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자유로움이 허용된다
외국계회사의 장점 중 하나가 자유로운 출퇴근 복장이다. 요즘은 자유로운 분위기의 스타트업도 많아졌고, 많은 기업들이 업무효율을 높이기 위해 복장 규제를 완화하고는 있지만, 아직도 출퇴근 시간에 정장을 입고 가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면 정장을 고집하고 있는 회사들도 많은 게 현실이다. 예전에 국내 회사에서는 정장이 필수 복장이었다. 더워도 추워도 항상 정장을 입어야 했는데, 한번은 사장님이 여름에 에어컨 온도를 1도 높이는 대신에 넥타이를 풀고 와도 된다고 직원들에게 말씀을 하셨다. 그러나 경직된 조직 문화에 아무도 선뜻 넥타이를 풀지를 못했고, 결국 넥타이를 풀게 된 것은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 가을 초입이 되어서였다. 그 이후 다시 한번 사장님은 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은 캐주얼데이로 지정을 했었고, 비지니스 캐주얼을 입고 출근해도 된다고 했으나, 이 역시 정착이 되는 데는 몇 개월이 더 걸렸다. 다들 회사에 입고 올 만한 비지니스 캐주얼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강제적으로 시행을 한 이후에야 새로 사 입은 비즈니스 캐주얼을 입고 출근을 하면서 지출만 늘었다고 불만을 터트렸었다.
외국계 회사는 기본적으로 비지니스 캐주얼을 권장한다. 회사의 표준업무지침(SOP, Standard Operation Procedure)을 찾아봐도 비지니스 캐주얼이라고 명시가 되어있다. 처음에 이직을 했을 때는 어디까지 허용이 되는지 몰라서 조금 난감해 했었다. 남방에 면바지는 일반적이다. 그럼 청바지는 어떨까? 카라가 없는 티셔츠는 되나? 후드티도 입어도 되나? 운동할 때 신는 운동화를 신어도 되나? 주변에 물어봐도 그냥 편하게 입으면 된다는 식의 답변 정도였다. 그래서 한동안은 회사 내의 남자 직원들의 복장만 관찰하고 다닌 적도 있었다. 그리고 스스로가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을 정도의 자유로움은 허용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자의 경우 청바지를 입던, 면바지를 입던 크게 상관이 없었다. 여름에는 형형색색의 면바지를 입고 출근하는 남자들을 볼 수 있고, 서로가 서로의 패션감각을 칭찬하기 바빴다. 상의는 남방이나, 니트, 때로는 티셔츠도 입고 다닌다. 여름에는 피케 셔츠를 주로 입고 다니며, 개인적인 일정이 있는 경우 종종 후드티셔츠를 입고 오는 경우도 있다. 단, 찢어진 청바지나 노출이 너무 심한 옷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옷들은 피하는 것이 좋다. 당연하지만, 외부와 회의가 있던가 외근이 있는 날은 정장을 입어야 한다. 여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고, 대부분 단정한 정도의 캐주얼로 청바지, 반바지, 치마 등을 많이 입었다. 어떤 회사에서는 여자들이 반바지를 입는 게 허용되지 않는다고도 하는데, 이는 회사 내부 규정과 문화에 따른 차이로 보인다. 신발 역시 청바지에 정장구두를 신는 것과 같은 아재 패션을 지양하고, 운동화, 스니커즈 등을 신으며, 사무실에서는 슬리퍼를 신기도 한다. 이 역시 슬리퍼가 허용되지 않는 회사도 있다고 한다. 한번은 새로 들어온 여직원들이 너무 짧은 치마를 입고 다녀서 다른 부서에서 좀 자제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온 적이 있었다. 이렇게 너무 노출이 심하거나 다른 부서에서 말이 나올 정도만 아니라면 대부분은 용인이 된다.
해외 출장 시에는 조금은 더 복장을 갖춰 입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여자들의 복장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지만, 남자들은 대부분 재킷 정도는 챙겨가서 회의를 할 때는 벗어 놓는 정도이다. 출장의 목적에 따라서는 아예 정장을 갖추어야 하는 경우도 있는데, 대부분은 해외 학회에 갈 때의 복장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한번은 국내 회사와 회사 내 회의실에서 회의를 진행하고 있을 때였다. 회의실은 복도 쪽으로 투명한 전면 유리로 되어 있었다. 한참 회의를 진행하던 중에 상대편에서 왠지 불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유를 물어보니, 사무실 보수 일을 하시는 분 같은데, 회의 중에 바로 앞에서 왔다 갔다 하니 신경이 쓰인다는 것이었다. 뒤를 돌아보니 우리 사장님이 오랜만에 청바지를 입고, 당시에 회사 차원에서 준비하고 있던 노벨상 수상자 초청 강연 포스터를 붙이고 다니고 계셨었다. 언뜻 보기에는 충분히 오해할 만 해 보였다.
또 한번은 영국인 사장님과 점심을 먹을 때였다. 이 영국에서 온 신사분은 항상 정장만을 고집하셨다. 영국에서도 명문 대학을 나왔고, 군인 출신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한 분이었다. 더운 여름에도 양복을 입고 계시기에 덥지 않냐고 물었더니 영국 신사의 복장이라며 한참을 복장에 대해 이야기 하셨다. 정말 신사의 양복은 셔츠에 주머니가 있어야 하며, 셔츠 자체가 속옷이니 재킷을 꼭 입어야 한다는 등 자부심이 폴폴 묻어났었다. 우리는 분식집에서 라면을 먹고 있었다.
회사에서 행사를 진행할 때 종종 옷을 나누어 줄 때가 있다. 몇 년 근무를 하다 보니 그런 옷들이 꽤 된다. 그리고 아침에 입을 옷이 고민될 때는 지체 없이 회사에서 나누어 준 옷을 입고 간다. 회사에서 나누어 준 옷이니 애사심도 팍팍 묻어나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아도 된다. 단, 문제는 같은 옷을 입고 오는 아저씨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다. 나 같은 경우 몇 명이 모여서 서로 입고 오는 날을 정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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