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렇게나 말하기
어제는 새벽 네시까지 동생과 이야기하다 잠이 들었다. 원래는 어머니와 한시까지 이야기를 하고 자려고 했다. 아침에 바리스타 실기 시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사를 하려고 들른 동생 방에서 근황을 풀다보니 세시 반이 되어버린게 아닌가.
어찌됐건 나는 실전에 강하기 때문에 8시에 일어나서 시험장으로 갔다. 다들 불안감에 난리도 아니었다. 실기시험은 무난히 마치고 나왔다.
커튼에 쓸 부품을 사기 위해 쇼핑몰에 갔다. 마카롱처럼 생긴 여직원이 마카롱을 팔고 있었다. 마트에서는 지나가면서 직원들에게 추천받은 제품과 식품을 모두 샀다. 어차피 당장 그 제품에 대해 따져볼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그들의 연륜과 지식, 그리고 인류애를 믿어보기로 했다. 심지어 세제를 살 때에는 덤으로 소포장된 액체 세제와 가루 세제를 받기도 했다. 역시 남 말을 들으면 편하다. 물론 어제는 미용실 원장님 말을 믿고 따랐지만 결과는 그렇게 좋지 않았다. 그치만 그것을 두고 그 사람 말을 들어서라고 탓할 수는 없다. (회색머리에 스파클링 비쥬가 달린 옷을 입은 사람에게 얻은 조언이니까)
피곤하지만 이것저것 사들고 집으로 왔다. 신경을 써서 그런지 머리가 아팠다. 에디가 게임을 하는 소리에 깼다. 깬 김에 밤참을 먹었다. 나는 실로 제약이 없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러고 나서 폰을 확인하니 내가 예전에 좋아했던 누나에게서 연락이 와있다.
이제는 마냥 반가운 마음보다는 그래서 용건이 무엇인지를 묻고 싶어졌다는 사실이 슬프다. 또 익숙하다. 형식적으로 시작한 대화를 형식적으로 답했다. 어차피 새벽 한 시이기 때문에. 새벽 한 시에 할 수 있는 말은 한정되어 있다.
때로는 아무렇게나 내키는 대로 말하는 것은 어떤가 싶다. 발화가 정확히 전달된다는 보장도 없는 이 세계에서, 내가 전한 말이 원하는 결과를 불러올 것이란 믿음은 꽤나 헛되어 보인다. 그럴거라면 굳이 왜 노력을 하는가? 허무주의는 나의 미들네임이다.
진심으로 내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사실 이것도 진심은 아니다. 아무것도 진심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