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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nislaus Oct 08. 2019

늦은 머릿말

왜 이 연재를 시작했을까요?

원래 블루헤븐국 세제사라는 글을 쓰게 된 이유에 대해 먼저 밝혔어야 했는데 이제서야 씁니다. 사실 일부러 그런 겁니다(첫 번째 글에 '세금'에 관해 쓴다고 하면 관심을 가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림도 직접 그려 집어 넣고 하면 좀 관심을 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나름대로의 잔머리 ^_^). 제 전공은 작가소개에도 나와 있지만 세법(Tax law)입니다. 아시다시피 세법은 세금에 관한 사항을 규율하는 법이죠.


예전에는 세금이 신문에서 자세하게 다룰 정도의 큰 이슈거리가 되지 못했죠. 물론 기업이나 자산가들의 입장에서는 예전에도 중요한 문제였지만, 지금처럼 모든 국민이 관심을 가지는 정치적 쟁점까지는 아니었습니다.


지금은 상황이 바뀌어 세금은 정말 큰 쟁점거리가 되었습니다. 국민들은 세금에 굉장히 민감하죠. 내 주머니에서 돈이 나가니 신경 쓰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국민들의 표를 먹고 사는 정치권에서는 당연히 세금이 첨예한 정쟁거리가 됩니다. 이렇게 세금이 예전과 달리 인기(?)를 누리게 된 이유로 몇 가지가 있지만 이에 대한 언급은 생략할께요.


아무튼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세금을 둘러싼 대립과 갈등을 지켜보면서 대학과 학계 안에서 머무르는 것이 과연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이 될지 회의를 품게 되었죠. 여기서 이 글이 시작되었습니다.


물론 문제의식이 이 글의 집필로 바로 이어진 것은 아니에요. 최근까지 몇 년간 주요 신문에 꽤 많은 칼럼을 썼습니다. 신문이 갖는 영향력을 이용해 세금 문제 해소에 일조하고 싶었던 거죠. 그러나 A4지 한 장 분량의 글로는 한계가 분명했습니다. 설령 길게 쓴다 한들 집중해서 전부를 읽어내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았을 터지만.


만약 ‘가상의 국가’를 설정해서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다면 이런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았죠. 이렇듯 이 글은 집필 기간을 빼고도 꽤 오랜 기간 동안 사전 준비시간을 필요로 했답니다.


대다수 국민은 세금을 제대로 공부한 적이 없습니다. 설사 했더라도 극히 일부에 그치죠. 물론 법학·경제학·심리학·컴퓨터공학·생명공학 등 다른 학문들을 모두가 공부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세금만 그러한 것은 아니죠. 그러나 직접 관계되지 않는 한 그런 학문들을 공부하지 않았다고 크게 문제되지 않습니다. 가령 법을 모른다고, 심리학을 모른다고 살아가는데 당장 불편을 느끼거나 받는 불이익 또한 없구요.


세금은 다릅니다.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납세의무를 부담합니다. 세금의 본질은 국가가 나의 재산을 빼앗아 가는 것이에요(침익적 행정, 재산권 침해). 누군가가 적게 내면 다른 누군가가 그만큼 더 내야 합니다. 한시적이지도 않아요. 죽을 때까지 내야 합니다.


그래서 모두가 세금에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세금을 제대로 아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워요.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어려운 회계학·법학·경제학 세 가지 학문이 세금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 그 주된 이유 중 하나입니다. 세법 그 자체로도 매우 복잡하죠. 매년 개정되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한두어 시간 짜리 강의로 세금을 이해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죠(저명한 세법 교수 한 분은 사석에서 이런 전공은 애초에 하지 말아야 한다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이야기한 적이 있을 정도랍니다).

    < 그럼 난? >


세금 공부를 위한 정공법은 대학에서 관련 강의를 수강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수업을 듣는 학생들 수가 적습니다. 그나마 주로 경영계열 학생들이 수험목적(회계사, 세무사 등)으로 관심을 가지는 편이긴 하나 강의 내용은 계산기술에 치우쳐 있죠. 법학과나 로스쿨로 시선을 돌리면 그쪽의 사정은 더 열악합니다. 대부분의 법학과는 세법 강의를 개설하지 않습니다. 많은 로스쿨은 ― 법학쪽 용어로 ― 실체법보다 주로 절차법, 국세기본법 등 일부 내용만 훑고 말죠.


세금을 안다는 것은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어요. 하나는 세법 규정을 이용해 세금을 계산하거나 소송을 진행하는 법을 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조세제도(세제)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올바른 세제가 무엇인지를 분간할 줄 안다는 것이죠. 대학 교육은 주로 전자에 치우쳐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 전체적으로 문제되는 것은 앞의 것이 아니라 뒤의 것이에요. 가령 법인세율을 올릴지 말지, 국민 간 세 부담을 어떻게 나눌지, 부동산 보유세를 높일지 말지에 대한 답을 세금을 계산하는 지식으로만 찾을 수 없기 때문이죠. 앞의 것을 안다고 뒤의 것이 저절로 습득되지는 않아요.


모두가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려 함은 아니에요. 하지만 세금에 관한 어느 정도의 지식은 갖춰야 합니다. 어떤 주장이 제대로된 논거를 갖춘 것인지 가려 들은 정도는 돼야 한다는 말이죠. 왜 그래야 할까? 그래야 잘못된 지식, 가짜 뉴스에 터 잡은 조세저항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재와 같이 대부분이 세금을 제대로 공부한 적이 없는 상황에서는 가령 복지국가를 위한 증세는 먼 나라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어요. 세제개혁의 폭이 클수록 조세저항 또한 커지는 까닭입니다. 


사회적 이슈로서의 세금 문제에서 절대적인 당위란 없습니다.


합의를 거쳐야 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죠. 표를 얻어야 하는 정치권은 국민들의 눈치를 봅니다. 예컨대 대규모 증세는 자살행위라 여기죠(지난 대선 때 진보나 보수정당 가릴 것 없이 모두가 복지국가를 외치면서 증세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던 것이 그 적절한 예가 되겠네요). 그런데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해결을 위해 증세가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올 수 있습니다. 물론 그 반대도 가능하죠. 어떤 것이든 정치권은 민감한 이야기를 되도록 피하려 합니다. 잘못된 정보로 상대 진영을 공격하기도 하죠. 객관적인 사실이 논의의 테이블에 올라와 있지 않으면 잘못된 합의에 이르거나 또는 합의 자체가 성립할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국민들은 세금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이 연재 글을 본다고 세금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세금 공부를 위한 전형적인 교과서의 형태도 아니죠. (제일 관심을 끄는) 절세기법을 다루지도 않습니다. 


이 글의 목적은 우리 사회에서 쟁점이 되는 몇 가지 중요한 세금 이슈의 논점을 정확히 제대로 이해하고 각 주장의 당부를 판단할 수 있는 기초체력을 기르는데 도움을 드리는데 있습니다. 이로써 세금으로 인한 불필요한 갈등이 조금이라도 줄어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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