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했다

디자인 비전공자의 UX/UI 디자인 입문기 - 1편

by 작가미상

철학하게 된 계기

사실 철학도 비전공자

제 첫 대학(?)은 공대였습니다. 신소재를 전공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문/이과를 정하라는 담임 선생님 말씀에 '아 나는 과학이 좋아 이과가야지'하며 이과를 선택했습니다. 그 때는 몰랐습니다. 수학도 과학만큼 좋아해야 한다는 것을요. 대학에 입학하니 공업수학과 물리 수업이 저를 괴롭혔습니다.


매우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학교를 바꿔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10개월 동안 토익과 전공 시험을 준비하다, 결국 1달 준비한 논술로 대학에 덜컥 붙었습니다.(!)


그렇게 진학한 과가 철학이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덜컥 내려버리곤 합니다. 저는 생각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철학을 선택했습니다.


그렇게 고생길이 열렸습니다..


탈탈 털림의 역사

새 학기, 떨리는 마음을 안고 윤리학 수업을 들었습니다. 첫 수업부터 원서로 수업을 진행한다고 합니다. 당황했지만 티는 내지 않고 다음 수업 때 원서와 번역본을 함께 들고 들어갔습니다. 제 기억으로 그 책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니코마코스 윤리학'이었습니다. 행복은 무엇인가 대한 논의가 담겨져 있는 고전입니다.


사실 저는 번역본을 들고 갔으면 안됐습니다.(교수님이 들고 오지 말라고 하셨거든요) 하지만 원서를 읽다가 Eudaemonism(행복주의)와 같이 발음하기도 어렵고 생소한 단어들이 대뇌를 지배하기 시작했습니다. 살고 싶은 본능이었는지 저는 자연스럽게 번역본을 찾는 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 수업, 교수님께서 한명 씩 문단 해석을 시키셨습니다. 제 차례가 다가왔고 저는 해석해야 할 원서의 문단과 번역본의 문단을 찾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체됨을 느끼신 교수님의 날카로운 감각에 그만 걸리고 말았습니다. 저는 그 때 철학의 비판적 사고를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사실에 근거한 비판을 뼈 때린다는 비유로 표현하는데, 저는 영혼까지 맞았습니다. 등줄기에 식은 땀이 났고, 제가 어떤 답변을 했는지도 기억이 안날 정도로 털렸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정신차리기 위해 충격 요법을 쓰고 싶으시다면, 철학과 교수님께 부탁드릴 것을 권해드립니다.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다.(?)


그렇게 2년 동안 다섯 분의 교수님 수업을 들으며 저는 영혼을 단련했습니다.(왜 눈물이 나는 것 같죠)


2년 동안 철학하며 터득한 사고방식

철학을 통해 많은 부분을 배웠지만 여러분께 두 가지 사고방식에 대한 내용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과학은 답을 내리지만, 철학은 답에서 시작한다.

프랑스 철학을 가르쳐 주시던 교수님의 비유가 아직도 기억납니다.

과학은 답을 내리는 학문이지만, 철학은 답에서 시작하는 학문이다.

물론 철학이 과학이 내린 답에서 시작한다고 해도 분야가 다르니 알아낼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만,

이 비유는 끈기있게 생각하는 태도에 대한 표현입니다. why에 대한 사고를 멈추지 않고 내가 알고자 하는 대상의 본질에 대해 고민을 끝까지 해보는 겁니다.


우리는 잠재의식 사고에 익숙합니다. 어떤 현상을 보면 자연스럽게 단서들을 모아 특정한 패턴을 발견합니다. '아 내가 보기엔 저 문제는 이것 때문인 것 같아'라는 식의 판단이 가능한 것도 잠재의식 덕분입니다.

이 사고의 장점은 특정 정보를 빨리 분류하고 습득할 수 있다라는 점입니다.


하지만 단점은 휴리스틱과 같이 그 원인이나 이유에 대해 헛다리를 짚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쉽게 말해 문제에 대한 효과없는 해결책을 내놓는다는 것이죠. 이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천천히 사고하기가 중요합니다.

답이 먼저 떠오르는건 막을 수 없지만, 그 답에서 생각을 시작하는 것이 철학에 담긴 사고방식 중에 하나입니다.


내가 모르는 것과 아는 것을 구분하자.

자신이 평소에 말하는 문장에서 무심코 내뱉는 단어나 개념에 대해 생각해보는 겁니다. 그 단어나 개념을 내가 잘 알고 사용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요.


예를 들어 토론 수업 때, 한 학생이 '자본주의'라는 단어를 자신의 주장에 넣어 말했습니다. 주장을 펼치고 있던 와중에 교수님께서 그 학생의 말을 멈추시곤, 자신이 생각하는 자본주의가 무엇인지 얘기해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학생은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당황하며 말을 어물거렸습니다. 교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그 개념에 대해 확실하게 모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명확한 주장을 하고 싶다면, 자신이 모르는 것과 아는 것을 구분해서 의견을 펼쳐야 합니다.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머리가 띵 울렸습니다. 이윽고 창피함이 들었습니다. 그 동안 내가 얼마나 모르는 개념을 아는 것처럼 말했던거지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말을 할 때마다 관련된 모든 지식을 배워서 말할 순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아는 선에서 주장을 하면 우선 자신감이 생깁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은 자신이 하고 있는 기본적인 업무에 대해 설명할 때 막힘없지 않나요? 같은 원리입니다.


또한 빠른 판단을 잠시 멈추고 천천히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는 사람에 대한 판단도 적용됩니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고 받아들이는 능력은 편견이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가장 의미있는 결과는 사고방식

사고방식을 훈련한 덕분에 사람의 행동이나 문제의 현상을 볼 때 판단을 최대한 유보하고, 사실에 근거해서 원인을 추론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오픈 마인드라는 평판도 얻었습니다.(흐뭇)


제가 내린 답이 가까운 미래에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 달려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사람이 기술을 숙달하는 속도보다 기술이 발전하는 속도가 훨씬 빨라, 과거 기술에 머무는 사람이 도태되는 것처럼 말이죠.


정리하며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철학이 어렵게 느껴진다, 미지의 영역이다 라는 생각은 지극히 자연스럽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자신이 모르는 영역을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축구하던 메시를 발레단에 갖다 놓고 발레복을 입힌다면, 아무리 메시라고 해도 등줄기에 땀이 흐를겁니다.

철학도 마찬가지기 때문에, 엑기스만 뽑아서 내 삶의 풍미를 돋굴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OO하다 어쩌다 디자인 시리즈는 글쓰기 모임 '그글러 1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독립출판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쓰는 글입니다. 저 외에 다수의 그글러 분들의 글을 모아 한 권의 책을 발간할 예정입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면 책 출판 시 제일 먼저 소식을 전달해드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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