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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드 Oct 24. 2021

사소한 불평이 터져 나오는 날

별거 아닌 일에 무너질 때가 있다


오전 아홉 시 무렵, 찬바람이 부는 버스 정거장에서 달려오는 버스를 향해 손을 들었다. 하지만 종점으로 향하던 광역버스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집 근처 정거장을 지나쳤다. 빠른 걸음으로 따라가 보았지만 가속도 붙은 버스를 따라잡는 건 불가능했다. 가방에서 급하게 휴대폰을 꺼내 버스 앱을 켰다. 마을버스가 두 정거장 전에 있는 걸 확인하고 마을 버스정류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소싯적 육상선수였던 기세를 되살려 뛰어갔지만, 예상보다 일찍 좌회전 신호를 받은 마을버스는 몇 미터 앞에서 미끄러지듯 내 앞을 지나갔다. 육성으로 탄식을 내뱉은 뒤 마을 사거리에서 허탈한 모습으로 돌아섰다. 영하의 온도에 손은 얼어붙고 있었지만 어느새 마스크 안에는 땀이 맺혔다.


뚜벅이의 하루 운은 버스에 달려 있다. 대다수 사람들의 출근길과 역행하는 길, 버스가 홀로 서 있는 나를 투명 인간 취급하고 지나치는 상황이 이따금씩 벌어진다.


이제 택시를 타는 방법밖에 없다. 뛰어갔던 거리를 터덜터덜 되돌아오면서, 나를 그냥 지나친 버스기사와 세 시간밖에 잠들지 못한 몸과 비싼 택시비를 원망했다. 새벽부터 일어나 부지런히 준비해서 집을 나섰는데 잠도 못 자고 차비는 차비대로 다 쓰게 생겼다.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찬바람을 맞으며 버스 정류장 의자에 잠시 앉아있다가 택시를 불렀다.


오늘은 플라잉 요가 수업이 끝나고 병원에 바로 가는 날이었다. 강남역 행 버스를 타는 정류장으로 향했다. 빠른 걸음으로 길을 건너다가 갑작스럽게 바뀐 빨간 신호등과 함께 도로 중앙 삼각형의 보도블록에 멈춰 섰다. 바로 옆에 자동차 유턴하는 표시가 있는 이 길은 신호등이 반씩 나누어서 켜진다. 섬 같은 보도블록에 잠시 멈춘 사이, 내가 타야 할 버스는 유유히 버스정류장을 지나갔다.


10초도 지나지 않아 파란 불이 켜졌고, 다음 버스를 기다리기 위해 정거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벤치가 없어졌다. 지난주에도 분명 버스정류장 앞 긴 의자에 앉아서 버스를 기다렸는데, 세 개의 벤치가 놓여있던 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 눈을 비비고 크게 떠봐도 의자는 신기루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연속적인 태클에 화가 나다 웃음이 피식 났다. 십여분을 우두커니 서있으니, 무거운 더플백을 맨 오른쪽 어깨가 욱신거리고, 장갑 사이로 찬바람이 새어 들어왔다. 지루해서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일진이 매우 안 좋다며 투덜거리다가 아무래도 나를 낳은 게 잘못한 거 아니냐고 괜히 시비를 걸었다. 사는 게 너무 고달프지 않냐며.


드디어 이층 버스가 도착했다. 좁은 계단을 올라가서 얼른 가방을 내려놓고 의자에 앉았다. 의자가 기댄 상체의 무게를 받혀주지 못해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눕고 있었다. 등받이가 고장 난 좌석에서 가방을 챙 겨 다른 자리로 옮겼다. 커튼을 치고 긴 호흡을 내쉰 후, 잠시 눈을 감았다.


멀리서 들려오던 사이렌 소리가 점점 커져서 눈을 떴다. 하늘색 커튼을 조금 열어서 창밖을 보았다. 붉은 등을 켠 119 구급차가 보였다. 길이 열리는 방향을 따라 빠른 속도로 내가 탄 버스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간절한 시간을 견디고 있을 누군가가 저기 차 안에서 흔들리며 가고 있을 것이다. 불평할 여유도 없이.


사이렌 소리와 함께 멀어지는 그 사람이 무사하길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누군지 모르는 이를 위해 잠시 눈을 감고 중얼거렸다. 그러다 문득 타인을 향해서 너무 쉬운 바람을 하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에 아찔해졌다. 그 사람이 누군지 몰라도 위중할수록 지금은 살아남는 것 이외에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을 것이다. 당장 넘어야 할 큰 어려움은 사람을 단순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응급차 안에서, 수술 대 위에서, 완전히 무너진 일상을 견딜 때는 큰 장벽 하나가 세상의 전부처럼 보인다. 그것만 넘길 수 있길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하지만 살아남고 위기를 넘긴 삶 이후에는 다른 복잡한 작은 고비들이 기다리고 있다.


나도 이제 더 이상 아파서 삼일 내내 밤을 새우거나 수면제를 여러 알 털어 넣어야 겨우 잠들지는 않는다. 당장 받아야 할 수술을 앞두고 있는 것도 아니다. 물폭탄이 터지는 것처럼 하혈을 해서 호흡이 가빠지는 날도 없다. 음식을 갈아먹지 않아도 턱과 치아로 씹을 수 있다. 짧더라도 매일 잠들 수 있고, 하루에 일곱 시간씩 재활과 운동을 하지 않아도 괜찮을 만큼 좋아졌다. 한 달에 이십일 이상 출혈을 할 때는 엄두도 못 냈던 플라잉 요가를 할 수 있고, 통증 때문에 집중할 수 없었던 영화와 책도 볼 수 있는 날이 많아졌다.


분명 이전보다 가능성이 많아진 삶이다. 이전에 할 수 없었던 것들을 하나둘씩 해나가고 있다. 하지만 마음은 몸의 가능성보다 늘 앞서 나간다. 달려가는 마음의 속도를 느릿한 육체의 속도가 따라잡기 힘들다. 조금씩 할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나면 다른 미래를 꿈꾸게 된다. 하고 싶은 공부에 매진하거나, 일을 하거나, 사회인으로 어엿한 생활을 하고 싶은 마음이 꿈틀거린다. 하지만 내 하루의 시작은 여전히 아프다는 말을 내뱉으며 깨는 것이고, 조금 더 숨을 잘 쉬기 위해, 조금 더 음식을 잘 씹기 위해, 조금 더 통증을 줄이기 위해 가지고 있는 에너지의 대부분을 써야 한다.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들의 아득한 거리감 때문에 무력감에 빠질 때가 종종 있다. 다르게 살고 싶은 간절함 만큼, 때로 이렇게는 살고 싶지 않은 마음을 억누르며 애써 견뎌야 한다. 그러다 보면 꿋꿋이 버티다가 사소한 일들에 무너지는 순간이 있다. 오늘의 나처럼.


버스가 지나가면 택시를 타면 되고, 버스를 놓치면 다음 버스가 온다. 신호등이 바뀌거나, 정류장 앞 벤 치가 사라지거나, 버스 의자가 고장 난 건, 나를 위해 준비된 불행이 아니다. 하지만 매일 감당해야 하는 일 상의 서러움을 꾹꾹 눌러 담고 있다 보면, 이 모든 불행들이 내 인생의 축소판처럼 여겨진다. 놓친 버스는 나를 비껴간 일생일대의 기회 같고, 신기루처럼 사라진 의자는 아프면서 사라진 내 미래처럼 느껴진다. 사소한 불행은 쌓여있던 불평의 트리거 포인트를 자극하고, 숨어있던 마음의 상태를 드러낸다. 꾹 누르고 있던 미래에 대한 불안이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고, 애써 힘을 내던 다짐들이 나약하게 무너진다. 내 삶이 불행하게 결론지어진 것이 아니냐는 항의를, 심각한 상황에서는 무너질까 봐 입 밖에 내지 못했던 불평을, 사소한 상황에 빗대어 성대를 울려 소리로 발화한다.


날이 저물고 나서 아침부터 한바탕 투덜대던 장면을 돌아보니 비극적이라기보다는 희극적인 하루였다. 내게 닥친 일상의 사소한 태클을, 시트콤의 한 장면처럼 웃어넘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사실이 탄로 났을 뿐이다. 그래도 마음 한 구석이 시원해진 걸 보면, 사소한 불행은 실컷 불평해도 좋다는 용인의 기회인지도 모르겠다. 고속도로에서 사이렌 소리와 함께 빠르게 멀어진 그 사람이 큰 고비를 잘 넘기고 작은 고비들을 만나기를 기도한다. 크고 작은 불행들을 의연하게 넘기다가도 불안과 불평이 터져 나오는 어떤 날은 실컷 투덜댈 수 있다면 좋겠다. 어떤 불평은 가능성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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