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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드 Oct 24. 2021

내 삶이 연극이 될 때,

아파서 배우가 되었다


 새하얀 조명 한가운데에 섰다. 사방은 어둡고, 내 숨소리가 적막을 깨웠다. 백지처럼 펼쳐진 무대의 한 모퉁이에서, 나는 어둠의 시간을 이야기하기 위해 눈부시게 하얀빛 속으로 들어갔다.


 2020년 7월, 시민 연극 [아픈 몸들의 질병 사사로 만들어지는 낭독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가 대학로의 작은 공연장에서 열렸다. 자신의 질병 에세이를 써서 응모했던 참가자 중, 여섯 명의 배우가 선정되었고, 나는 그중의 한 명으로 무대에 섰다.


 사실, 아픈 이후 거울을 보고 사진 찍는 것조차 꺼려하던 내가 모자를 벗고 타인의 시선을 받으며 무대에 선다는 것은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컨디션을 일정하게 조절하기 힘든 몸이라서 새로운 시도가 부담스럽기도 했다. 지인이 채팅방에 연극 모집 공고를 올려놓았을 때도, 나에게 좋은 기회라고 추천했을 때도, 나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런 나를 돌이키게 한 건 책 속의 한 구절 때문이었다.


 ‘아픈 사람들의 책임은 자신의 고통을 목격하고 표현하는 것이다.’


 아픈 사람은 치료받고 건강을 돌보는 절대적인 책임 외에 다른 책임에서 자연스럽게 면제된다. 그래서 다른 책임에 목말라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픈 몸을 살다>를 읽다가 ‘책임’이라는 단어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오랜 시간의 질병을 나의 삶으로 받아들인다면, 그 시간의 경험으로 할 수 있는 것을 외면하지 않는 것 또한 스스로에 대한 책임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새로운 책임감은 마음에 균열을 냈고, 주저하던 내 등을 떠밀었다. 신청 조건은 자신의 ‘질병 에세이’였다. 이미 내 컴퓨터에는 아픈 몸을 주제로 한 이십여 개의 글이 쌓여 있었다. 써놓았던 글이 낯선 세계로 인도했다.


 처음엔 모집 공고에 있는 것처럼 낭독극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낭랑한 목소리와 좋은 발음이 가장 중요할 꺼리는 내 예측은 첫날부터 산산이 부서졌다. 처음 모인 여섯 명은 간단히 인사를 하고 별명을 정한 뒤,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닥뜨렸다. 빠빠(연출가)는 첫날부터 여러 가지 음악을 틀면서, 몸을 마음껏 움직여 보라고 이야기했다. 다른 날은 마음껏 내 안의 소리를 토해내라고 했다.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고 소리를 맘껏 내뱉어야 하는 상황이 처음에는 당황스럽기만 했다. 몸을 통해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어색했고, 아파서 울 때조차 온전히 소리를 내뱉지 못했었다. 하지만 스트레칭하듯이 몸을 펼치기도 하고, 앉거나 눕기도 했다가 춤추고 뛰기도 하면서 몸의 감각을 일깨웠다. 우리의 표정도 서서히 풍부해졌다. 각자의 마음에 집중하며 소리 내 웃기도 하고 소리를 지르다 울기도 하면서 마음 한 구석이 시원해져 왔다.

 

 모두 다른 질병을 가진 여섯 명은 놀이처럼, 연극처럼 함께했다. 어떤 날은 역할극을 하면서 타인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갔다. 다른 날에는 서로의 인생 그래프에 귀를 기울이며, 다른 사람의 행복과 슬픔의 순간으로 잠시 접속했다. 나의 질병 속에서만 살다가 다른 질병을 가진 이들의 삶을 엿보며 함께 울고 웃었다.  조현병, 크론병, 난소낭종, 디스토니아, 유방암을 겪어내는 삶들은 나와 다르면서도 또 많이 닮아있었다.


 낭독극이 아닌 연극이라는 것을 알고 두려워하던 마음은 3개월 동안 함께 하면서 기대감으로로 바뀌었다. 모두 몸이 아파서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함께 모여서 연습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위로가 되었다. 다른 아픔을 가지고 견디고 있는 이들을 보며 뭉클하기도 했다. 우리들이 만들어 갈 무대가 걱정되면서도 기다려졌다. 여섯 명에게 각각 약 15분의 공연 시간이 주어졌다.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대본으로 쓰고, 함께 수정했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을 함께 만들어갔다.


 비가 내리던 여름의 길목에서 이틀 동안 공연이 열렸다. 나는 여섯 명 중, 마지막 순서로 무대에 올랐다.


  연극은 내 글 <고통 밖에서 울다>의 한 장면으로 시작되었다. 기억 속에 묻어두었던 비명 같은 울음소리가 허공을 채웠다. 무대는 내 방 침대에서, 병원으로, 콘서트 장으로, 헬스장으로, 내 방의 책상으로 옮겨졌다. 턱관절 통증으로 고통스러워하던 밤, 무책임한 의사의 말에 속상했던 날, 난소의 혹이 파열되던 순간, 오랜 재활의 시간... 지나온 약 20년의 시간이 무대에서 15분으로 요약되어 펼쳐졌다.


 내가 꾹꾹 눌러 담아 쓴 납작한 글들이 다시 내 몸을 통과해서 생생하게 살아났다. 이차원의 공간에 박제되었던 단어와 문장이, 목소리와 눈물과 몸짓으로 되살아났다. 고통을 글로 쓰는 것이 엉켜있던 아픔을 가지런하게 하는 일이었다면, 소리 내고 몸을 움직여 자신을 표현하는 일은 의식하지 못했던 ‘아픔 창고’의 빗장이 열리는 경험이었다. 지나간 기억 속으로 들어가 나를 표현하다 보면, 둑이 무너진 것처럼 슬픔과 서러움의 감정이 쏟아져 나와 당황하기도 했다. 괜찮아졌다고 여겼던 일들이, 별거 아니라고 외면했던 감정들이 불쑥 튀어나와 나를 휘저어놓기도 했다. 함께하는 이들의 고여있던 슬픔이 터져 나오는 순간에는 그들의 삶의 무게에 같이 흐느꼈다. 아픔은 터져 나왔고, 스며들었고, 연결되었다.


 내 삶이 연극이 되었다. 나의 삶을 편집하는 작가가 되었고, 그 대본으로 연기하는 배우가 되었다. 아파서 할 수 없는 일들을 많았는데, 아프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하나 둘 늘어나고 있다. 아프기 때문에, 배우로서 무대에 서서 내 삶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연극을 본 사람들의 후기가 SNS에 올라왔고, 신문에 기사가 실렸고, 시사주간지 <시사인>에서 배우들 인터뷰를 했다. 아픈 몸들의 연극 경험을 담은 책을 함께 준비 중이기도 하다. 나 혼자만의 아픔이라고 생각해서 동굴 속으로 들어가 웅크리고 있던 날이 많았는데, 한 걸음씩 밖으로 나올 때마다 내 기대보다 더 풍부한 삶이 펼쳐졌다.


 지나온 내 흔적을 연기하면서 자주 눈물을 훔쳤지만 한편으로 짜릿한 순간도 많았다. 어떤 시간 속으로 들어가서 몰입하다 보면 나는 동시에 두 사람이 된 듯했다. 나를 연기하는 나와, 연기하는 나를 바라보는 나. 연기하는 나는 슬픔에 젖어 눈물을 흘리지만, 그 눈물을 바라보는 나는 더 이상 슬프지 않다. 슬픔이 정확하게 표현될 때, 그 슬픔의 무게는 가벼워졌다. 내 기억에 속에 웅크리고 있던 기억들이 글이 되었고, 대본이 되었다. 그리고 그 언어들이 내 몸을 통해 살아났다. 연습과 무대에서 여러 번 과거의 내가 되어 울고 소리 지르고 흐느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는, 슬픔이 단지 슬픔으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이따금씩 전율했다. 함께 핬던  배우들의 아픔에 숨어 있는 빛나는 광채도 보았다. 우리는 함께 고통을 마주하고 기억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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