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캠퍼스는 마치 '큰 산' 같았다. 산을 깎아서 울퉁불퉁한 건물로 다시 지은 산. 캠퍼스 초입에서 바로 섰을 때 보이는 풍경을 10층 높이의 건물에 비유하면 전공 건물은 7층쯤 되는 높이에 있었다. 지하철이나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30분 남은 시계를 보며 초조한 마음으로 쉬지 않고 언덕길과 계단을 올라야 도착했다. 하이힐을 잘 신지 않았지만 때때로 높은 구두를 신고 뒤로 돌아선 채로 걸어 올라가는 게 편할 정도로 경사가 심했다. 내려오는 길은 더 아슬아슬한 느낌이 들어서 되도록이면 평지에 가까운 옆길을 길게 길게 돌아 내려오곤 했다.
대학 생활은 줄곧 '방황'의 연속이었다. 전공은 평균적으로 중간 정도의 점수를 받았고 한 번 배운 것은 시험 종료와 함께 훨훨 날아가 버렸다. 교양 수업으로 학점을 보완했고 몇 가지 대외 활동으로 자소서에 쓸 몇 줄이 생겼다. 학교의 중심이자 학과의 중심으로 살아가는 학우들-캠퍼스 안에서 만큼은 이런 표현을 썼는데-을 보면서 신기해했다. 친구의 언행에 실망했고 작은 독서 모임을 끝으로 학교 생활을 마무리했다.
흥미를 잃었다면 과감하게 다른 관심사를 찾아도 됐을 텐데... 학교 생활의 대부분을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며 보낸 남편이 부러울 지경이다. 아마도 난 전공으로 확실한 결과물을 보여줘야 할 것 같은 압박감으로 스스로를 힘들게 했던 것 같다. 사실 고3 때도 '가고 싶은 학교' 같은 건 없었다. 전공은 관련 분야에서 일하시는 지인의 영향을 받아 선택했다. 그런데 막상 나와 매칭이 된 이 학교에서 나라는 존재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외부로는 나의 존재감을 어떻게 드러내야 할지 이리저리 헤맸다.
모르겠다, 왜 나 자신에게 물어보지 않았는지. 경사가 아슬아슬한 걸 알면서도 왜 평평한 옆길로 가보지 않았는지. 사실은 다른 길도 여러 갈래 있다는 걸 알아서 여기도 기웃 저기도 기웃해봤으면서 끝끝내 그 길을 걸어가지 않았는지.
도서관 건물이었던가. 뒤쪽 꼭대기쯤에 출구가 있다. 그 출구로 나가면 또다른 언덕이 있고 길이 나있다. 한적한 길을 걷다 보면 관리가 덜 된 나무들과 산책로가 있다. 좁은 길 옆으로 경사를 따라 사람의 손이 잘 닿지 않는 거친 벤치들이 놓여 있다. 저 아래에 햇살을 쬐고 있는 이가 있어 잠시 용기를 냈다. 반쯤 햇살이 내려앉은 벤치에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다 핸드폰을 꺼내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이소라 - 아로새기다
《눈썹달》이라는 이름의 앨범. 〈바람이 분다〉가 가장 친숙했고, 그다음은 〈시시콜콜한 이야기〉, 그다음으로 〈아로새기다〉가 됐다. 아로새기다... 어떻게 새긴다는 거지? 궁금증이 생길 찰나 가사에 울컥 눈물이 났다.
눈을 뜨면 먹고 마셨지 외로웠기에
후회가 되면 기도를 했지 두려웠기에
그러고 나면 다시 새롭지 모두 잊고 길을 떠날때
외로웠구나.
홀로 되기를 자처한 내가 외로운 줄 그때 알았다.
… 허전한 목에 나를 두르네
핑크빛 스카프
… 서늘한 목에 나를 두르네
핑크빛 스카프
… 오늘도 나는 나를 두르네
핑크빛 스카프
누군가의 음원 사이트 한줄평에는 '나를 두르네'라는 표현에서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하던데 웬걸, 난 이 가사를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울먹이는 소리에 묻혀버렸나 보다. 지금 다시 들어도 '핑크빛 스카프'에 대한 감정이나 감상은 아직 백지 그대로다.
그러면 되지 다시 새롭지 나를 찾아 길을 떠날때
다독이는 가사에 위로를 많이 받았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올 때라 나무에 가지들이 앙상했다. 꽃샘추위에 불어오던 바람을 떠올리니 자주 매던 스카프가 생각이 났다. 분명 그 스카프 위로 눈물을 뚝뚝 흘렸을 거면서 '핑크빛 스카프'와는 여전히 가까워지지 못하고 있다.
긴 방황의 시간은 지금까지 여운이 남았다. 어쩌면 대학생이라는 신분 뒤에 숨어서 방황을 학습해버린 건 아닐까? 그래서 특별한 결과물이나 이룬 것 없이 여전히 연습만 하는 인생을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자책을 한다. 자꾸만 '지난 몇 시간, 아니면 지난 며칠만 되돌리면 더 잘할 수 있을 텐데'라고 후회도 한다.
"자기는 너무 자신에게 엄격해. 남들보다 기준이 높아."
남편이 여러 번 말해줘도 와닿지 않는다. '내가 엄격하다니? 오히려 자신을 불쌍히 여겨왔는걸' 무작정 수용해보려고 '그런가? 그런가 보다.'를 여러 번 되뇌어봤지만 이마저도 실패. 문득 '자기연민'이란 게 뭘까 나와 어울리는 단어인지 검색창에 넣어 본다.
자기연민이 강한 사람은 과도한 자기비판에 빠지지 않고 자신을 상냥하게 대하는 방법과 장기적으로 자신에게 가장 좋은 선택이 무엇인지 안다.
자기연민은 일종의 안정감으로, 과도하게 자기방어적이거나 절망감에 젖어들지 않고 자신의 나약함을 마주하고 삶의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