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네 자리야

2화

by 스테이시

몸이 물에 푹 젖은 스펀지 같아. 몸이 너무 무거워서 그 위에 덮인 이불마저 내 숨통을 짓눌러.

누워만 있는 것도 힘들고, 말을 하려고 입을 벌리는 것조차 내 마음대로 안되던 그때.

매일매일을 무표정하게 무딘 감각을 안고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길고 긴 하루를 간신히 살아냈어.

매일밤 자기 전에 깨어나지 않길 바라고, 아침에 눈을 뜨면 다시 무표정하고, 무감각한 하루를 보냈어.


화를 내고, 짜증을 내고, 한숨을 쉬며 밖으로 밀어냈다면 더 나았을까… 이리저리 설키고 얽힌 감정들은 내 안에서 자기 좀 봐달라고 소리를 질러대는 것 같아.

혼란스러운 난 하루 종일 흔들거려. 어떻게 이 수많은 감정들을 헤쳐나가야 하지, 나는 뭘 어떻게 해야 하지.

내 안에 감정들은 서로 얽히고설키기를 계속해. 나는 그렇게 그들에게 점점 억눌려가고 있었어.


마음보다는 몸이 먼저 아팠어. 머리와 배가 아프고, 잠을 못 자. 점점 배고픔도 느껴지지 않아.

몸이 아픈 건 인지를 하면서 마음이 아플 수도 있다는 생각은 못했던 거야. 마음이 너무 답답해서 몸으로 자꾸만 신호를 보냈던걸 나는 애써 외면했어.




결국 정신과 의사를 만났어. 집으로 돌아오며 처방받은 약통을 매일 앉아 일하는 책상 안쪽 깊숙이 넣었어. “오늘부터 여기가 네 자리야.”


문득, 이 고약한 것과 평생을 살아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어.

이미 내 삶 어디엔가 자리를 잡고 있다면 밀어내려고 애쓰는 게 크게 소용이 있을까. 어차피 나는 또 그것에게 잠식당할 텐데.

아마도 고약한 그것을 룸메이트로 잠시 받아들여야겠다고 생각했어. 그리고는 슬며시 “고약한”이라는 형용사를 내려놓았어.

아무것도 바꾸지 않기로 했어. 아니, 무엇을 바꿀 기운도, 생각할 여유도 없었어.

숨을 쉬고 있는 것만으로 숨이 차서 계속 숨을 들이마셨어.


그렇게 그것에게 내 자리를 내어주고 나서, 나는 말 잘 듣는 아이처럼 매일 약을 복용했어.

신기하게도 약을 먹기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꽤 자연스럽게 내 안에 시끄럽게 움직여대는 감정들에게 반응하지 않게 되었어.

짜증과 슬픔, 까칠과 분노 외에도 수많은 감정들과 싸우려 했던 나를 내려놓으면서 괜찮아지려고 굳이 애쓰지 않았어.

괜찮아지려는 노력을 하는 건 아직도 힘에 겨웠어. 그때도 나는 여전히 숨을 쉬고 있어도 숨이 찼거든.


시끄러운 감정들이 한바탕 훅 모든 걸 쓸어버릴 때가 있어. 그럴 땐 그냥 비껴서. 그들이 지나갈 수 있게. 빨리 나가라고 재촉하지도 소리를 지르며 싸우지도 않아.


그러다 보면 또 어느 날은 잔잔한 순간들이 있어. 물은 흐르는데 물결이 일지 않는 듯한 때가 있어. 그렇게 아무 감정도 크게 올라오지 않는 순간은 참 고요해.

숨을 헐떡이던 내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소파에 앉아서 어스름해진 밖을 바라봐 - 오늘도 지나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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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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