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라는 철학은 안하고 밖으로 돌아다녔던 나
철학을 배우다보면 나랑은 상관없는 것 같은 시대의 사상에 어느새 몰입하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몸은 직사각형 강의실에 있는데, 머리만 고대 그리스 아고라 광장에서 소크라테스의 설파를 듣고 있는 느낌입니다.
그 기간이 길어질수록 점점 현실보다 사각 링 위에서 철학자의 사상과 싸우게 됩니다. 싸움에 심취한 사람은 본격적으로 싸워보겠다고 대학원을 갑니다. 저는 반대로 현실이라는 땅을 제대로 딛는 경험을 합니다.
입학하고 10여일이 지났을까. 2015년 3월 20일, 해상사고로 인해 생계수단을 잃은 남성이 생을 마감하려 했다는 뉴스를 접했습니다. 그 기사를 제 방에서 보고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사고 현장에서 얻은 트라우마가 주요 원인이 아니였나 싶었습니다.
그 때 당시 크라우드펀딩 플랫폼과 인연이 있었기에, 그 분을 돕기 위한 방법은 개인 모금을 개설하는 수 밖에 없다 판단했습니다.
그 분에 대한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시점이었기 때문에, 임원분께 빠른 개설 요청을 부탁드려 1시간 안에 프로젝트를 열었습니다. 열고보니 제가 할 수 있었던 건 기사에 댓글을 다는 일 밖에 없었습니다.
더 이상 댓글을 달 기사가 없자 대학생 커뮤니티 카페에 게시글을 남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모금을 스펙 쌓으려고 하는거냐 라는 댓글을 보고 아차 싶어 그 뒤로 게시글 업로드는 접었습니다.
다행히 학생주보를 담당하는 학생 기자분께 연락을 받았고, 그 인터뷰를 시작으로 한국일보 기사, KBS 9시 뉴스에 개인 모금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목표했던 100만원을 훌쩍 넘어 877만원을 모았고, 수수료를 제한 금액을 전달했습니다.
고려대 병원에서 뵙기로 한 날, 모금액을 송금하는 것은 도리가 아닌 것 같아 현금으로 드리고자 ATM기기에서 200만원씩 나눠서 뽑았던 기억이 납니다. 일일 한도 출금액이 있는 줄 몰라 나머지 금액은 결국 송금을 했던 민망한 기억이 떠오르네요.
지금 생각하니 모금액을 전달할 때 조금 더 같이 시간을 보내다 올껄 이라는 아쉬움이 듭니다. 그날 쪽지 시험 본다고 30분도 못 앉아있고 떠났거든요. 그렇게 학교에 돌아와서 쪽지 시험이라도 잘 봤으면 다행이게요. 여러모로 아쉬운 날이었습니다.
정신없이 한 달 동안 모금하랴 중간고사 준비하랴 바쁘게 움직였지만, 결국 제 머리에 남은 건 문제의식이었습니다. 사회엔 셀 수 없는 문제가 많은데 도대체 원인이 뭘까 라는 의문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내가 배우는 철학이 사는데 무슨 도움이 되는가 싶기도 하고, 시험을 치르다 보니 철학 시험은 교수님 입맛에 맞는 글을 쓰는 것이구나를 깨달았습니다. 애초부터 사고하는 학문을 어떤 기준으로 평가할까 라는 회의감이 들더군요.
그 뒤로는 교수님 눈치 안보고 제 관점에서 깨달은 내용을 물 뿌리듯 시험지에 적고 나왔습니다. 덕분에 학점은 잘 못받았지만 사는데는 아무 지장이 없더라구요.
그러다 그 해 9월, 저는 우연히 Design Thinking을 배우게 됩니다. 하라는 철학은 안하고 뭐에 홀린 듯 대학생 때부터 프리랜서로 시작해 2년 넘게 일을 했습니다. 오히려 졸업을 하고 나니 철학을 통해 얻은 것이 보이더군요.
다음 편에서는 일을 하며 겪었던 에피소드와 배운 점을 교육 콘텐츠 / 현장 운영 / 퍼실리테이션으로 나눠 공유하겠습니다.
OO하다 어쩌다 디자인 시리즈는 글쓰기 모임 '그글러 1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독립출판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쓰는 글입니다. 저 외에 다수의 그글러 분의 글을 모아 한 권의 책을 발간할 예정입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면 책 출판 시 제일 먼저 소식을 전달해드리겠습니다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