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을 키우는 건 마음에 안정을 준다.
이미 아이를 너무나도 애쓰며 키우고 있어 또 무언가를 키운다는 게 의아할 수도 있지만 식물은 좀 다르다. 나는 구에서 운영하는 도시농사체험의 일환으로 분양한 텃밭을 1평남짓 배정받았다.
1000개에 가까운 농지이기 때문에 여유롭게 당첨될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텃밭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으며 3:1의 경쟁률로 간신히 당첨되었다.
내 텃밭에는 구에서 지원해준 상추 가지 고추 부추 외에도 고수, 루꼴라, 바질 씨를 뿌려두었다. 걸어서 10분 거리인 텃밭에 따릉이를 타고 거의 매일 물을 주러 간다.
요즘같이 햇빛이 쏟아지는 날에는 반나절만에도 물이 바짝 말라 잎이 처진다.
1000명에 가까운 도시 농부들은 농사에 매우 진심이다. 처음엔 다 같은 흙더미 농지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커스터마이징이 되어 지지대부터 비닐 나무판자 등 아이템이 늘어간다. 핸드폰 속 농사 게임처럼 점차 자신의 농지를 업그레이드시켜가는 모습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다. 동대문구 오지라퍼는 여기 다 모였는지 다른 사람 밭도 내 밭처럼 걱정하며 이런저런 꿀팁들을 전수해 준다.
일이 없는 날에는 샌드위치를 사서 밭 옆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점심을 먹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한다. 일이 있는 날에는 오후에 아이와 함께 물을 주러 간다. 물조리개에 물을 받고 직접 물을 주는 일련의 과정들이 나뿐만 아니라 아이에게도 좋은 영향을 줄 거라 믿는다.
낮이 점점 뜨거워지면서 내 농작물들은 쑥쑥 자라는 중이다.
뿌려놓은 씨앗들은 빼꼼 빼꼼 싹이 올라왔고 모종들은 누가 누군지 모를 유아기를 지나 제법 내가 아는 모습의 청소년기에 접어들었다.
새싹들은 아직 모두 비슷한 모습의 신생아라 마냥 귀엽기만 하다.
마음에 여유가 없는 나에게 너무나도 다정한 쉼표가 되어주는 이 공간과 내 작물들을 하루하루 보살핀다. 이것은 어찌 보면 내 마음에 물을 주고 무탈한지 들여다봐주는 행위이다.
열매를 취하기 위해서가 아닌 그 과정에 위로받고 치유되는 마음의 양식인 것이다.
물론 일용할 양식으로 식탁으로 와준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
(루꼴라 샐러드와 고수 장아찌가 되어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