? 다만, 모든 가정의 시기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각 가정이 대출을 견딜 수 있는 결속력 및 실력을 준비할 수 있는 시기가 있을 것이고, 맞벌이가 원활하게 가능해지는 아이들이 크는 시기가 도래할 것이다. 그럼 부동산 타이밍 다 놓쳐 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소탐대실하고 싶지 않다. 정신 승리하고 있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하하 ^^
외국에 교환학생을 갔을 때 25개국에서 50여 명의 학생들과 한 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한 번은 아프리카 친구랑 영어가 안 통해서 엄청 힘들었던 적이 있었다. 너도 영어를 말하고 나도 영어를 말하는데 왜 우린 알아들을 수 없는가를 엄청 고민하다가 저 친구가 뭔가 틀린 발음일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부끄럽게도 말이다.
영어는 영어일 뿐이었다.
틀린 건 내가 맞으면 누군가는 틀렸다고 말하는 내 마음일 뿐이었다. 한국인의 정서랄까......
남자 아니면 여자
내편 아니면 네 편
집 있는 사람 아니면 집 없는 사람
집 있는 사람이 정답이므로 집 없는 사람은 잘못인가? 먼저 태어나서 집값이 저렴할 때 살 수 있었던 사람들 인생이 맞고, 뒤늦게 이 시대를 사는 우리는 이미 틀린 건가? 사람들을 만나서 상담을 해주고 얘기를 듣다 보면, 일부러 무주택을 선택하신 분들도 있고, 억지로 유주 택일 수밖에 없는 사례도 참 많다. 아주 큰 사업을 하시다가 갑자기 큰 일을 당해서 임대주택에 들어가게 되신 사례도 있으시다.
인생은 역지사지.
개구리가
올챙이 적 생각을 해야 한다.
그게 사람의 그릇이다.
나는 임대주택을 사다리라고 표현한다. 혹은 물에 빠진 사람에게 던져줄 수 있는 밧줄이라고. 인생의 어느 시기에 나는 분명 국가의 예산이 들어간 혜택을 받고 있는 것이고, 일종의 책임감을 갖고 있다. 내가 받은 도움에 대해 사회에 어느 부분인가 도움이 되고 싶다는...... (이 책을 통해 많은 분들이 자신에게 맞는 임대주택제도를 알게 된다면, 조금은 이 일을 이룬 것 같아 기쁠 것 같다.)
나는 아직 집 없는 사람(?)에 해당되지만 집 있는 사람이 적폐라고 생각 하지도 물론 않고, 임대주택이 평생의 해답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우리 부모님도 시부모님도 본인들 사실 집 하나 있으시다. 그게 평생 노력의 결과물이라면, 누가 그것을 비난할 수 있겠는가?
임대주택을 선택한 이유들은 앞에서 쓴 글에도 많이 드러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은근히 표현하기 어려운 진짜 이유에 대해서 여기서 이야기해보려 한다. 내 경험담은 이제 반환점을 돌아왔을 뿐이니, 잠시 쉬어가 보자.
이 책을 쓰면서 스스로 가장 경계했던 것이 나도 괜찮은 사람 아니면서 남에게 교훈적 애기는 하지 말자였는데, 이번 장에서만 좀 철 있는 척할 테니 좀만 봐주라. 나는 경단녀라는 표현을 별로 안 좋아하는데, 물론 사회 통념적으로 나는 경단녀에 해당할 것이다. 나는 공기업 계약직 이후, 거기서 더 일 할 수도 있었고, 다른 회사에서 내가 지원한 직급보다 높여서 채용해줄 테니 다시 지원하라는 곳도이었다. 스펙이 좋다며, 자기 회사에 오긴 아깝다며 개인적 이메일을 받은 적도 있다. 뭐, 이건 지나간 애기일 뿐이고, 지금 내 이력서를 보내면, 면접 제의를 하면서 다들 꼭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경력이 굉장히 다양 하 시네요.”
말이 좋아 다양하다는 거지. 너 한 우물 안 파고 뭐했냐 이런 소리로 들리기도 한다. 일찍 결혼 한 덕분에, 결혼 전 2년 이상 일 하지 못했고, 아이를 낳고 오래 한 무역사 무일은 업무적으로 잘 알고 있지만, 알바는 말 그대로 알바여서 경력증명서가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애 둘 키우면서 방통대 대학원까지 해 놨으니 그야말로 짬뽕 스펙이다.
이런 내가 돈을 벌면 얼마나 벌 수 있을까?
시간제로 일자리를 구하다 보니, 쓸 만한 경력은 없고 자꾸 이력서만 길어지는 것 같다. 여하튼, 현재 우리 가정은 몇 억을 대출받아서 매 달 몇 백만 원이 넘는 돈을 상환할 깜냥은 안 되는 게 확실하다. 이 상황에서 내가 처음에 장기 안심 제도를 이용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솔직히 이러 지도 저리지도 못하다 점점 작은 집으로 점점 월세 형태로 쫓겨 다녔을 것 같다. 그럼 더 솔직히 말해서, 왜 난 턱턱 집사 줄 수 있는 부모님 없냐 고 한탄하고 원망했을 것 같다.
평생 고생하시고, 자기 집 하나 50세 넘어서 가지신 아빠 그리고 평생 도로포장업으로 객지 생활 하시면서 자기 집 하나 갖게 되신 시아버지. 두 분의 인생에 “왜 두 분은 부동산 투기에 안 뛰어들어서…….”라는 주제넘은 비난을 하고 싶지 않았고, 그분들이 살아오신 삶을 그 그대로 존중하고 존경하고 싶었다. 부모님이 보여주신 나에게 심어 주신 가치관과 정신상태 정도면, 많은 것을 주신 것이고 감사함을 유지하고 싶었다.
그래서 찾은 나름의 방법이 임대주택이었다.
시아버지는 늘 나를 볼 때마다 집을 하나 해줬어야 하는데 미안하다고 하신다. 그럼 나는 더 작아진다. 평생 고생하신 쭈글거리는 손을 잡아드릴 때면, 아고 이제 쉬시고 내가 용돈을 드려야 할 판인데, 내가 어쩌다 드리는 물질보다 손주들에게 더 많이 쓰시는 걸 보면, 한없이 작아지는 나이다. 최대한의 노력으로, 가정의 경제적 정서적 자립도를 높이고, 부모님께 큰 부담을 느끼지 않게 해 드리는 것이 임대주택의 1차 목표였다.
여기서 최대한 노력이란 것은 물론, 그만큼의 돈을 버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제도를 활용해서 돈을 아끼는 것도 포함이라고 말하고 싶다. 지금 우리 가정은 안정적인 임대주택에 쫓겨날 이유 없이 살고 있고, 나의 알바까지 더해져 전세자금 대출도 상환해 가고 있다. 그러나, 부모님 마음의 부담을 덜어드리는 것은 실패한 것 같다. 부모님 세대에게 우리는 아직 집이 없는 걱정되는 자녀이기 때문이다.
홍대 자퇴하고, 한예종 첫 번째 학비 내주셨을 때 정말 아빠에게 고맙고 훌륭한 사람 되어야지 했고, 교환 학생 간다고 아빠가 빚내서 보내 줄 때 나중에 꼭 갚아 야지 했는데, 나는 아직도 아빠에게 한 번도 자랑할 만한 딸이 되어 드리지 못한 것 같아 죄송할 따름이다. 우리 시부모님도 내가 자꾸 좋은 아파트로 싼 가격에 이사 다니니까, 어찌 어지이 크게 못 도와줘도 잘 살더라 하고 다행이야 라고 얘기 하셨을 테지만, 아마 우리가 집을 샀으면 우리 아들이 집 샀어 라고 훨씬 더 크게 기뻐했을지도.....
부모님께 큰 결과물을 내 드리지 못해 늘 죄송하지만, 사랑하고 당신들이 살아온 삶을 존경한다고 이 자리를 빌려 꼭 전해드리고 싶다. 우리 아빠는 이런 마음은 아는지 모르는지, 새 집 한 번 살아보더니 맛 들리고 바람 들어서 계속 이사 다니는 철없는 프로이사러로 날 보고 있는 것 같다.
뭐, 솔직히 그것도 아예 틀린 말은 아닐 수도 있겠다.
^^
임대주택에 사는 것은 단 한 번도 내게 부끄러움을 준 적이 없다. 다만, 부모님이 은퇴하 셔서도
나를 경제적으로 부양해야 되는 혹은 집 등을 전적으로 마련해줘야 하는 그런 태도의 자녀라면 내가 그렇다면 그것은 부끄러울 것이다.
최근에 이사 온 집에 집들이를 간략히 했는데, 한 분은 뭐하러 몇 년살 건데 이런데 오냐라고 하시고 한 분은 네가 제일 실속 있게 산다고 가셨다. 실속 있게, 참 듣기 좋은 말이다. 임대주택이 당신의 아이덴티티가 될 필요도 없고, 당신의 꿈이 돼서도 안된다.
그래서 나는 이 글들을 쓸 때부터, 임대주택 이용자, 사용자 등의 단어를 선택했다. 임대주택을 당신의 삶의 선상에서 일정기간 이용하는 것이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난 내 부모님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유지하는데 임대주택 거주가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었으니
그걸로 족하다.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