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 아버지 성경책이 한 권 있다. 아버지 제일 친한 친구가 준 선물이다.
아버지는 교회를 다니시지 않는다. 내가 고향 가면 가끔 쓰고 요즘은 아이들이 읽고는 한다.
성경책을 선물해 주신 아버지의 친구분이 우리 집에 오셨을 때
"너 교대 다닌다면서? 꿈과 희망을 주는 선생님이 꼭 되어라."
짧고 뻔한 이 말이 아직도 교직에 버티게 하는 힘이 되고 있다.
친구분은 아버지께 성경책을 주시고 2년 뒤쯤 돌아가셨다. 환갑이 좀 넘는 나이였던 것 같은데 요즘으로 보면 굉장히 일찍 돌아가신 거다.
5년 전 할머니 초상을 치르면서 장례식장에 본 특이한 점이 아버지 친구가 한 명 밖에 안온 거였다. 내가 유일하게 잘 아는 아버지의 친구, 난 아직 삼촌이라는 말이 입에 붙지 않지만, 항상 단정한 옷차림으로 시골 동네 구멍가게를 하시는 아저씨다.
장례 순서상 하관을 해야 할 때였다. 관 위에 씌워 놓은 나일론 재질의 천을 버리는지, 함께 묻는지 서로 따지고 있었다. 아버지의 생각과 장례지도사 의견이 일치하는 가운데 아저씨께서 말씀하셨다.
"장례는 강 사장 제일 잘 알지. 친구 부모들 장례 다 따라다니며 봤잖아."
"내가 친구 부모 장례만 갔나? 친구들 장례도 다 갔지. 이제 너랑 나밖에 없어."
그렇다. 우리 아버지는 이제 친구가 하나밖에 없다. 이제 모두 떠나셨다.
최근 TV에서 임영웅이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부르는 모습을 본 어머니는
"저 노래 제목이 뭐냐? 가사가 좋다."
노래를 마무리하는데 가사에서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를 두 번 반복하고 끝내는데 한번 떠나보낸 것이 아니라 계속 떠나보내고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나는 오늘과 이별하며 살고 있다.
오늘도 나는 오늘과 이별하며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