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 길들이기 3 편을 보고 드는 생각
영화관을 대폭 할인받는 내 동생에게 "헬로카봇 극장판"2장만 예매해 달라고 부탁했다가,
그럼 나머지 가족 2명은 뭐하는데 라는 질문에 정확한 대답이 없던 죄(?)로 카봇과 같은 시작에 하는 영화
"드래곤 길들이기 3"을 보라는 제안 섞인 강제 티켓 2매가 띵동 도착했다.
아, 이런 이미 시리즈로 3편인 영화를 보라고? 약간의 편견이 생길 뻔했으나, 헬로 카봇을 4명이 보는 것보다는 확실히 나은 상황인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1편 2편 줄거리를 검색해서 나와 함께 영화에 배정받은
딸내미에게 읽어주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온 딸내미가 나에게 묻는다.
"엄마, 근데 길들이기 가 무슨 뜻이야?"
음......
한국어가 이렇게 어려운 거였나, 적합한 대답을 찾지 못한 채 다음 질문을 맞이했다.
"그래서 드래곤 길들이기는 성공한 거지?"
아,
"아니야 아니야 이 영화는 그래서 길들이기에 실패했다고 말하고 있는 거야"
길들이기라는 단어를 아름답게 치부할 필요는 없었지만,
굳이 말하면 목표의 일환으로 긍정적으로만 여겨왔던 나에게
길들이기에 실패한 이 영화가 감동을 준다는 것이 뭉클했다.
길들인다. 길 들인다.
어떤 행동에 내가 원하는 반응이 나오도록 시간을 갖고 훈련시킨다.
사전에는
어떤 일에 익숙하게 하다. 영어로는 Train이라고 검색이 된다.
How to train your dragon
영어로 보니까 길들이기 단어 자체가 지독히 '나' 중심의 단어라는 느낌이 잘 전달된다.
내 소유격인 무언가를 내 의지로 훈련시킨다.라는 거구나.
이 단어가 왜 나한테 이렇게 걸림돌이 되어서 새벽까지 글을 쓰냐 하면은,
나는 내 배우자에게 길들이다 라는 표현을 종종 썼던 것 같아서 말이다.
길들이기를 포기해야 아니 실패해야 우리는 더 온전한 관계를 누릴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사실, 이 영화의 주인공도 그랬지만,
길들여지지 않는 상대를 보는 것보다
길들일 수 있어 그게 우리가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야 라고
믿어왔던
자아를 내려놓는다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그래, 실패해야 해.
나의 길들이기는. 그래야 내가 좋아했던 너 다운 너를 만끽할 수 있겠지.
- 오늘도 나의 트레이닝에 치이다 잠든 안쓰러운 너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