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없는 일과 너무 잘하고 싶은 일

by 이용수

강이슬의 <미래를 구하러 온 초보인간>을 방금 다 읽었다. 운전면허 따고 초보가 되기까지, 비건 지향(순수 비건은 아니라서 저자가 붙인 말)이 되기까지 서툴렀던 몸과 마음을 펼쳐놓았다. 말하자면 우리는 태어날 아이를 위해 필수적인 초보가 되기도 하고 원하는 일을 하려고 선택적인 초보가 되기도 한다. 일회뿐인 인생의 주인공은 어차피 초보니까.


강 작가는 비건 지향이 되면서 직업적 상황과 비건의 신념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다. 어쩌다 비건에 대한 강연을 하게 되고는 자격이 있나 심란해하다가 아는 체 대신에 본인의 솔직한 이야기를 풀어 좋은 호응을 얻는다. 그러면서 이렇게 적었다. '종종 할 수 없는 일과 너무 잘하고 싶은 일을 구별하지 못한다.' 선택적 초보는 용기 있는 자다. 삶의 필연적인 권태를 이기는 자다. 내가 그러고 싶어 이 문장을 마음에 품는다. 나라고 뭐 이제 겨우 인생 반 살았으니까.


작가가 빌런을 물리치고 당당한 초보로 탄생한 데에는 그녀의 아빠와 애인의 덕도 크다. 아빠는 시종일관 딸을 지지한다. 애인은 비건 식당을 찾는 수고를 새로운 낭만으로 여기는 사람이다. 내 편이 있는 한 두렵지 않다. 다정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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