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이 필요한 시간

휴직일기, +136일(2021. 9. 15)

by 낙산우공

휴직을 하고 보니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내 삶의 거점이 직장에서 집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주 5일, 하루 10시간 가까이 사무실에 머물다 보면 공간적으로 집보다 친숙한 곳이 사무실의 내 업무 공간이다. 집은 퇴근 후 잠시 머물다가 아침 일찍 서둘러 나오는 곳이니 집안 구석구석이 눈에 들어올 리 없다. 그러나 사무실은 작은 공간인 데다 나만의 파티션에 갇혀 일하다 보니 빈틈없이 내 손길이 닿아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 공간이 집으로 바뀌었고 작은 집일망정 사무실보다야 넓어졌으니 구석구석 눈에 거슬리는 곳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그렇게 나의 집 고치기는 소박하게 시작되었다.


서른 평 남짓한 공간에 손이 가 봐야 얼마나 가겠는가 싶었는데 나의 집 고치기는 다섯 달째 진행형이다. 물론 거창한 이름만큼 대대적인 공사란 없다. 그저 공간을 재배치하고 켜켜이 쌓인 묵은 살림의 흔적을 조금이나마 지워나가는 중이다. 너무 오래되었거나 공간 활용에 부적합한 가구들을 정리하고 튼튼하지만 저렴한 가구들을 일부 장만하기도 하였다. 그래 봐야 업자에게 맡기는 인테리어 공사에 견줄 바 아니다. 비용도 비용이거니와 집을 무슨 상품처럼 꾸미는 일에 난 흥미가 없다. 집은 그 가족의 역사다. 역사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듯 집을 보면 그 가족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느낄 수 있다. 너무 궁색하지도 너무 화려하지도 않은 집을 난 사랑 한다. 물론 궁색함과 화려함의 기준도 주관적이지만 말이다.


학부 전공이 어울리지 않게 컴퓨터공학인 나는 어디 가서 전공을 운운할 수준이 결코 아니지만 그중에서 굳이 한 과목을 꼽자면 알고리즘 설계를 좋아했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절차가 바로 알고리즘이다. 내가 개발하고자 하는 프로그램이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 것인가를 정하고 나면 그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프로그래밍 구현 방법은 천가지 만가지가 나올 수 있다. 따라서 투입자원을 최소화하면서 단기간에 원하는 기능을 구현할 최적화된 알고리즘을 설계하는 것은 건축의 설계도만큼이나 중요한 일이다.


예컨대 1부터 100까지 순차적으로 더하는 프로그램을 짠다고 할 때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프로그래밍 소스코드에 1+2+3+4…… 순으로 무식하게 입력하면 된다. 그러나 이런 코드는 전자계산기에 숫자를 입력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즉 순열과 함수식을 활용하여 어떤 입력값이 들어가도 연속해서 100번을 덧셈하는 프로그램을 짜야 비로소 프로그램이라 말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최적의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는 절차가 프로그래밍의 구현 방법에 대한 설계, 즉 알고리즘이다.


알고리즘이 탄탄한 프로그램은 오류 발생 가능성이 낮다. 알고리즘은 단순 명료하되 효율적으로 그리고 매우 논리적인 흐름에 따라 설계되어야 한다. 이러한 알고리즘은 비단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삶에서 부딪히는 모든 일들이 알고리즘의 영향을 받는다. 그렇다고 인간의 모든 반응과 행동이 완벽히 계산된 알고리즘에 따라 효율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다만, 효율성과 경제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는 일에는 알고리즘에 대한 이해가 매우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내가 효율적 알고리즘을 적용한 최적화에 강박을 보이는 게 전공 때문인지 아니면 타고난 성향이 우연히 전공과 맞아떨어진 것인지는 모른다. 아무튼 비효율적이고 비능률적이고 비생산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하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부지런함을 타고나지는 못했지만 최적에 대한 강박증 덕분에 난 곧잘 성실한 사람으로 비치는 것 같다. 그런 버릇이 집에서라고 달라질 이유가 없기에 좁은 공간에 많은 살림살이가 공존하는 우리 집은 예전에도 비교적 정리가 잘 된 편이었다. 그런데 휴직을 하고 집을 거점으로 움직이다 보니 결국 대대적인 공간 재배치와 조정이 필연적이라고 판단되었다.


나의 집 고치기 작업은 알단 큰 틀에서 카테고리를 나누었다. 이를테면 앞뒤 발코니 정리, 발코니가 확장된 거실의 효율적 재구성, 아이들 방의 공간 재배치 그리고 욕실 개조 정도였다. 세세하게는 삐걱거리는 싱크대 상하부장 수리, 뒷발코니의 펜트리 선반 설치, 욕실 조명 교체, 불필요한 가구 버리기 등등 셀 수 없을 정도다. 현재까지는 대략 50퍼센트의 공정이 진행되었지만 입시에 여념이 없는 아이들 방을 건드릴 수 없기에 입시가 마무리되는 11월 정도에야 완성이 될 것 같다. 다행인 것은 아이들의 만족도가 높다는 사실이다. 아빠가 집에 있으니까 점점 집이 좋은 쪽으로 변하고 있다고 말하는 아이들은 은근슬쩍 엄마 눈치를 보고 있다. ‘정리하다’와 ‘쑤셔 박다’를 동의어로 생각하는 아내를 둔 덕분으로 결혼한 이후 편한 날이 없지만 온갖 인테리어 중독의 아내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와이프 디스는 여기까지!)


집 고치기의 시작은 사실 방 크기에 비해 답답해 보이는 딸아이 방을 넓혀주겠다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는데 그것이 나비효과처럼 점점 일이 커진 것도 사실이다. 그 경과를 간략히 정리해 보면, 아이 방을 비좁게 만든 범인은 아내의 할머니께서 사주신 40년 가까이 된 피아노와 나의 어머니께서 채 1년도 안돼 버리려던 것을 받아온 더블사이즈 침대였다.(내 어머니는 신상 구입을 위해 불필요하다 싶은 물건을 돌같이 여기신다) 아내는 피아노를 거추장스러워했지만 아무리 낡았어도 아이에겐 증조할머니의 유품이고 삼익도 영창도 아닌 무려 독일산 피아노를 버릴 순 없었다. 침대는 자꾸만 덩치가 커가는 아들의 침대와 바꾸면 될 일이었다.


결국 딸아이방에 있는 피아노를 거실로 옮기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였지만, 그 바람에 서재방을 따로 두지 못해 거실 한 켠(발코니 확장부)을 쓰고 있는 한평 남짓한 나의 서재 공간을 빼앗길 위기에 처했다. 아내는 쉽게 말한다. 복잡해지는 것 싫으니 피아노를 버리든지 내 책상을 치우던지 알아서 하라고… 아내는 복잡해지는 걸 싫어한다기보다는 생각하는 걸 싫어하는 편이다. 그래서 그때부터 나의 알고리즘은 밤낮없이 돌아가기 시작했고 결국 나의 서재 공간을 대대적으로 조정하면서 피아노와 책상이 공존하는 최적의 공간배치가 탄생하였다. 아내가 둘 중 하나를 버리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전혀 답답해 보이지 읺는 선에서 말이다. 이렇게 구구절절 말하고 나니 개인적으로는 눈물겹지만 한편으론 참으로 지질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전에 아내의 친한 후배가 우리 집에 놀러 와서 했다는 말이 새삼 기억에 남는다. 아내의 후배는 이름만 들어도 다 아는 압구정 모 아파트에 거주한다. 아마도 우리 집 보다 십여 평 이상은 넓은 집에 사는 그녀는 우리 집 살림을 둘러보더니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언니네나 우리 집이나 살림살이가 많은 건 비슷한데, 그런데 왜 우리 집은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언니 집은 이렇게 깔끔한 거지?”


그날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이렇게 대답이 튀어나왔을지 모른다.


“문제는 넓이가 아니라 배치야, 바보야~”


방이 하나 더 필요했다고 믿었던 일이 실제로는 머리 하나가 더 필요했던 것뿐이다.




오늘의 감상,

거실에 피아노와 책상이 공존하기 어려웠던 가장 큰 이유는 거실이 좁아서가 아니라 대학 때부터 쓰던 나의 책상이 너무 컸기 때문이었다. 이 책상에 대해 특별한 애착이 없는데도 지금껏 바꾸지 않았던 이유는 단순했다. 결혼할 때 장모님께서 혼수로 나의 책상과 책장세트를 준비해 주려 하셨지만 낡은 18평 전세 아파트와는 어울리지 않는 듯하여 거절했던 것이다.(당시만 해도 집은 신랑, 혼수는 신부 측에서 준비하는 관행이 있었다) 그리고 19년을 더 쓴 나의 책상과는 이제야 이별을 하였다. 발상의 전환은 예기치 않은 횡재를 가져오기도 한다. 난 19년 전에 눈독을 들였던 자그만 빈티지 책상을 얻었다. 딸아이는 방이 넓어졌고 나는 새 책상이 생겼다. 비용은 18만 9천 원에 배송비 2만 5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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