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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마흔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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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i Apr 13. 2022

끓어 넘치는 냄비

자칭 와이프 연구 학계 일인자 장박사님(남편)의 말에 따르면 요즘 내가 처해있는 상황은 가득 찬 냄비라 한다. 육아, 일, 살림 등등으로 가득 채운 냄비를 자식이라는 불로 뭉근히 끓이고 있었는데 이 불의 화력이 점차 세지고 있다는 것이다. 냄비는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처음 끓는점에 도달하는 시간은 짧지 않았으나 지속적으로 가열하니 이내 보글보글 끓고 만다.

냄비 속에서 내용물들이 보글거릴 공간이 필요한데 내 냄비는 이미 한계이기 때문에 밖으로 끓어 넘친다. 아차 싶어 한 스푼 두 스푼 내용물을 덜어내어도 절대공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금세 다시 넘쳐버린다. 그런데다 요즘 미운 4살이라는 최강 화력을 맞닥뜨리니 넘치는 것을 더 이상 막을 수 없게 되었다나 뭐라나.. 너무 찰떡같은 비유라 반박할 수 없었다.

더 이상 넘치지 않는 평온한 상태가 되려면 냄비를 2/3로 비워내거나 불을 약하게 줄이거나 둘 중의 하나가 필요한데 지금 상황은 그게 불가능하기 때문에 내가 시도 때도 없이 우울감을 느끼고 폭발하는 거라고 한다. 그럴듯한 연구 결과다.

주변의 도움으로 육아와 살림에서 잠시 벗어나거나 나만의 시간을 가져도 잠시뿐, 다시 원상태로 돌아온다. 찰랑거리는 한 두 스푼을 비워냈을 뿐이다.

4살의 화력은 실로 대단하다. 자아가 생긴 아이는 좋고 싫은 감정을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온몸으로 뿜어낸다.

체력이라도 받쳐줘야 하는데 40줄에 접어든 나로선 그것마저 없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온 가족이 코로나에 감염되어 격리까지 겪고 나니 내 냄비는 용암 위에 둥둥 떠있듯 항상 부글부글 상태다.

나의 냄비의 평화를 위해 남편의 냄비에 살림을 한국자 옮겨 담는다. 남편의 냄비도 이미 찰랑거리는 중이다. 이렇게 우리가 힘을 합쳐 서로 한 스푼, 한국자씩 옮겨담으며 이 위기를 극복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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