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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산우공 Oct 11. 2021

상스러움에 대하여

인간의 품격(2021. 3. 31)

상스럽다의 사전적 의미는 "말이나 행동이 보기에 천하고 교양이 없다."라고 한다. 여기서 보기에 천하다는 건 과연 어떤 뜻일까? 사전에는 천하다의 의미를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1. 지체, 지위 따위가 낮다. 2. 너무 흔하여 귀하지 아니하다. 3. 하는 짓이나 생긴 꼴이 고상한 맛이 없다."가 그것이다.

통상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좀 더 센 발음인 "쌍스럽다"라고 알고 있는 단어, 상스럽다를 사전에서는 위와 같이 풀어주고 있다. 천하다의 의미를 3번으로 해석했을 때 상스럽다는 말이나 행동이 고상하지 않고 교양이 없다는 뜻으로 쓰인다고 할 수 있다. 그럼 다시 고상하다는 어떤 의미일까? "품위나 몸가짐의 수준이 높고 훌륭하다."라고 나온다.


결국 상스러운 사람은 말이나 행동에 품위가 없고 교양이 없는 사람을 일컫는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용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상스러운 이를 상대하는 일은 피곤하다. 그들은 태생적으로 말이나 행동에 품위가 없으며 교양을 갖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상스럽지 않게 말이나 행동에 품위를 담고 교양 있게 대하려고 해도 상스러운 이들은 상대의 품위와 교양 따위를 존중하지 않는다. 거기에서 오는 피로감, 당혹감, 모욕감이 상스럽지 않은 이들을 괴롭힌다.

상스러움은 타고난 품성이다. 그것은 지식과 교양을 가르친다고 감추어지지 않는다. 제아무리 가방끈이 길고 고고한 학문을 습득한 이도 타고난 상스러움을 이겨내진 못한다. 나는 여럿에게서 그런 모습을 발견하였고, 만약에 전생이 있다면 저들은 정말 천한 신분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들의 현재는 화려한 스펙과 높은 지위로 무장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예전에 모 명문대 교수님이 대표적으로 그랬다. 그는 좋은 가문과 돋보이는 학벌로 무장하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 영국으로 유학을 가서 그곳에서 학부를 마치고 미국의 최고 명문대라고 하는 곳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아주 젊은 나이에 국내에 교수로 임용되었다. 그런 그에게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국내에서 학부를 다니지 않았다는 사실...

나는 이것이 약점이라는  그분에게서 듣고 처음 알게 되었다. 아무튼 그분이 임용된 학교는 자대 출신 교수들로 도배를 하고 있었는데 유일하게 국내에 연고가 없던 그분은 교수 사회에서 은근히 따돌림 아닌 따돌림을 받으셨다고 한다. 그런 그가 유독 자신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던  교수에게 시원하게(?) 복수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연말 회식 자리였던 것 같다. 해당 학과의 교수들이 모두 모인 술자리였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술잔을 돌리는 관행이 남아있던 시절이라 교수들 사이에서 후배 교수가 선배 교수에게 자신의 술잔을 올리는 거창한 행사가 진행되던 차였다. 그분은 자기에게 유독 까탈스러운 교수에게 다가가 정중히 술잔에 술을 따라 주면서 조용히 귓속말을 했다고 한다. 만면에 미소를 띠며...


구체적으로 어떤 말을 했는지는 알려주지 않았지만, 교수 사회에서 흔하게 들을 수 없는 매우 상스럽고 험한 욕이었다고 한다. 그 귓속말을 들은 상대 교수는 당혹감과 모욕감을 주체할 수 없었지만 많은 교수들이 모인 자리에서 분위기를 깨는 반응을 보일 수 없어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고 한다. 심지어 귓속말을 해준 당사자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욕을 해댔으니 함부로 대응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난 그분이 매우 상스러운 인격체란 걸 금세 알아차렸다. 그분은 모교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을 부당하게 대우했던 상대 교수에게 회심의 일격을 날렸다고 자랑스레 이야기한 것이지만 나는 그 일화가 전혀 통쾌하거나 유쾌하지 않았다. 아니 듣기에 몹시 불쾌하였다. 그건 정말로 품위 없고 교양 없는 수준을 넘어서는 "쌍스러운" 짓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는 상스럽다는 표현조차 과분하다.


상대 교수가 학연과 지연을 따지며 자신에게 부당한 대우를 했다면, 그에 상응하는 말이나 행동이 고작 이것 밖에는 없었을까? 그렇게 똑똑하고 잘난 사람이 말이다.


이렇듯 상황에 따라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이런 말이나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그가 몹시 상스러운 인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가 제아무리 뛰어난 학자 내지는 교수인가와 무관하게 그는 몹쓸 인간이다. 인간은 쓸 인간과 몹쓸 인간으로 나뉜다. 나는 사회생활을 하며 이런 몹쓸 인간들을 분별하는 재주를 배웠다. 이 재주는 요긴하게 쓰이지만 참으로 몹쓸 재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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