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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시 Apr 14. 2020

물들어 올 때 노를 못 저은 물오름달

2020년 3월

또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채 한 달이 끝났다. 

그도 그럴 것이 3월 내내 언제쯤 다시 출근하게 되려나 전전긍긍하며 보냈으니, 외출도 여의치 않고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기도 뭐하고 그저 하루살이에 불과했다

그래도 삶은 굴러갔고 몇 가지 기록할만한 사건도 있었다. 




시작한 일 



영화 학교 


사실 영화 학교는 아니다. 

단기 워크숍인데 너무 스케줄이 많아서 꼭 마치 학교에 다니는 것 같달까.. 

아니면 작은 영화사 말단 직원쯤 된 것 같기도.. 

이번 달은 모임이나 회의 또는 실습이 너무 많았다. 

하루에도 수백 통 씩 오는 카톡, 빠트리지 않고 준비해야 하는 소품, 촬영에 참고할 씬리스트 작성 등 소소하게 시간과 마음 쓸 일이 많았다. 

한 작품에만 참여할 걸 하는 뒤늦은 후회와 걱정이 계속 들지만, 이왕 하기로 한 것 민폐는 끼치지 말자며, 지나면 다 추억일 거라며 인생에 한 번 뿐인 경험 즐겨 보자며! 걱정은 잠시 미뤄두기로 했다.

실제로 현장은 몹시 힘들지만, 꽤 재밌다. 매일 컴퓨터 앞에만 앉아있다가 무거운 것 실컷 나르고 장비 설치하면서 몸을 많이 쓰니까 하루 이틀은 앓더라도 알게 모르게 건강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선생님을 자처하며 애써주시는 분, 무료로 공간을 내어주시는 분 등 너무 멋지고 감사한 분이 많다. 다들 본업보다도 몰두해서 즐기는 모습이 때론 존경스럽다. 

그래도 얼른 이 바쁨의 시기가 끝나고 시사회(=릴리즈)를 하는 순간이 오면 좋겠다.



GUI 공부 


'무릇 디자이너라면 비주얼 디자인을 잘해야지!' 라고 생각한 지 얼마 안 되었다

프로덕트 디자이너는 비주얼 디자인 말고 다른 면에서 성과를 낸다거나 두각을 드러낼 부분이 많으니까
'나도 잘하는 거나 하면 
되겠지.'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내심 늘 UI 디자인을 잘하는 사람이 부러웠다. 그 감각과 센스와 실력이 왜 나에겐 없는지 물음이었다. 비핸스나 드리블을 둘러보다 보면 나 빼고 다 천재인 것 같고.. 

그렇지만 이제 마음을 좀 고쳐먹기로 했다. 부족하면 더 훈련하고 공부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조금씩 UI 디자인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다니고 있는 회사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벗어나 나만의 스타일을 찾아보기도 하고, 내 취향, 컬러, 톤은 무엇인지 탐구하기도 하면서 재밌게 하고 있다. 

최근에는 요즘 트렌드인 뉴모피즘을 적용한 스타벅스 앱 UI를 만들어봤다.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역시 릴리즈는 그간 느낀 인고의 시간을 잊게 해준다.





아쉬운 일



소홀해져 버린 이직 준비 


요즘 정말 심심치 않게 이직 제의 연락이 온다.
지인에게 
오는 일도 있고 흔하디흔한 방법인 링크드인 등에서 찔러보기도 많다.
하루에 몇 통씩 오는 날도 
있다 보니 일일이 답장을 하기 어려운 상황.
지난 
연말부터 지금까지 몇 건의 연락이 있었나 대충 세어봤더니 서른 건은 족히 넘는 것 같다.
그런데 
지원한 곳은 단 한 군데 뿐이다그마저도 포트폴리오 없이 인터뷰부터 보고 싶대서 지원한 것일 뿐...
너무 안일하게 있는 건 
아닌가? 스스로 뜨끔하게 되는 숫자다.
많은 기회가 있었는데 놓쳐버린 것이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도 든다.
빨리 이력서를 다듬고 면접 일정을 잡아서 나의 정확한 시장 가치를 판단해야겠다. 





소소한 일상



제주 리모트 


친한 동료들과 늘어난 재택근무 기간에 맞춰 이틀간 제주도에서 리모트 근무를 했다. 

이 시국에 무슨 제주이겠냐마는 평소 같으면 생각도 못 할 일을 이 시국이니까 벌렸던 것 같다. 

정말 짧고 굵게 재밌었다.
공항 안내 방송을 피해 회의할 자리를 찾는 순간.
낮에 잠시 머문 경치 좋고 음악 좋던 카페들.
매일 밤 봉지 터지게 장을 보고 하이볼 잔을 기울이며 나눈 실없는 수다들.
일정 내내 날씨가 
흐렸지만, 제주의 바닷바람과 한적함은 우릴 포근히 품어줬다.


절친의 결혼 


어린 
시절부터 늘 함께했던 친구의 결혼식이 있었다. 
코로나 때문에 걱정이 많았지만, 무사히 예쁘게 잘 치뤘다. 
내 결혼이 언제일지 모르지만 예쁜 부케도 받았다. 그리고 나를 사진 찍어주고 운전을 해주러 따라온 오빠는 얼결에 내 친구 하객으로 사진도 같이 찍었다. (이 순간이 가장 추억ㅋㅋ)
안 울줄 알았는데 눈물도 찔끔 났다. 아무리 생각해도 잘 어울리고 현명하게 잘 살 것 같은 부부인데 괜스레 친구를 뺏긴 것 같은 허전함을 느꼈나보다.
달라질 것이 없을 것 같단 우리의 일상이 결혼식 2주 만에 달라짐을 확 느꼈다.
다른 친구 생일이라 모인 모임에서 신랑이 혼자 기다린다고 귀가를 빨리하다니..
정말 
친구답지 않은 선택이다. 그래도 우리 모두 적응하고, 점차 이해하게 되겠지. 유부의 삶이란.. 




길어진 재택근무를 기회 삼아 하고 싶은 일이 참 많았는데 벌써 사무실 복귀를 앞두고 있다.
나와 내 주변 모두 아프지 않고 이 사태를 잘 이겨내고 있어서 다행이다.
이미 적응된 생활패턴을 되돌리는게 꽤 힘들겠지만 남은 4월과 다가올 5월은 지체 않고 더 달려야겠다.
흘러가는 봄이 아쉽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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