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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수 Jul 14. 2022

25년 만의 두 달 휴식

7월부터 네 번째 회사로 출근하고 있다. 첫 이직 때 주어진 일주일 동안은 큰 녀석에게 이유식을 먹였다. 장모님에게 짧은 휴가를 드렸다. 두 번째 이직 때는 텀이 없었던 듯하다. 세 번째 이직하며 두 달이 주어졌다. 학교 졸업 이후 가장 길었던 휴식이다. 주간보고 스트레스가 없다니. 피드백 걱정 없는 두 달 치 보고를 올린다.



#아마추어라서_행복해요


휴가 시작하고 바로 블로그를 정비했다. 기록하자는 모토다(저의 다른 글 '소명을 발견하라' 참조). 신문, 책, 잡지, 유튜브 등에 등장하는 많은 현자들의 가르침을 종합하면 이렇다. : 소비(읽기)만 하면 내 생각이 뭔지 알 수 없다. 생산(쓰기)하면 내 생각이 정리되고 휘발되지 않는다. 책을 덮고도 머릿속에 남은 것만 써라. 책을 펴고 빠짐없이 요약하려 하면 힘만 들고 어차피 뚜렷이 각인되지 못한 것은 잊게 된다. 내 언어로 내 시각이 들어가면서 유니크해진다. 활자화되니 공유가 가능하다.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

블로그에 몇 편 올리고 이를 소스로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했다. 붙었다. 꿍쳐놓은 시들을 꺼냈다. 고르고 골라서 하룻만에 브런치 북을 만들었다. 소싯적에 직접 편집, 제작해서 수줍게 친구들에게 나눠줬던 시집이 생각난다. 그새 30년이 흘렀다. 정식 아마추어 작가의 탄생을 축하한다.



#다행이다


장인께서 꼬박 1년을 기다려서 올해 1월에 심장이식 수술을 하셨다. 누군가의 심장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을 지배하려는 위력과 겨루는 싸움이었다. 3개월이 지나서야 퇴원하셨다. 그때 내 휴가가 시작되어 첫 외래 진료부터 병원에 모시고 갈 수 있었다. 누군가는 할 일. 내가 할 수 있어 다행이다. 부족했던 효도를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두 달간 다섯 번의 외래를 다녀왔고 눈에 띄게 건강을 회복하셨다. 간호하며 지병이 악화되었던 장모께서도 기운을 차리셨다.



#면역력이_생겼어요


피부 여기저기에 만성 염증을 달고 살았다. 자세히 말하기는 곤란하다. 낫는 방법은 잘 안다. 물기 닦고 연고 바르고 손으로 건드리지 않으면 된다. 하지만 지 않는다. 다이어트 책, 자기 계발 책, 영어 책이 제목만 바뀌며 베스트셀러인 이치와 같다. 그런데 말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양호한 상태가 되었다. 곰곰이 생각해봤다. 잠을 많이 잤나? 아내를 회사까지 모셔다 드린다고  여전히 아침에는 일찍 일어났다.(자발적입니다. 믿으세요.) 일을 안 했나? 두 달을 알뜰하게 썼다. 알았다. 누가 시킨 일, 닦달한 일이 없었다. 무엇을 희생해야만 얻을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확실한 처방전이다.



#아이에게_넛지


큰 애가 고2다. 모의고사 성적이 고만고만하다. 애 엄마는 걱정이 많다. 지인이 대입 컨설턴트다. 아이를 데리고 지인의 사무실이 있는 송도에 갔다. 아이는 '굳이...' 하면서도 따라왔다. 컨설팅 받는 이유가 있었다. 아이가 희망하는 학과가 있는 대학교들을 쭉 줄 세워서 현재 성적으로 가능한 위치를 찍어준다. 부모가 하려면 고단하기 그지없겠다. 아들은 적나라하게 드러난 현실을 보고 놀란 표정이다. 공부를 어느 정도로 해야 한다고 내가 필요 공부량을 얘기할 때는 얼마나 와닿았는지 모르겠으나 구체적 데이터 앞에서 스스로 계산이 되는 듯하다. 부모가 해줄 수 있는 선은 어디까지일까. 떠먹여 줄 수는 없다. 평생을 떠먹여 줄 수가 없지 않은가. 아이를 위해 세가지만 명심하려 한다.

첫째, 내가 공부한다. 안방에 들어가 있던 긴 테이블과 큰 책장 두 개를 작년 말에 거실로 옮겼었다. 큰 고무나무, 마샬 스피커, 두 개의 빈백까지 어울리니 제법 카페 같다. 일부러라도 거실에서 책을 읽는다. 아들이 지나가면서 한마디 한다. '아빠, 그렇게까지 공부를 ...'  

둘째, 간섭하지 않고 지원한다. 좋은 의미의 넛지다. 아이와 한 공간에 있으면서 다그치는 것이 무슨 소용일까 싶다. 대입 컨설팅을 돈지랄로 보면 할 말은 없다. 누구나 계기가 필요하다. 절실함을 느끼는 계기. 그 값어치를 생각하면 비싸지 않다. 학습플래너를 사서 쓱 넣어줬다.

셋째, 의지를 시험하지 않고 환경을 조성한다. 전자기기가 문제다. 어른도 절제가 안된다. 아이 폰은 이미 2G 폰으로 바꿨지만, 공기계 폰, 노트북이 빈틈을 메운다. 필요할 때가 있으니 없앤다고 될 일도 아니다. 아이가 유독 새벽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난 날 한바탕 했다. 아이는 공부하다가 잤다고 눈물까지 흘렸다. 아빠의 걱정을 잘 설명하고서야 풀렸다. 며칠 뒤 아이가 "유튜브도 지워서 할 것도 없어요" 쓱 말을 던지고 방으로 들어갔다.



#고마워요_다들


마지막 출근 날, 회사 노트북을 반납하기 직전에 짧은 메일을 보냈다. 만 9년을 다닌 터라, 만나서 인사하려니 건물 층층마다 순회공연하는 수준이 되겠더라. 유명가수 은퇴도 아닌데. 인연을 마무리할 사이든 인연을 이어갈 사이든 편애 없이, 새로운 모습으로 만나자는 기약만 남겼다. 전화, 문자메시지가 여럿 왔다. 예의이거나 뜻밖의 격려이거나 애써 감춘 감정이거나. 그들의 손가락이 자음, 모음, 전화번호 숫자를 누르기 시작한 그 순간을 생각해본다. 회사라는 가상공간을 벗어나면 우리는 서로 애틋할 뿐이다.   

가장 오래 맡았던 부서의 직원들과 따로 만났다. (이젠 상하관계도 아니니 인생 후배다.) 이미 이직한 후배, 부서 이동한 후배, 부서에 머물고 있는 후배 다들 모였다. 두 명 외는 내가 면접 봐서 채용했다. 스타트업 꾸리는 기분이었을까. 동지의식이 강했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금 열쇠를 받았다. 내가 승진할 때도 그러더니 왜 자꾸 챙기는 거냐. 정기 모임을 주최할 총무를 정했다. 집에 와서야, 들고온 작은 쇼핑백 속에서 종이카드를 발견했다. 깨알 같은 손글씨들이다. 자꾸 이러면 평생 밥 살 거다.    



#부모님_죄송합니다


코로나 이후로 부모님을 못 뵈었다. 시골 노인들이 서울 사람 오면 질색한다며 말리셨었다. 전화로 먼저, 아들이 직업을 바꿉니다 말씀드리니 가만히 들어주시고 잘했다 하신다. 아이들이 시험 기간이라 방학 때 가족이 움직이기로 하고 이번은 혼자 내려갔다. 가서야 아버지, 어머니께서 이미 코로나를 앓으셨다는 걸 알았다. 아버지는 무난히 넘기셨다고 하고 어머니는 심하게 앓고 수척해지셨다. 엄마 걸음 폭을 따라가기 버거운 아이였던 나는 지금도 보살핌을 받고 있다.

여동생이 합류했다. 아들, 딸이 왔다고 오랜만에 나들이를 나섰다. 바닷장어를 든든하게 먹고 근처 카페로 갔다. 마산 돝섬이 가깝게 내려다보이는 높은 지대였다. 야외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엄마, 아빠, 아들, 딸이 한 장면에 들어오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다. 사람 사는 게 밥 한 끼인데.

(에필로그 : 어머니는 몸이 회복되셨다고 한다. 전화로 들어서는 반만 믿기로 한다.)



#군살은_빼고_세수도_열심히


대형 종량제 봉투를 세 번 채워 버렸다. 베란다 창고에는 쓸만한 물건들 여유 있게 진열되었다. 책, 잡지는 몇 박스를 채워 버렸다. 분야별로 자극을 주는 책들만 360도로 거실 벽을 둘러앉았다. 아이들 돌 때 만든 액자들은 사진으로 찍고 버렸다. 누워 쌓여있던 아이들 돌 사진은 스마트폰 갤러리의 가장 앞자리를 차지했다.

부엌의 가스레인지 주변만 닦으려다가 발동이 걸려 부엌 구석구석과 갖은 집기들을 박박 닦았다. 잘 들여다보아야 청소한 티가 난다. 장모님과 아내의 고된 노동은 그런 것이었다.



#시간을_새로_삽니다


봄부터 박사과정을 다니기 시작했다. 쉬고 나서 갈 곳이 정해져 있는데도 이렇게 길게 쉰 적이 없어서 시간을 어떻게 쓸지 잘 쓰고 있는지 고민하게 된다. 다행히 재학 중이라 격주 주말은 수업을 듣고 주중에 과제를 하니, 시간이 채워진 카테고리 하나는 확보되었다. 시간을 헛되게 쓰지 않고 있다는 안도감을 준다. 목표가 뚜렷해서 더 그렇다. 압박감은 내일 찾아오기로 하고.

이 학교 박사과정의 타겟층이기도 하여, 동기분들은 평균 나이 50대 초반, 직장생활 20년 이상이다. 나이 스펙트럼은 30대에서 70대까지 펼쳐져있다. 삶의 궤적과 사연이 다양하다. 이제 치맥 한번 했지만 호기심에 물꼬가 텄다. 사람들은 저마다 책 한 권이니까.  

나의 시간 개념은 전형적인 산업사회 노동자의 것이었다. 주중은 9.9할이 회사이고 주말은 8할이 가족이었다. 자타공인 하드 워커(Hard worker)로 살았지만 주말은 희생하지 않았다. 덕분에 아이들이 크는 동안 짧고 긴 여행을 아쉽지 않게 다녔다. 모 거대 빅테크 회사가 제공하는 사진 클라우드가 심심하지 않게 추억을 소환해준다. 공부에 매달려야 하는 시기를 통과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자면 감사한 시간들이었다.

주말을 공부하는 용도로 쓰게 되면서, 또한 마침 책에서 만난 인생 선배의 조언에 따라 시간 개념을 고쳤다. 한국경제신문이 발행한 무크지 <인생 리뉴얼 ABC>(2022.3)에는 인생 이모작 하시는 열 분의 인터뷰가 담겨있다. 50대 후반에 은행 부행장으로 퇴직한 후 교수로 변신하고 교수를 정년퇴직한 후에 중소기업, 지역사회에서 활동하시는 분이 있다. 하루의 시간들을 나누어 칸을 만들고 다른 칸을 침범하지 못하게 하라고 하신다. 운동하기로 한 시간에는 운동을, 독서하기로 한 시간에는 독서를 그 시간에 할 수 있는 양과 질로 마감을 하라고. 욕심을 부려 다른 칸으로 넘어가면 양과 질은 조금 더 얻는 대신 건강을 많이 잃게 된다고. 그날 그 말씀이 마음을 찔렀다. 포스트잇에 옮겨 적어 눈앞 벽에 붙여놓았다. (수험생 때도 안 했는데)

오마에 겐이치는 <난문쾌답>에서 말했다. "인간을 바꾸는 방법은 세 가지뿐이다. 시간을 달리 쓰는 것, 사는 곳을 바꾸는 것,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것. 새로운 결심을 하는 건 가장 무의미한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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