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진지 한참이 되었는데 아버지는 늘 늦게 들어오셨다. 그런 날에는 아버지 사무실로 종종 이렇게 전화했다.
"아빠, 들어올 때 콜라 사와."
새로 산 하얀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줄지어 서 있는 콜라병들의 딸랑거림이 좋았기 때문이다. 딸랑딸랑. 풍족의 느낌을 주는 묘한 소리였다. 요즘이야 치아에 안 좋다고 어린애들에게 탄산음료를 잘 먹이지 않았지만, 우리 때는 그런 거 잘 안 따졌다. 그때는 우리 집안 살림이 좀 좋을 때라 전화하면 퇴근하실 때 다섯 병씩 사 오시고는 했었다. 콜라. 원하면 어느 정도 마음껏 먹을 수 있던 형편 속에서 나는 컸다. 하지만, 우리 누나는 어릴 때 나 같은 풍족함은 누릴 수 없었다.
나는 없고 누나도 굉장히 어린 시절이었다. 단칸 세 살이 하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 누나가 빈 콜라병을 물고 다니다 어머니께 크게 혼난 일이 있었다. 그 콜라병의 출처는 주인집이었다. 주인집에서 잔치를 했고 먹다 남은 음료수를 마당에 내놓은 것이었다. 누나는 바로 그렇게 먹다 남은 콜라를 마셨던 것이다.
대용량 콜라가 예전에는 1L유리병이었다."네가 거지냐? 먹고 싶으면 사달라고 해야 하지?"
많이 혼났다고 한다. 그 날 일을 어머니는 아버지께 했던 것 같다. 다음 날 아버지가 콜라를 여러 병 사들고 오셨다고 한다.
아빠가 된 나는 퇴근 길이 아내 대신 장 보러 갔다가 올 때마다 꼭 과자를 한 꾸러미를 사 오고는 한다. 이건 내가 은연중 우리 아버지를 닮은 게 아닐까 싶다. 닮는 것은 얼굴만이 아니라 마음도 닮아가는 것 같다. 우리 아이들도 과자 씹는 소리, 와삭와삭이 풍족의 소리가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