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사고에 대한 교육을 하다 보니 디자인을 시각 디자인 분야로 이해하는 분이 많았습니다.
시각 디자인 인식에서 벗어나 문제 해결을 위한 포괄적 의미의 디자인임을 강조하기 위해 오버뷰를 할 때마다 장표에 빠지지 않고 넣었던 인물이 있었습니다.
허버트 사이먼, 심리학자이자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경제학자, 인지과학자입니다.
그는 '현재 상태를 보다 나은 상태로 바꾸는 행위를 하는 모든 사람은 디자인을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교육을 듣는 사람은 매번 바뀌므로 그들에게는 신선한 개념 정의이었겠지만, 매 교육마다 보는 저에겐 시간이 지날수록 그 의미가 달라졌습니다.
교육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커리큘럼과 경험을 설계하는 디자이너야 라는 믿음이 생겼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디자이너가 맞나 라는 의구심이 스멀스멀 올라오곤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 그 의구심은 앞서 말했던 첫 번째 디자인 에이전시 면접에서 역량 부족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습니다. 내 생각을 손에 잡히는 결과물까지 표현하지 못했던 한계가 발목을 잡았습니다.
마음속 의구심을 해소하지 않은 채 반쪽짜리 믿음으로 덮고 있었던 게 첫 번째 한계였습니다.
두 번째 한계는 교육 분야에 있는 분이라면 공감할 만한 주제이고, 제가 UI/UX 디자이너로 이직을 결심한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해본 분은 아시겠지만, 교육이 끝나면 보통 만족도 조사를 합니다.
교육 내용은 어땠는지, 강사의 전문성이나 전달력은 어떠했는지, 행사마다 그 항목은 조금씩 달라집니다.
만족도 조사를 할 때, 성의를 다해 작성하는 사람이 있지만 많은 경우 교육을 듣고 피곤한 마음에 빠르게 작성하고 제출해버리곤 합니다.
만족도 조사를 하는 상황을 좀 더 들여다보면 많은 경우 교육 진행 관계자들이 눈 앞에 있을 때 설문지를 작성합니다. 한국인 특성상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매우 비관적인 참가자를 제외하면, 10점 만점에 1-3점을 주는 경우는 드물고 대부분 6-7점 이상을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서 1차로 데이터 신뢰도가 감소합니다.)
가장 보편적인 조사 방법인 만큼, 만족도 조사는 한계가 뚜렷합니다.
그 한계가 저에게는 동기 저하로 이어졌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아무리 좋은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도, 그 결과를 수치로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내가 일한 결과가 고객이나 시장에 어떤 임팩트를 주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한번 교육 프로그램도 제품이라고 가정하고, 제품 생산 과정에 비유해보겠습니다.
제품은 시장/고객 조사, 기획과 양산을 거쳐 시장에 출시됩니다. 출시 후 시장의 반응과 평가로 비즈니스 성과 지표의 등락이 결정되죠.
이에 반해 교육 프로그램은 어떠한가요. 출시 단계가 교육 프로그램 진행이라면, 시장의 반응과 평가는 만족도 조사입니다. 비즈니스 성과 지표는 계약 건수와 그에 따른 매출이겠죠.
하지만 물리적인 제품과 다르게 교육 프로그램은 만족도와 결과의 인과 관계를 파악하기가 까다롭습니다.
그 이유는 계약을 체결하는 사람과 교육을 듣는 사람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보통 만족도 조사는 의사 결정권자에게 보고 용으로 활용되기 때문에, 질문이 형식적입니다.
그 사실을 교육 담당자도 알고, 고객도 알고 있습니다. 마땅한 대안이 없어서 과거에 만들어 놓은 설문지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육 경험을 다각도로 분석해서 짧은 시간에 수치로 뽑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여기서 2차로 데이터 신뢰도가 감소합니다.)
이 때문에 교육 프로그램 평가만으로 추가 계약을 결정한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의사 결정권자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서 시험적으로 계약을 하는 상황도 종종 벌어집니다.
(ex. 디자인씽킹을 스탠포드나 IDEO에서 혁신적인 문제 해결 방법으로 활용한다더라, 우리 회사 신입 사원들한테도 교육시켜볼까?)
다소 이해 안 되는 의사 결정처럼 보이지만, 제가 참여했던 다수의 교육 워크숍에는 위에서 시켜서 강제로 참석한 직원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제품으로 비유하면 고객은 사고 싶지 않은데 강매당한 모습이랄까요.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집니다.
정리하면, 만족도 조사를 진행하는 환경과 고객의 체력, 교육 경험을 수치화하는 도구의 한계, 탑다운 방식의 의사 결정 때문에 교육 프로그램 평가가 왜곡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게다가 일을 하다 보면 교육 이후의 고객사 상황에 신경 쓸 겨를이 사라집니다. 고객사는 한 군데가 아니니까요. 임팩트를 측정할 생각도 못하고 다음 교육을 준비하는 상황에 처합니다. 그러다 보니 동기를 색다른 커리큘럼 기획에서 얻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기존 커리큘럼도 고객사가 달라지면 듣는 입장에서 색다르게 느껴진다라는 점을 깨달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몰랐습니다. 교육하는 입장에서 수많은 반복으로 지루해졌기 때문에, 신선한 자극이 필요했습니다.
그 결과 팀의 의사결정은 새로운 콘셉트의 교육 기획과 진행 중심으로 흘러갔고, 2년 뒤에 손에 잡히는 결과라고는 만족도나 수료율, 수치화할 수 없는 평판 정도가 남았습니다.
제품으로 치면 사용한 사람은 있지만, 정성적 정보밖에 없고 제품의 시장성을 수치로 파악하지 못하는 상황이랄까요. (다들 좋다고는 하는데 말로만 좋다고 하는 느낌입니다)
과연 이 일을 계속해야 하는가 라는 회의감이 들더군요.
향후 커리어를 결정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디자이너가 맞는가', '오프라인 교육의 한계를 극복하고 싶은가'라는 고민에 답을 내려야 했습니다.
제가 내린 답은 UI/UX 디자이너가 되기로, 디지털 프로덕트(앱/웹) 경험을 디자인하자 였습니다.
답을 내리기 전까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했습니다.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맞냐고. 앞에 가시밭길이 있어도 결정을 후회하지 않겠냐고.
물론 맨 땅의 헤딩을 하지 않기 위해 과거의 경험(디자인 사고, 기획, 퍼실리테이션)을 살리면서, 도전해볼 수 있는 디자인 직무를 골랐습니다. 또한 제품에 대한 고객의 반응을 수치로 확인 가능한 산업을 선택했습니다.
힘들게 내린 결정을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행동으로 옮겨야겠다 라고 결심했습니다.
그렇게 한계를 넘기로 했습니다.
OO 하다 어쩌다 디자인 시리즈는 글쓰기 모임 '그글러 1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독립출판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쓰는 글입니다. 저 외에 다수의 그글러 분의 글을 모아 한 권의 책을 발간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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