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다리를 벌리고 싶다
한참 콩깍지에 사리구별을 못할 때 남자친구의 가장 가까운 친적 결혼식에 갔다.
남자친구의 친척이면서 친구이기도 했던 사람의 결혼식이었다.
몇 달 후 내 결혼식이 있던터라 그날은 온갖 사람들에게 내가 장씨 집안 장손의 와이프가 될 사람이오라고 자기소개를 해야 하는 날이었다.
아울렛에서 핑크색 원피스를 새로 샀고 구찌를 맸다.
화장과 머리는 한 시간 넘게 걸렸다.
내가 봐도 그날 나는 예뻤다.
그래서인지 그 집 엄마는 나를 자랑하고 싶어 안달이었다.
식 전에도 끌려다니면서 인사를 다녔고, 결혼식 중에도, 식이 끝나고 밥을 먹을 때도 접시 하나를 비우지 못하고 끌려다녔다.
내가 좋아하는 갈비, 닭강정 배터지게 먹고 싶었는데...
중국에서 온 친척 가족에게 우리 수현이는 중국어도 잘해라며 자랑을 했다.
그 전엔 학벌, 나의 유학을 한 번도 언급한적이 없었다.
왜냐면 그 잘난 O씨 장손이 나보다 모든 게 딸렸으니깐.
그런데 그런 자리에서는 꼭 내가 잘란티를 내주더라.
나의 잘남이 자기 아들의 잘남이라고 말하고 싶었으니까.
결국 그날 신랑신부만큼 나도 인사를 다닌 것 같다.
걔들은 식전엔 인사 안다녔으니까 어쩌면 내가 더 했을 수도 있다.
제길!
오랜 만에 타이트한 원피스에 또깍구두에 발이 퉁퉁 부었다.
불려다녔고 밥도 못먹고 얼른 집에 가고 싶었다.
그런데 그날 결혼한 친척의 엄마가 혼자 계신다고 그 집에 가서 있다가 가자고 한다.
나는 힘들다는 소리도 못했다.
집에 가고 싶었는데 간다고 하지도 못했다.
멋진 남자친구가 우리 쏘끼 힘들어서 안돼 그냥 우리는 먼저 갈게라는 말만 해줬어도.
그 집까지 기여이 갔다.
원피스와 구두를 다 집어던지고 싶었다.
20살 때 나이트에서 멋모르고 싸구려 힐을 신고 놀다가 발이 다 망가져서 쪽팔린거고 뭐고 신발을 내동댕이 치고 싶었던 마음.
그게 떠올랐다.
그 불편한 친척집에서 나는 딸기를 씻었다.
나 먹으라고 준건데 내 엉덩이는 나도 모르게 땅에서 떨어져 딸기를 씻는 씽크대로 향했다.
딸기는 내입에 몇 알 오지도 않았다.
멋진 남자친구가 우리 수현이 힘들어서 그러니깐 우리는 먼저 갈게라는 말만해줬어도.
눈치 없는 남자친구는 드러누워있다.
나는 다리를 시원하게 피지도 무릎을 꿇지도 못했다.
다리가 아프다.
저린다.
원피스 등에 나 있는 긴 자꾸를 다 끌어 내리고 쩍벌 하고 싶었다.
우리집이라면 엄마집이었다면 이미 하고도 남았을텐데.
나는 쩍벌이 하고 싶다.
파혼하기까지 나는 그 집 식구들 앞에서 쩍벌을 한 번도 못해봤다.
나도 한국 여자라 그런 것인가?
말아먹을 여성성 교육을 당한 탓인가?
아니면 가족인척 하는 그집 식구들 앞에서 얌전한 며느라기로 잘보이고 싶은 마음이 내 다리를 오무리게 한 것인가?
누가 그러라고 가르친 적은 없는 것 같은데 왜 그랬을까?
왜 남편될 사람 가족근처는 쩍벌 금지 구역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