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회사의 유연한 출퇴근 시간
외국계 회사의 사내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보니 조금은 가벼운 이야기들을 조금 더 꺼내 놓은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업무 자체보다는 직장 내 생활에 관한 이야기들을 조금 풀어 볼까 한다.
친구 중에 국내 굴지의 대기업 전략실에서 일하는 친구가 있다. 이 친구는 외국생활도 해 봤고, MBA도 있고, 외국계 회사에서도 한동안 근무를 했었다. 즉, 다양한 경험을 했고, 개방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지식층 중의 한명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친구의 출근 길은 보면 그다지 스마트해 보이지는 않는다. 우선 이 친구의 집은 도봉구 우이동이다. 즉, 서울의 북쪽 끝에 부모님을 모시고, 단란한 가족을 꾸리며 살고 있다. 그런데, 이 친구의 직장은 경기도 판교에 있다. 출근을 하기 위해서는 우이동에서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광화문까지 온 다음에 회사 출퇴근 버스를 타고 사무실에 도착을 하면, 2시간이 훌쩍 지나간다고 한다. 이렇게 사무실에 도착한 시간이 오전 8시이다. 그렇다면 집에서 6시에는 출발을 해야 하는 것이고, 5시 반 전에는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친구는 이 생활에 만족을 하고 있었다. 이전 회사에서는 아침 7시까지 출근을 해야 했다는 것이다. 더구나 그 회사에서는 퇴근도 항상 12시 즈음이었기에 피곤은 둘째치고, 도무지 가족들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도 지금의 회사는 항상 정시 퇴근을 하기에 조금 고되더라도 저녁시간만큼은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어 만족스럽다고 했다.
예전에 내가 국내의 한 중소기업을 다닐 때, 한동안은 7시까지 출근을 했던 적도 있었고, 그 이후에는 8시까지 출근을 했다. 집이 회사에서 그리 멀지 않아 출근시간은 한 20분 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으니, 실제적으로 그리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다만, 1분이라도 늦으면, 출퇴근 기록이 남고, 매일 아침 불러야 하는 사가 제창 시간에 늦게 되면, 눈치가 보인다는 것이었다.
외국계 회사로 이직을 한 이후 달라진 것 중 하나가 출근 시간이었다. 첫 출근 전 인사부에서는 출근 시간을 선택할 수 있는 탄력근무제(Flexible working hour)를 운영하고 있어, 8시에서 10시 사이에 30분 간격으로 출근 시간을 선택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이런 시스템 자체가 낯설어 가장 사람들이 많이 선택하는 출근시간을 물어봤고, 인사부에서 알려준 대로 9시 출근을 선택했다. 강남 한복판에 위치한 회사까지 출근하는 길은 거리상으로 멀지는 않았지만, 차가 너무 막혔다 집에서는 적어도 1시간 이상이 걸렸기에 실제 집에서 나오는 시간은 이전 회사와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다만, 길거리에서 버려지는 시간들이 아깝다고 느껴져, 열심히 영어 공부를 하면서 다녀야 했다. 새로운 회사에 적응을 하고 보니, 실제로 출근 시간이 그렇게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던 게 매일같이 늦은 시간까지 야근이 반복되기 때문이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내가 다녔던 회사에서는 야근 수당이 지급이 되었었다. 그렇기에 야근을 하면서도 짭짤한 부수입에 고됨을 잊고 다닐 수도 있었다.
정신 없이 일을 하다 보니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고, 새로운 회사의 시스템과 문화에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갔다. 그리고 나는 관리자가 되었고, 더 이상은 야근수당을 신청할 수 없는 직책이 되었다. 한동안은 일찍 퇴근을 하고, 출근시간에 길에서 버려지는 시간을 줄여보고자 출근시간을 8시반으로 앞당겼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출근시간의 차막힘은 아침 7시부터 전부터 시작되는 것이라는 확신이 들고, 일찍 출근한다고 일찍 퇴근할 수 있는 업무량이 아니라는 단순한 사실을 깨닫고 난 후 나의 출근 시간은 9시 반으로 미루어 졌었다. 그리고 마케팅부서로 자리를 이동하게 되었다. 이전에 있던 부서에서는 주로 사무실에서 일을 했다면, 마케팅 부서는 외근과 출장도 잦고, 밤늦게까지 고객과의 술자리도 빈번했다. 그러다보니 실제로 정해진 출근시간에 출근하는 게 쉽지 않은 경우도 많이 생겼고, 부서 내에서도 출퇴근 시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는 탄력적으로 이해를 해 주기도 했다. 예를 들어, 전날 밤 늦게까지 중요한 미팅이나 술자리가 있었다면, 다음날은 조금 늦게 출근을 해도 용인이 되었고, 외근이 잦다 보니, 퇴근 시간이라는 것은 딱히 정해질 수 없었고, 어쩌다 사무실에 있는 경우는 밀린 서류업무를 해야 했기에 당연히 일찍 퇴근하기는 어려웠다. 그럼에도 출근시간을 정해 놓은 것이 아니라 탄력적으로 운용을 해 주는 것만으로도 일과 삶의 균형을 나름대로 맞추기 수월했었다. 이러한 탄력적인 부분은 부서장의 성향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나기는 했지만, 대부분은 비슷하게 적용이 되었다. 그럼에도 일부 직원들은 아침 7시에 출근해서 운동도 하고, 자기계발도 하고, 큰 틀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는 스스로가 시간을 운용할 수 있었다. 대부분 회의 일정을 잡을 때는 참석자들의 출근시간을 배려해서 잡고, 만약 출근시간보다 일찍 회의를 잡아야 하는 경우는 개인적으로 양해를 구하고는 했다. 그리고 때로는 리더쉽팀의 미팅이 일찍 시작되는 경우는 사전 공지를 하고, 모두 그 시간에 불평불만 없이 모두 참석했다. 즉, 유연하고 탄력적으로 운용이 되었지만, 항상 업무가 우선순위에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연차가 쌓이고, 사무실에서 익숙함을 넘어 편안함을 느끼게 되니 출퇴근 시간에 대한 부담이 사라지게 되었다. 한 3년 정도를 사장님 방을 바로 마주 보고 앉아서 근무를 했었다. 당시에는 사장님의 비서가 있었음에도 나에게 사장님의 일정을 더 많이 물어보고는 했던 시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사장님보다 일찍 출근한 적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왜냐하면 사장님은 9시 출근이었고, 나는 9시반 출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부분에 대해 사장님은 한번도 출근 시간에 대해 물어보거나 한 적은 없으셨다.
출근하면서 아무래도 조금 늦게 되면 비록 사장님과 부서장의 눈치는 보지 않더라도 다른 부서의 눈치가 보일 때가 있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가방을 잘 들고 다니지 않았다. 조금 늦었을 때는 1층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하나 사 들고 오히려 여유 있게 출근을 하고 있노라면, 사람들과 마주쳤을 때, 나는 일찍 출근을 했지만 다만 커피를 한잔 마시고 싶었을 뿐 이라는 생각으로 당당하게 사무실로 들어가곤 했다.
출근 시간이 남들보다 조금 늦게 되면, 좋은 것은 우선 차가 덜 막힌다는 것이다. 8시가 넘어가게 되면, 서에서 동으로 가는 올림픽도로나 강변북로는 7시에 출근하는 것보다는 한결 더 막히고, 9시가 다 되어가면 정체는 상당부분 풀려 있다. 그래서 8시 전에 나오면 1시간이 훌쩍 넘기게 걸리는 출근 시간이 8시 반 정도에 집에서 나오면 1시간이 채 안 걸리는 경우가 많았다.
출근 시간이 늦으면, 안 좋은 점 중 하나는 지하 주차장에 주차할 자리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한층 한층 주차할 자리를 찾아 내려가다 보면, 결국 2중 주차를 해야 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그리고 간신히 주차를 하고, 사무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 다른 부서의 직원을 만나게 되면 서로가 민망한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다만, 마주치는 직원은 항상 똑같기 때문에 곧 익숙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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