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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요

by 이용수

비 오는 토요일 아침. 아내는 7시부터 한 시간 동안 필라테스를 다녀왔다. 차를 몰아 고3 딸을 8시 반까지 학원에 내려놓고 곧장 아내와 류마티스내과에 갔다. 아내에게 '자고 나면 등이 굳어있는' 증세가 있어서다. 검사를 받고 다음 예약 날을 잡고 동네 커피집으로 갔다. 아침밥 차리기 귀찮은 겸에 브런치를 시켰다. 샤워도우, 니코타치즈, 아보카도, 스크램블의 심플한 조합이었다. 커피와 먹기에 좋았다. 이왕 나온 김에 장을 보자고 합의하고 코스트코 회원권이 있는 막내 처제를 불러냈다. 목적지에 거의 다다랐을 때 익숙하지만 오랜만인 노래가 라디오에서 나왔다. '사랑해요'.


김신영은 역시 이 노래는 성악 창법으로 불러야 맛이 산다며 고음에서 목을 떨며 따라 불렀다. 김신영의 재능이야 인정하는 바이지만(그녀는 천재다) 바로 옛날로 직행해 버린 나는 원곡 그대로 듣고 싶다고 투덜거렸다. 사실 김신영의 정오의 희망곡을 오래 들어온 터라 노래를 다시 틀 것을 알고 있었지만. 곧 김신영의 방해 없이 고은희가 노래를 시작했다.


떨어지는 낙엽들 그 사이로 거리를 걸어봐요 (왜 낙엽들 사이를 걷냐고)

지금은 느낄 수 있어요 얼마나 아름다운지

돌아보면 아쉬웠던 순간이 너무도 그리워요 (아내에겐 비밀)

이제야 느낄 수 있어요 얼마나 행복했는지

사랑해요 떠나버린 그대를 (이렇게 높게 곧게 쌓아야 돼. 다른 창법은 안돼.)

사랑해요 회색빛 하늘 아래

사랑해요 그대 모습 그리며

사랑해요 아직도 내 마음은 (왜 그랬어)


'사랑해요'에는 미덕이 많다. 고전적인 솔직함, 애매함이 없는 감정, 그에 맞게 스트레이트한 발성, 100년 후에도 유효할 보편성, 첫 네 음절(떨~어~지~는~)에서 완성되는 후킹, 절정(사랑해애요)에서의 절제. 누군가는 '전지적 아재 관점이니까 그렇지' 할지 모르겠다. 그 말도 맞다.


일상의 평안을 쌓고 특별한 순간을 보태며 우리는 살아간다. 그 과정이 솔직하고 보편적이고 누군가의 마음에 닿아있으면 더할 나위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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