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을 많이 물려받고 싶어요.

나도 모르게 물려받은 유산, 아버지도 몰래 물려준 유산

by 그루터기

대학 2학년, 한식날이면서 주말이었다. 평소 주말에 자취방에서 고향으로 가질 않는데 친구들도 각자 집으로 많이 간 터라 나도 고향으로 향했다. 집에 가니 어머니는 직장 가시고 집 앞 냇가에서 뜯었을 쑥으로 만든 개떡이 놓여 있었다. 출출하던 차에 게 눈 감추듯 먹고 있을 무렵 아버지께서 들어오셨다.

“아들, 왔어? 너 나랑 산에 좀 가자.”

“무슨 산이요?”

선산에 가자는 얘기이시다. 한식이어도 따로 성묘를 가지는 않는 집인데 갑자기 가자 하니 궁금했다. 성묘 가는 일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니 조용히 따라나섰다. 아버지는 광에 가서 괭이 하나, 삽 하나를 꺼내 자동차 트렁크에 실었다. 트렁크 속을 보니 잔디 떼들이 하얀 나일론 끈에 묶여 여러 개가 실려 있었다. 할아버지 산소에 떼 입히러 가려하시는 줄 알았다. 다만, 흙덩어리들이 소복이 떨어져 있는 것을 보니 어머니의 잔소리가 조만간에 들릴 듯하였다.


우리 선산은 군부대 사격장 옆 산에 있다. 출입통제구역 바로 옆이라 수풀이 우거진 곳이었다. 선산이 엄청 높은 것은 아니지만, 보통은 지프가 아니면 못 올라갈 길이다. 그래도 우리 아버지는 운수업만 30년 하신 분이어서 일반 중형차로도 잘 올라가신다. 일반 중형차로 덜컹덜컹, 쓰윽쓰윽 긁히며 산 중턱까지 올라갔다. 다만 나머지는 길이 좁아져서 걸어가야 했다. 평소 학교에서 재배장 관리를 계속하느라 비료포대도 한 번에 두 개씩 나르는 나였기 때문에 떼를 들어 나르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라 여겼다. 하지만 양손에 들어 보니 이게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나는 20대 초반의 젊은 남자이니 60이 다 된 아버지보다 적게 들면 안 될 듯하였다. 아버지만큼 잔디를 들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헹~ 헹~”

천식 증상이 또 시작됐다. 숨이 쉽게 쉬어지지 않는다. 고등학생 때에 비하면 훨씬 좋아졌지만, 가끔 뜬금없이 증상이 나타날 때가 있다. 흡입제도 집에 두고 왔는데 갑자기 숨이 차니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나보다 앞서가는 아버지께 내가 불편하다는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중 3 때 체력장 이후로 숨이 넘어갈 듯한 기분은 오랜만이었다. 서울로 대학병원으로 진료를 받으러 다니면서 많이 좋아졌었기 때문이다. 여하튼 할아버지 산소까지 잔디를 옮겨 놓고 아버지와 나는 한숨을 돌렸다. 아버지께서 매우 힘들어하셨다. 아버지는 당뇨를 앓고 계시느라 탈진하면 위험하시다. 특히나 산 중턱에서 쓰러지시기라도 하면 답이 없다. 나는 운전도 못하고 아버지도 나처럼 한 체격 하기 때문에 나 혼자는 버겁다. 아버지와 보온병 뚜껑에 얼음물을 한 잔씩 따라 마셨다.

“아이고, 빙빙 도네. 휴~. 나중에 아버지 죽걸랑 저 쪽에 묵밭에다가 묘 써.”

환갑도 안되신 분이 당뇨로 불안한 마음이 있으신지 성묘 때마다 이런 말씀을 하시곤 하셨다. 이제 잔디를 가져오려면 한 번 더 다녀와야 하는 양이 남아 있었다.

“아버지, 남은 거 제가 가져올게요. 쉬세요.”

“아니야, 같이 가.”

“아니에요, 저 혼자 가져올 수 있어요.”

나는 괭이자루에 떼를 잔뜩 끼어들고 오려 생각했다. 괭이자루에 나일론 끈에 묶인 떼를 걸었다. 네 묶음 정도가 들어 가졌다. 잔디를 등에 짊어지고 다시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몇 걸음 안 갔는데 숨이 또 차오르기 시작했다. 괜히 혼자 들고 온다 했나 싶었다. 중간에 잠시 멈춰 숨을 한 번 돌렸다. 나도 머리가 빙빙 돌았다. 마른풀 쪼가리들이 바람에 날려 그냥 숨쉬기도 힘든데 나를 더 괴롭혔다. 4월 초에 땀이 비가 오듯 쏟아지기 시작했다. 허리를 펴고 호흡을 크게 내뱉으며, 얼마나 더 가야 하나 싶었다. 그러고는 오르막 너머 있는 앉아 있을 아버지를 한번 머릿속에 그려 보았다. 그런데 갑자기 산소 앞에 앉아 계실 우리 아버지의 모습이 내 모습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우리 아버지에게는 비록 돌아가신 아버지이지만, 그 아버지를 생각해서 자기도 체력적으로 힘들지만 자식의 도리를 다하겠다고 잔디를 짊어지고 올라간 우리 아버지, 그리고 자기도 천식으로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면서도 아버지를 위해 짐을 지고 산에 오르는 나, 서로 많이도 닮은 것 같았다. 어느 순간 내가 얼굴만 닮은 게 아니라 사는 모습도 아버지를 닮아가는구나 싶었다.


보통 유산이라고 하면 부모님의 가지고 계신 부동산이나 돈 정도로 생각한다. 우리 집은 특별히 물려줄 만한 게 있는 집은 아니다. 재산을 물려받아 보겠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이 생각은 어릴 적부터 물건 사달라고 졸라 본 적 없는 누나, 형도 마찬가지다. 그런 모습이 우리 남매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내가 아버지께 물려받을 유산을 발견한 날이었다. 내 상황과는 상관없이 부모를 공경하고 사랑하라는 그 마음가짐을 유산을 나는 아버지 몰래 물려받았다. 그리고 요즘은 다른 마음의 유산은 없는지 아버지께 더 다가가 보려 하고 있다. 살아계신 동안 더 많은 유산을 물려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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