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일기, +147일(2021. 9. 26)
고3, 중3 두 입시생 자녀의 아비이자 한 여인의 남편으로 19년을 살아온 내가 육아를 멍에라고 부른다면 자격이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 거 맞다.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책임하고 부끄러운 표현을 숨기지 않는 것은 대한민국에서 이것을 감당하며 산다는 게 얼마나 버티기 어려운 일인지를 절절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멍에는 수레나 쟁기를 끌기 위해 말이나 소의 목에 얹는 구부러진 막대를 말하지만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구속이나 억압을 비유적으로 이르기도 한다. 난 마소도 아니고 수레나 쟁기를 끌 일도 없기에 내 목에 얹힌 멍에는 벗어날 수 없는 구속이나 억압이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찌 육아가 내게 구속이나 억압이 되었을까?
입시생 아이 둘을 뒷바라지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아니 많은 이 나라의 어머님들이 그 두 가지도 모자라 생업전선에까지 뛰어들기도 한다. 아이 학원비에 한 푼이라도 보태어 보려고 말이다. 그렇게 육아는 아이가 있는 가정에서는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고 그 수고로움에 불만을 갖는 부모는 없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육아는 좀 다르다. 그저 건강하고 심성이 곧은 아이로 키우는 것을 육아라 부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무슨 대단한 인물을 만들어 내지도 않는다. 그런데 대부분의 가정이 사교육 열풍에 자유롭지 못하고 다양한 형태로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다. 아이도 부모도 원하지 않는 이 현상은 쉽게 설명하기 어렵다. 그저 치열한 경쟁사회가 빚어낸 광기라고 밖에는 해석이 안된다. 그 비정상의 육아환경에서 비켜나 있지 않은 나의 삶도 지치고 버겁긴 마찬가지다.
경쟁과 탈락이 일상인 대한민국의 민낯은 학교에서 가장 먼저 드러난다. 성적과 순위는 정확하게 숫자로 표기되어 운동선수의 백넘버보다 강렬하게 아이들의 등짝에 낙인을 찍어버린다. 그 경쟁에서 생존한 자들은 우월감에 사로잡히고 모두가 그들의 성공스토리에 주목한다. 그들의 부모들까지 의기양양하여 때로는 교문 앞 현수막에서 기념사진을 찍기에 이른다. 장한 아들 딸들은 모두 경쟁에서 승리한 아이들이다.
예체능을 전공하는 아이를 둔 덕분에 어렴풋이 무용과 미술교육의 현장을 경험하고 있는 나는 예체능 교육현장이 그 어떤 곳보다 경쟁의 결과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때로는 그 경쟁시스템에서 생존하여 우쭐해하는 아이에 동화되거나 때로는 그 시스템에서 낙오하여 의기소침해 있는 아이를 다독여야 하는 입장이 교차하면서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다.
내게 육아가 멍에로 느껴지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아이의 자아실현이라는 명목으로 이미 30년 전에 폐기되었을 법한 극한의 실기교육이 자행되는 곳이 바로 예체능 교육 현장이다. 이곳에는 이곳만의 룰이 있으며 상식적이거나 이성적이지 못한 상황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교육의 당사자인 스승과 제자를 제외한 학부모는 철저하게 제삼자로 취급되며 그저 절대적인 협조와 헌신이 강요될 뿐이다.
아이들을 키우며 각자의 적성과 소질을 발견하고 그에 맞는 전공을 찾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이의 미래를 좌우하는 중차대한 일인 것은 부모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그렇게 시작한 두 아이의 예체능 전공은 점점 미궁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큰아이는 현대무용을 전공하며 학업과 실기에서 모두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 타고난 성실함과 예의 바른 태도로 많은 이들의 인정을 받았고 당연히 부모의 입장에선 그런 아이가 기특하고 대견하였다.
우리 아이는 초등학교부터 시작해서 예중을 거치는 일반적인 무용 전공생의 코스와 달리 중학교 2학년 때 뒤늦게 시작하였지만 부족한 부분을 메꾸어가면서 놀라운 성장을 보였다. 그러나 예체능 전공생 하나를 키우는 일이란 부모에게는 상당한 출혈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것은 단순히 금전적인 문제를 넘어 시간과 인력이 어마어마하게 소모되는 일이다. 특히 무용은 그중 유별나다.
그렇게 1년 반의 예고 입시를 거쳐 이제 대입이 코앞에 다가온 아이와 우리 가족은 모두 만신창이가 되었다. 예고 2학년 때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취소와 연기를 밥 먹듯 하는 각종 콩쿠르에 다섯 차례나 참가한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본격적으로 지원대학을 결정하고 대학별 입시반에 소속되어 진행되는 레슨은 가히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실기 레슨 시간이 많아질수록 아이의 부상은 허리, 골반, 정강이, 발목 인대로 점차 늘어났고 입시생이 아픈 것은 당연하다는 분위기에서 온갖 병원 치료와 마사지로 근근이 버티어오길 10개월째…
아이는 입시가 코앞에 다가와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선생님을 감당하기 위해 매일매일 체력과 멘탈을 저당 잡히고 있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같은 현대무용을 전공하는 여덟 명의 동급생 중 세 아이가 공황장애 판정을 받았고 오늘 한 아이가 추가로 비슷한 증세를 보여 신경정신과 진료 후 안정제를 복용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 아이는 몸이 상하고 자주 정신적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것 외에는 신경정신과적 이상 징후를 보이지 않고 있으니 이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 걸까?
미술 전공으로 예고 입시를 2년 넘게 준비하고 있는 둘째를 보면 내가 과연 제정신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춤을 좋아해 무용을 시켰고 그림을 좋아해 미술을 시켰을 뿐인데 그게 미친 짓이 되기도 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것이 꼭 예체능에만 해당되는 일이겠는가?
오늘의 감상,
둘째는 대형입시학원으로 옮긴 지난 2월부터 거의 하루도 쉴 수가 없다. 주말이나 공휴일이면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4시간짜리 실기수업을 하루 세차례씩 하고 있다. 그리고 입시가 한달 앞으로 다가온 오늘은 학업을 전폐하고 매일 이 과정을 반복하라는 지침을 받았다. 10월5일까지만 출결점수가 반영된다는 친절한 안내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