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이 부족한게 아니라 자신감이 부족한 것이다.
몇 년 전 여성의 경력개발과 관련하여 페이스북의 최고운영책임자(COO, ChiefOperation Officer)인 셰릴 샌드버그(Sheryl Sandberg)가 2010년 TED에서 한 왜 여성리더는 그토록 적은가(Why we have too few women leaders? https://www.ted.com/talks/sheryl_sandberg_why_we_have_too_few_women_leaders?utm_campaign=tedspread--a&utm_medium=referral&utm_source=tedcomshare)라는 강연이 많은 관심을 받은 적이 있었다. 셰릴은 얼마 후 이와 관련하여 린인(Lean In)이라는 책을 출간했고, 최근까지도 여성의 경력개발에 관해 바이블처럼 여겨지고 있다. 린인을읽다 보면 당연히 여성리더가 되고자 하는 분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겠지만, 내가 느낀 건 한국사람들 역시이 책에 나오는 여성들처럼 많은 부분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느껴졌었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놀랐던 부분은 우리나라보다도 미국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이 더 심하다는 느낌이 들었던것이다. 물론 내가 다국적회사에서 오래도록 근무를 했고, 상대적으로여성 비율이 높은 부서에도 오래 일을 해서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내가 다국적회사에서 10년 가까이 근무를 하는 동안에는 회사 내에서뿐만 아니라 회사 외부에서도 이러한 성차별을 별로 느껴보지 못했다. 국내사에서 있었던 4년 정도의 시간 동안에도 별다른 여성 차별 같은것을 느껴보지는 못했었다. 국내사에서 여성 팀장님을 모시고 일을 했었고, 상대했던 공무원들도 대부분 여성분들이었고, 거래처 등도 여성분들이 많았는데, 이분들을 모두 즐겁게 일을 하는 것처럼 보였고, 승진이나 평가, 보상 등에서 어떠한 공식적인 불이익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다국적회사에 오고 나서는 이러한 여성에 대한 차별은 더더구나 찾아볼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당장의 팀장님이 여성분이었고, 부서장도 여성분이었기 때문이다. 단지 우리 부서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영업이나 마케팅 부서에도 여성 지점장, 여성팀장, 여성 부서장분들이 너무나 멋있게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까지도 멘토로 여기고 수시로 조언을 구하는 분들 중 두 분은 여성분이고, 가장 멋지다고 생각했던 영업부의 부서장 역시 여성분이셨다. 오히려 최근에는 사장님을 비롯하여 거의 절반 이상의 부서장들이 여성분이셔서 여성차별에 대한 고민은 남의 나라 일처럼 느껴만 졌었다. 린인에서 보면 셰릴은 수도 없이 많은 여성차별을 받았는데, 문제는 그녀가 그 누구보다 능력있고, 성공한 여성리더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가 여성이니까 하고 위축되는 부분들이 무의식적으로 있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심지어 맥킨지&컨설팅 같은 세계 굴지의 인재들이 모여있는회사에서 조차 그러한 여성차별을 당했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는 정말 쉽게 공감하기가 어려웠다.
내가 있던 회사는 업계에서도 여러가지 복지가 잘 되어 있다고 평가 받는 곳이었다. 그렇기에 여성들의 임신혹은 생리 등의 생리학적 불편함에 대한 배려가 나름 잘 되어 있었다. 사무실에는 여성 휴게실이 마련되어있어, 몸이 불편할 경우에는 언제든 휴식을 취할 수 있고, 누구나 눈치를 보지 않고 보건 휴가를 낼 수도 있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생각보다 다른 회사에서는 이 보건휴가에 대해 너그럽지 않다는 것이 오히려 놀라웠었다. 내가 팀장으로 있을 때우리 팀원 6명은 모두 여성이었다. 그렇기에 모두 한 달에 한번씩은 보건휴가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다. 혹시나 팀원들이 눈치를 볼까봐 오히려 내가 가끔씩 눈치보지말고 사용하라고 권장을 했었다. 어찌되었던 보건휴가 같은 것은 보장된권리이니 개인적으로 눈치 볼 필요 없이 사용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평가와 같은 부분은 팀원들 모두 여성이니 당연히 차별이 있을 수 없고, 나 역시 팀장 그룹에서 다른 여성 팀장들에 비해 특별히 우대를 받았다거나 이 여성 팀장들이 차별을 받았다고 불평을 하는 것을 들어본 적은 없다. 영업부나 마케팅부서도 여성 팀장들이 많이 있었고, 평가 자체가 워낙에 절대적인 수치들을 통한 객관적인 기준들이 잘마련되어 있어서 특별한 문제가 없었다. 다만 영업부 같은 경우는 상대적으로 여성 인력 자체가 남성에비해 많지 않고, 지점장 수도 현격히 적었기에, 오히려 리더쉽팀에서 의도적으로 여성 지점장을 발굴하는 것을 하나의 목표로 삼을 정도로 신경을 쓰고 있었다.
내가 다니던 회사의 경우는 국내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여성의 비율이 상당히 높았다. RnD 부서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함께 일하는 팀을 보면, 여성의 비율이 상당히 높고, 그들 역시 특별한 불편함 없이 잘 일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아 정말 내가 유리천장이라고는 눈꼽 만큼도 없는 회사를 다녔구나 하는 생각이 들 무렵, 문득 이 회사의 CEO나 최고위 임원진은 어땠는지에 대해 생각을해 보았다. 근 10년간을 돌아보면 의외로 대부분 최고위급임원은 대부분 남자들이었다. CEO는 계속해서 남성이었고, 전략부서나 각 대륙의 사장들 역시 모두 남성이었다. 국내의 사장님은 여성이었으나,아시아 지역 사장은 남성이었다. 몇 년 전 최고위 임원들 몇 명이 한국을 방문해서 직원들과 미팅을 가진 적이 있었는데, HR 담당 임원을 제외하고는 모두 남성이었다. 회사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조직도 까지는 아니지만, 몇몇 인터뷰 영상들을 찾아보면 최고위직은 대부분 남성들이고, 그 하위 부서의 부서장들은 여성이 많이 보였다. 어떻게 보면 여성차별을 없애야 한다고 꾸준히 말하고 다니는 최고위 임원진에서 가장 여성 차별이 심하고, 오히려 실무를 담당하는 분야에서는 여성들의 활약이 더 활발한 게 아닌가도 싶고, 뛰어난 능력이 있는 여성들도 리더가 되는 과정에서는 결국 보이지 않는 천장에 부딪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린인에서 나왔듯이 여성리더들이 무의식적으로 앞으로 나서는 것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는 것이 원인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내가 만나왔던 여성 리더들은 성에 대한 것과는 상관없이 모두 뛰어난 전략적 사고와 조직운영 등을 보여주셨기에 적어도 능력에 있어서는 차이가 나지 않는 것만은 확실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기에 스스로가 여성이라는 프레임 안에 갇혀 있지 않고, 적극적으로표현하고 요구하는 것이 익숙해지고 당연해 지면 오히려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남성차별이라는 말이 나오리라 믿는다.
린인을 읽으면서 오히려 내가 우리나라에서 심각하다고 느끼는 건 한국인의 특성 자체가 서구 여성의 특성을 가지고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한국에서는 유교문화의 전통이라는 것이 수직서열을 강요하고 침묵의가치를 더 중요시 하는 부분들이 있어 이러한 부분들이 오히려 국제적인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것이 아닌가도 싶다. 다른나라들과 함께 미팅에 참석을 하게 되면, 유독 한국의 참석자들은 의견을 내는 데에 인색하고, 질문을 하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오히려 인도나 다른나라에서 질문을 하면 다 아는 걸 질문한다고, 준비도 안 해왔냐고 힐난을 하곤 한다. 또한, 평가에 있어서도 한국에서 분명히 더 좋은 성과를 냈음에도 이 성과를 제대로 표현하고 말 그대로 자랑을 하지 못하니 실제 성과의 배분에 있어서 손해를 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러한 불필요한 겸손은 셰릴이 말한 여성들의 특징과 유사하다. 능력도 있고, 성과도 냈는데, 무의식적으로 잘난 척 한다는 생각이나 겸손, 양보 등의 의미 없는 미덕을 베풀고 있는 것이다. 그래놓고는 나중에는 영어로 표현하기 어려웠다는 이상한 핑계를 대기도 한다. 물론 영어도 능력이다. 그러나 영어 이전에 본인의 의지가 있다면 충분히 준비해서 표현을 할 수가 있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아직 100% 여성에 대한 차별이 없어졌다고 말할 순 없지만, 국내에서는 많은 부분이 개선되었고, 또 개선 중이라 생각한다. 내부적으로는지속적으로 이러한 성차별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지만, 이와 동시에 다국적 회사의 경우는 다른 나라와의 경쟁력도 고려를 해야 한다. 다국적 회사는 국내에서는 다른 회사와 경쟁을 해야 하지만, 회사 내에서는 다른 나라와 경쟁을 해야 한다. 다른 나라와의 경쟁에서 뒤쳐지게 되면, 여러 가지 불이익을 받게 되고, 투자가 줄어드는것 뿐 아니라,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다른회사와의 경쟁에 열을 올리듯이, 회사 내에서 다른 국가와의 경쟁에 있어 국가대표의 마음가짐처럼 임한다면, 보다 많은 기회를 개인 뿐만 아니라 국가에도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