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고 싶은 오늘 #1

불 꺼진 도시

by 계단

시곗바늘이 자정을 넘겨 금요일이면서 동시에 요일인 밤, 남편은 조금 더 시원한 거실에서 저 곤히 잠들고 난 안방 한쪽 너에 바싹 붙여 놓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두들기고 있다. 간 소음 때문에 아파트 옆 라인의 이웃집에서 늘 몇 마리인지 가늠이 안 되는 개들이 짖어대고 주인 부부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나무라는 소리가 들린다. 끔 시끄럽긴 하지만 그래도 책상은 코너에 딱 붙여 놓는 게 안정감이 있다.


'곧 잘 시간이네.'


이미 1시를 넘긴 시각, 일분일초가 아까운 주말라 자꾸 욕심을 부리며 자판을 두들기는데 갑자기 책상 위 스탠드 노트북 화면이 탁! 하고 꺼졌다.


'뭐..지?'


빛의 여운이 눈에 아른거리다 사라지기까지 몇 초의 시간이 흘렀을까? 방 전등 스위치에 손이 가다가 이미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걸 보고 멈칫한다. 그 아래 콘센트에 꽂혀 있는 플러그 전선을 따라 하게 켜놓은 매트의 온도조절기로 눈을 돌렸다. 버튼은 눌려 있만 빨간 불이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정전?!'


쭈뼛쭈뼛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서 있다가 조심스럽게 일단 거실로 나왔다. 이거 나름 재난 상황인데 어쩔 수 없이 깨워야겠다.


"여보~"

"으음..왜?"

"정전된 것 같아."

"...두꺼비집?"

"아니, 아파트 정전."


블라인드를 올리고 베란다 밖을 살핀다. 오른쪽과 왼쪽 동의 몇몇 집에서도 핸드폰 손전등이 움직인다. 콘서트장에서 음악에 맞춰 흔들리던 불빛을 보니 기분이 묘하다. 촛불을 켠 듯한 집도 보인다. 빛의 모양이 둥그렇고 크다.


"신기해?"

"그러게, 나도 모르게 자꾸 구경하게 되네."


어린 시절에 정전을 겪어본 것 같기도 하고? 가물가물하다. 가로등 불빛이 없는 단지의 모습이 어색하다. 놀이터와 인도, 주변에 주차된 차들도 어둠 속으로 숨어 버렸다. 덕분에 경비실과 아파트 입구의 불빛은 더 환하다. 바깥 사정이 궁금한 주민이 현관문을 열고 나와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할 때마다 전등이 켜졌다 꺼졌다 한다. 흥미를 느낀 난 본격적으로 베란다 쪽 벽에 무릎을 모으고 기대앉아 평소에 보기 힘든 빛과 그림자를 관찰한다. 조금 있으니 손전등 불빛이 아파트 단지를 천천히 돌며 순찰을 돈다.


초봄이라 공기가 조금 차갑다는 걸 제외하곤 궂은 날씨도 아닌데. 불이 금방 들어오지 않는 걸 보니 시간이 꽤 걸릴 모양이었다.


"냉장고 괜찮겠지?"

"여름이 아니라서 괜찮을 거야.나저나 엘리베이터에 갇힌 사람은 없겠지?"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다 어느새 아침, 눈을 떠보니 거실이었다. 구경하다 스르르 잠들었나 보다. 냉장고 전원 소리와 아파트 안내 방송에 잠을 깼다. 곯아떨어져 기억이 나진 않지만 새벽에도 안내 방송이 나왔단다. 런데 원인이 뭔지는 딱히 언급이 없었다.


아무튼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남편은 동을 하러 떠났다. 난 차 한 잔에 토스트와 사과를 먹으며 여유로운 아침을 보냈다. 그런데 운동을 마치고 돌아온 그가 뭔가를 발견한 듯 말했다.


"근데 여보, 어젯밤에 퇴근할 때 탄내 맡았다고 하지 않았어?"

"그랬지. 횡단보도 건너오면서 담벼락 가까이 오니까 냄새가 났지. 엇, 혹시 그건가?"

"방금 올라오면서 봤는데 시설 담당하시는 것 같은 분이 설비 있는 데서 문 열고 나오시더라고. 점검하는 것 같던데 아무래도 관련이 있는 것 같아."

"어머, 그런가 봐. 아니, 좀 이상했거든. 안 그래도 요즘에 산불로 난린데 뭘 태울 리도 없고 딱히 연기나 불빛도 안 보이는데 냄새는 나고. 진짜 생각도 못했네."



그렇게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에 출근해 일을 하는데,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다른 아파트에 살고 있는 선배를 보니 주말에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혹시 주말에 아파트 정전 안됐어요? 저희 아파트 정전됐었는데."

"정전? 없었는데.. 아니, 그거 혹시 금요일 밤인가?"

"맞아요. 왜요?"

"아니, 내가 그날 야간 근무하고 있었잖아. 2시 넘어서 창 밖을 봤는데 가로등이 꺼져 있는 거야. 요즘에 누가 전기 아끼려고 저러나 이상했지."

"어머, 맞아요. 아파트 단지 안에 가로등도 나갔었어요. 회사도 그랬구나."


참고로 난 회사 바로 건너편에 있는 아파트에 살며 뚜벅이 생활을 하고 있다.


"분배기가 연결이 돼있나 보네. 우리 아파트는 안 그랬거든."

"그러게요. 신문에 날 정도는 아니었나 봐요."

"경비 아저씨가 괜찮냐고 올라오셨더라고. 1층은 정전이 됐다는 거야. 화장실도 문제였어. 펌프가 작동을 안 하니까 물이 안 나오는 거라."

"그것도 처음 알았네요. 아침엔 복구됐죠?"

"그렇지. 아침에 퇴근하면서 담당자한테 전화도 했지. 나중에 괜찮아졌다고 연락 왔더라고."

"원인은 저도 모르는데 그날 밤에 퇴근할 때 제가 탄내를 맡았거든요 횡단보도에서."

"경비 아저씨도 탄내 났다고 하셨어. 문제가 있긴 있었구만."

"그니까요, 아쉽네요. 다음부터는 좀 더 심각하게 살펴봐야겠어요."

"그래도 몇 시간 안에 잘 해결돼서 다행이야."


사실은 퇴근길 횡단보도에서 혼자 두리번두리번거리니 버스와 승용차에 탄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신호등 불빛이 바뀌기 전에 빨리 건너가야겠다 싶은 생각에 곧 관심이 떨어져서 무심코 지나치고 말았다. 혹시 모르니까 두 번은 그러지 말아야지.




늘의 글쓰기 BGM : 아이유(IU) - 겨울잠 [조각집]


… 내게 기대어 조각잠을 자던

그 모습 그대로 잠들었구나

무슨 꿈을 꾸니

깨어나면 이야기해 줄 거지

언제나의 아침처럼 음


* 커버 이미지 출처 : https://unsplash.com/photos/QNyq04-Tj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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