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단 한 번의 삶>
김영하 책은 처음 샀다. (팬분들은 놀라시겠지만)
저자가 책을 구상했다기보다 인장 같은 삶의 장면이 저절로 책이 되었다는 느낌을 준다.
그중에서 동질감이 든 단어는 유능과 교양.
어릴 때 그가 갈구한 두 가지다.
나 또한 그랬다.
유능은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 지력으로 유능할 수도 사람들을 잘 엮어서 유능할 수도 실패로 다져져서 유능할 수도 있다.
교양은 지식이라기보다 몸에 베인 기운 같은 것이다. 소망하지만 쉽사리 얻어지지 않는다.
시골에서 서울로 유학 와 하숙할 때 건너방에 의대생이 있었다. 어느 날 그의 방에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왔다. 무심코 듣다가 푹 젖었다. 곡명을 물으니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라고 한다. 대중가요만 듣던 내가 클래식에 발을 디딘 순간이다(여전히 긴 호흡에는 약해서 애호가는 아니다). 새벽이 되어야 학교에서 돌아오던 그 의대생은 돌연(일리 없지만) 국문학과로 전과를 했다. 바흐가 위대해서인지 글렌 굴드가 간지 나서인지 삶이 변주여서인지 이 짧은 이야기가 '교양'에 대한 나의 첫 정의다.
대학에서 어울려 다닌 친구들 중 한 녀석은 부잣집 아들이었다. 그 집에 놀러 가 자던 날 밤에 머리맡에 놓여있던 전축(쓰고보니 참 예스럽다)의 작고 새빨간 불빛은 내가 못 가진 어떤 전부처럼 다가왔다. 그것이 돈의 기운인지 교양의 기운인지는 모르겠다. 넘을 수 없는 벽 그 너머를 왜 나는 궁금해하는지가 궁금했다.
4학년 때 모 그룹의 산학장학생이 되어 공짜로 유럽 배낭여행을 갔다(좋은 시절이었다). 조를 구성해 움직였다. 한 조가 된 S대 녀석은 처음엔 유쾌해서 좋았는데 함께 다니다 보니 재수가 없었다. 그 녀석도 내가 재수가 없었다. 교양 있고 싶었던 나는 가는 도시마다 미술관을 가자 했다. 녀석은 전시된 작품들은 가짜이고 진본은 따로 보관되어 있으니 미술관 가서 보는 건 의미 없다고 했다. 내가 나름 논리를 세워 반박을 하자 녀석이 소더비를 아느냐고 물었다. 모른다고 하니 그것도 모르면서 미술을 아는 체하지 말란다. 그 길로 각자 따로 여행했다. 교양 없는 녀석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