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영어가 편하기도 하고, 뒷통수를 치기도 한다.
외국계회사에서 근무를 한다고 항상 영어만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영업부 직원들은 굳이 영어를 사용할 일이 거의 없으며, 전 직원이 모이는 자리에서 사장님께서 발표를 하실 경우에는 거의 대부분 통역이 대동된다.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의 경우 문서작업이나 다른 나라와 협업을 하는 경우 당연히 영어를 써야 하겠지만, 내부에서 우리나라 직원들끼리 미팅을 할 때는 굳이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한번은 여러 부서가 함께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있었고, 사장님께 중간 발표를 하는 날이었다. 사장님은 영국분 이셨기에 당연히 영어로 발표를 해야 하는 자리였고, 참석자들 모두 영어로 된 자료들을 준비해 왔다. 그런데 사장님께서 미팅 시작 시간이 되었는데도 도착을 안 하셨고, 확인을 해보니 조금 늦을 테니 먼저 시작을 하고 있으라고 전하셨다. 참석자들 모두 매일 일과처럼 영어로 발표를 해 왔던 분들이라 딱히 영어 발표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는데, 사장님이 안 계실 때 발표하면 영어로 하지 않아도 되니 서로 먼저 발표를 하겠다고 나서는 걸 보니 알게 모르게 영어에 대한 부담을 완전히 떨쳐낼 수는 없었던 듯 하다.
이렇게 하루하루 영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면서도 영어에 대한 부담이 항상 존재해 왔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영어가 때로는 더 편할 때도 있었다. 그건 바로 불편한 이야기를 꺼내야 할 때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에게 부정적인 피드백을 주어야 할 때, 영어로 표현을 하게 되면 훨씬 더 간결하고 정확하게 전달을 할 수가 있다. 한국어의 경우 너무나 많은 형용사와 부사 등을 장황하게 활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의도치 않은 오해를 불러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또, 한국어의 복잡하고 다양한 표현법 보다는 아무래도 영어에 대한 표현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돌려서 말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이야기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셰릴 샌드버그(Sheryl Sandberg)의 책인 린인(LeanIn)에서 보면 마크 주커버그(Mark Zuckerberg)가 중국어를 배우기 위해 페이스북(Facebook)에 근무하는 중국인 직원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내용이 나온다. 그러던 중 한 중국인 직원이 마크에게 업무 중의 불만을 중국어로 토로를 하는데, 마크의 중국어 실력이 썩 좋지 않다 보니 그 직원이 하는 말을 다 알아듣지 못하였다. 중국인 직원이 몇 번이나 설명을 했지만, 마크가 알아듣지 못하자,
“내 매니져가 정말 나쁜 사람이라고요”
라고 소리를 질렀더니 그제서야 마크가 알아들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국어로 어떤 것을 전달하려고 할 때는 너무 많은 과정을 거쳐야 진정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들을 수 있다. 그런데, 이게 심지어 상대방이 듣기 좋은 소리가 아니라면 중간중간 반박하는 과정들이 생길 것이고, 이러한 과정에서 감정의 충돌이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기때문에 영어의 간결한 표현이 오히려 불필요한 감정적 요소를 배제하고 핵심만을 전달하는데 더 유리할 수도 있다.
한번은 리더쉽팀 앞에서 마케팅 전략을 발표하는 자리였다. 나는 시장에서 지금까지는 좋은 성적을 내고 있지만, 앞으로는 급격한 환경변화와 심화된 경쟁으로 인해 어려움이 예상된다는 식으로 말하면서, “But” 이라는 접속사를 사용했다. 이를 테면 “It has been good so far, but….”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러자, 사장님이 그런 식으로 “But”을 쓰면 안 된다고 지적을 해 주셨다. “But”은 앞에 한 말을 부정하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비즈니스 상황에서 “But”을 쓰게 되면, 앞에서 잘했다고 말한 부분들이 다 없어지는 거라고 하시면서 주의하고 대신에 “However” 와 같은 접속사를 쓰는 것이 좋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But”을 사용하는 적절한 예를 들어 주셨는데, “I love you, but, I have to leave you” 와 같이 쓰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장님께서 정말 “But”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인지 실제로 보여주신 적이 있다. 당시 회사는 구조조정안을 발표를 했고, 노조에서는 이에 반발을 하며, 사장님께 그 책임을 묻고자 하였다. 그러면서 2년 전에 있었던 조직개편이 잘못 됐음을 인정하고 사과하라는 것이었다. 만약 내가 노조위원장이었다면 단지 사과를 받는 것이 아니라 사측에서 제시한 구조조정안에 대해 노측의 협상 조건을 조금이라도 유리하게 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요구를 했겠지만, 당시 노조에서는 사장님의 사과를 최우선조건으로 전제를 하였다. 이에 사장님은 정말 쿨하게 “I am sorry” 라고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그 뒤에 한마디 덧붙이셨다. “But, I still believe that decision was right at that t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