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예명 Sep 11. 2017

사십 센치

    1초가 흘러갈 때마다 포구가 수 백 미터씩 멀어지고 있다. 집이 있던 포구는 언제나처럼 분홍빛으로 물들 것이고 이제는 아무도 뛰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아버지가 홀로 서 계신다. 이제 나는 그곳에 없다. 나를 둘러싸던 작은 방, 모든 관계와 일어났을 법한 사건들도 지평선에서 흐려진다. 그리고 몇 시간 뒤부터 일어날 일도 캄캄하기만 하다. 나는 그런 불확실의 구름 어느 한가운데를 부유하는 것. 떠밀릴 듯 하지만 시간 속에 갇혀 갈 곳도 없는 존재.


    비행은 적당히 자고 적당히 깨어있다 보면 끝난다. 인생도 마찬가지지만. 공항에 내려서 귀찮은 온갖 절차를 밟고 전철을 타러 간다. 공항은 방문하는 나라의 첫인상이 되기 쉽지만, 또 동시에 일부일 뿐이다. 공항에 너무 마음을 빼앗기지 말자.


    공항에서 또 숙소에서 이런저런 만남이 있기 마련이다. 대낮부터 섹스를 장려하는 사람(물론 언제 하든 상관은 없다), 그냥 나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 친근감으로 구걸을 하려는 사람, 착한 숙소 주인, 모두 피곤하다. 하염없이 침대에만 누워있다. 생존은 해야 하니 나가서 식료품도 사 온다. 음식이 저렴하고 맛있어서 속없이 잘 들어간다. 낯선 땅의 물도 대충 받아서 마신다. 먹고 살만 하다.


    이틀 뒤 그가 왔다. 그와 함께 며칠을 지냈다. 이 두 사람은 같이 다니기만 했을 뿐 전혀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처음 마중 나갔을 때 알아챘다. 우리는 끝났군요. 절실히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불을 끄고 그 옆에 나란히 누워 생각했다. 내가 경험한 가장 먼 거리, 내가 날아온 거리보다 먼, 그 거리가 바로 지금 나와 그 사이의 사십 센티미터인 거야. 나라는 사람은 8000 킬로미터를 날아왔지만 그 사십 센치를 좁힐 능력이 없었다. 그 놀랍도록 차갑고 명징한 깨달음에 가슴이 얼었다.


    그는 다시금 40센티미터보다 멀어져, 나는 갈 수 없는 고향으로 떠난다. 나는 하루쯤 방황했다. 그리고 밤 열 시쯤 아주 늦은 저녁을 먹었다. 뜨거운 피자를 먹느라 입천장을 마구 데었다.




 

작가의 이전글 사진 찍어준다고 하지 마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