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한 존재로
큭큭큭, 푸히힉, 쿨쩍쿨쩍
이제는 일상이 되버린 1007번 버스 안, 어딘가 신경을 거스르는 소리가 들렸다.
평균적인 키, 한 손에는 스마트폰, 귀에는 이어폰, 하지만 어딘가 어색한 모습을 하고 있는 한 남자가 서있었다.
연신 그는 핸드폰에서 나오는 영상이 재밌는지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가끔 그가 쿨쩍 거리는 모습에 코감기가 걸렸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나의 귀에 꽂히는 큰 웃음 소리에 인상을 찌푸릴 수 밖에 없었다.
고개를 돌리고 잠을 청하는데 문득 생각이 들었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웃고 있지? 영상이 재밌나?
다시 보니 목에 걸려 있는 알록달록한 네임태그가 눈에 띄었다.
조심스레 유추하건데 다소 지능에 문제가 있는 사람인 것 같았다. 나는 충분히 그에게서 시선을 뗄 수 있었다.
하지만 나의 눈에는 그 네임태그가 아직 걸려 있었다. 이윽고 그의 네번 째 손가락에 껴진 반지도 발견했다.
아! 그가 가진 존재의 언어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가 왜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크게 웃는 지, 왜 사람들이 그를 멈추게 하지 않고 없는 사람처럼 행동하는 지.
그는 나를 모르지만 나는 그의 언어를 발견할 수 있었다. 행동과 소리, 네임태그, 반지를 통해 그는 자신의 존재를 말하고 있었던 거구나.
우리는 왜 나를 중심으로 그 사람이 전달하는 존재의 언어에 잣대를 대고 있었지.
우리는 왜 그가 평균적인 인간보다 어딘가 불편하다는 것만으로 장애를 가진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었지.
장애를 지닌 사람이라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인식은 그가 가진 다채로운 언어를 무시하기 충분했다.
부끄러웠다. 우리 역시 어딘가 불편한 것은 마찬가지 아닌가.
우리는 왜 특정한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게 상징을 부여할까?
임산부에게 임산부 목걸이를, 장애인에게는 네임태그를.
우리는 언제부터 그들의 언어를 무시하고 있었을까.
이제는 만나고 싶다. '평등한' 존재의 언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