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간 교육에 몸을 담궜던 이야기
24개월, 순간의 사색 - 교육 기획 편
글을 쓰기 시작하며 저를 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문득 나는 왜 교육 쪽에 2년이나 있었는지, 무엇을 얻었는지 스스로 묻는 순간이 자주 왔습니다. 그 순간의 사색을 통해 얻은 통찰을 정리해 3가지 카테고리로 정리했습니다.
많은 내용을 전달하고 싶었지만, 지엽적인 정보가 되지 않을까 라는 고민 끝에 포괄적인 카테고리로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방향으로 글을 썼습니다 :)
이번 글은 2년 동안 디자인씽킹 교육 워크숍/프로젝트를 하면서 깨달은, 교육 기획 때 지켰으면 하는 3가지에 대한 글입니다.
클라이언트. 그 단어는 아무 죄가 없지만 듣는 순간 마음 속 뭔가 울화가 올라오는 느낌이 듭니다. 왠지 말을 듣기 싫지만 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돈을 들고 있는 사람에게 나의 노동력을 그 댓가로 주는 것 뿐인데, 나까지 휘어잡아 흔들곤 합니다.
나를 흔든다고 해서 나의 가치관이 흔들리는 것이 아닌 것처럼, 나의 또는 우리 팀만의 교육적 핵심 콘텐츠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지켜야 합니다.
저의 경우 디자인씽킹 워크숍/프로젝트를 했기 때문에 그 디자인씽킹의 첫 번째 단계 '공감'이 핵심 콘텐츠였습니다. 동료들 역시 공감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떤 클라이언트와 계약을 하던 그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상대방의 관점에서 경험을 이끌어 내는 법, 그 경험에서 그 사람의 욕구와 문제점을 파악하는 법, 질문과 대답의 중요성, 인터뷰와 관찰을 깊이 하는 법.
그 과정에 대한 경험이 없는 사람은 종종 비효율적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건 신입 사원 200명을 교육하는 것 뿐이라고. 그럴 때 제 동료는 그 규모의 인원을 일괄적으로 교육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우리가 하는 교육은 공감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사고방식에 대한 교육이기 때문에, 그 성향에 맞는 소규모의 사람들을 교육해야 한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물론 모든 계약에서 그 핵심을 지키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만약 우리 팀이 항상 물러섰다면, 시간이 지날 수록 전체 교육의 질과 만족도는 안좋아졌을 겁니다. 중요한 것은 참가자에게 의미 있는 경험이기 때문에, 끝까지 전달해야 하는 핵심은 지켜야 합니다.
2년 동안 초등학생부터 50-60대까지 만났지만, 대부분의 경우 디자인씽킹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즉, 그들 입장에서는 새로운 개념이었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장소에 갔을 때 두려움과 혼란스러움을 겪는 것처럼, 교육을 듣는 입장에서 새로운 개념은 모르는 장소와 같습니다.
갈피를 못 잡는 와중에 아는 사람을 우연히 만나면 반가움을 느끼는 것처럼, 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 입장에서 어디서 들어본 것처럼 느끼게, 그들의 평소 언어로 그 개념을 쉽게 설명해야 합니다.
프로그램의 주제도 주변 환경에서 비교적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문제로 잡아야 합니다.
초등학생에게 UN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주제로 선정해 교육을 한다면, 듣는 이는 아무도 없겠죠.
사실 1년 짜리 청소년 캠프 프로젝트 초반에 그 일이 벌어지긴 했었습니다. 의욕이 과다했는지, 실력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초반 2-3회 캠프를 양질의 교육, 불평등 완화와 같은 주제로 진행했습니다.
물론 최대한 쉽게 풀어서 교육 커리큘럼을 짰지만, UN이 전 세계 국가들에게 2030년까지 해결하자고 제안한 문제를 경기도 양평 1박 2일 캠프로 풀기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 뒤로 회를 거듭하면서 난이도를 조절했고, 중 후반부터는 학생들이 깊게 몰입하고 만족도도 높게 나왔던 캠프를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답은 아이의 감정/태도/환경에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놀이 활동이 많았을 때 웃음이 많았고, 진지한 교육보다는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교육을 좋아했습니다. 또한 멀리 있는 장소보다 자신이 다니는 학교의 장소를 친근하게 느꼈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문제라고 생각하는 장소를 사진을 찍게 해서 미리 받았습니다. 그 전과는 달리 나이를 기준으로 팀을 나누지 않고, 그 장소 사진을 중심으로 팀을 짰습니다. 그랬더니 자신의 학교에 대해 깊이있는 논의와 의견을 주고 받기 시작했습니다.
놀이 활동도 아예 레크레이션처럼 만들어 강당에서 진행했습니다. 풍선으로 자동차 만들기, 배 띄우기, 장기자랑 등 아이들이 좋아하는 놀이로 채웠더니, 다음에 또 오고 싶다는 아이들이 늘어났습니다.
아이들 눈높이에서 생각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그 캠프는 아이들에겐 개연성있는 교육이었기 때문에 만족스러운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의 개연성은 콘텐츠를 끊임없이 테스트하고 개선하는 작업을 함께 해야 얻을 수 있습니다.
매일 한 가지 음식만 삼시세끼 먹으면 질리듯 교육 프로그램도 마찬가지 입니다. 클라이언트나 교육 대상자는 매번 달랐지만 우리 팀이 전달해야 하는 내용은 같았습니다.
많은 교사들이 매너리즘을 겪는 것처럼, 저도 매너리즘을 겪었습니다.
이 때 무엇을 하기 시작했냐면, 새로운 아이디어를 커리큘럼에 넣었습니다. 심지어 그 아이디어를 충분히 검증하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시도가 교육의 질을 높이는 행동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참가자의 입장에서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낯선 교육'이었습니다. 제공자인 우리에게는 아무리 새로워도,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모든 것이 다 처음이었기 때문에, 차이점을 느끼기 어렵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때 그렇게 하면 안된다는 것을 한켠으로 느끼고 있었지만, 마음 한켠에 묻어두고 일정을 맞추느랴 의사결정을 신중히 하지 못했습니다.
세계적인 그래픽 디자이너 존 마에다(John Maeda)가 자신의 저서 '단순함의 법칙'에서 소개한 일화가 떠오릅니다. 그는 스위스 타이포그래피 디자인의 거장 볼프강 바인가르트의 강의를 듣기 위해 미국 메인 주(State of Maine) 여름학교에 참석했습니다. 그는 동일한 입문 강의를 매년 반복하는 바인가르트의 능력에 감탄하며, 내심 '그는 지겹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똑같은 이야기를 계속해서 반복하는 일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심지어 그 거장을 조금 얕보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3번 째 바인가르트를 만났을 때, 여전히 그는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만 해를 거듭할 수록 내용을 조금씩 더 간단히 정리해서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바인가르트는 기초 중의 기초에 집중하면서 그가 전달하고자 하는, 타이포그래피의 압축된 본질에 자신의 모든 지식을 축약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같은 일을 반복하는 일은 재미없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본을 반복하고 핵심을 가다듬는 것만큼 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현장 운영에 대한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OO하다 어쩌다 디자인 시리즈는 글쓰기 모임 '그글러 1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독립출판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쓰는 글입니다. 저 외에 다수의 그글러 분의 글을 모아 한 권의 책을 발간할 예정입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면 책 출판 시 제일 먼저 소식을 전달해드리겠습니다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